[사무엘상 17:38-40, 새번역]
38 사울은 자기의 군장비로 다윗을 무장시켜 주었다. 머리에는 놋투구를 씌워 주고, 몸에는 갑옷을 입혀 주었다.
39 다윗은, 허리에 사울의 칼까지 차고, 시험삼아 몇 걸음 걸어 본 다음에, 사울에게 "이런 무장에는 제가 익숙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무장을 한 채로는 걸어갈 수도 없습니다" 하고는 그것을 다 벗었다. 그렇게 무장을 해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40 그런 다음에, 다윗은 목동의 지팡이를 들고, 시냇가에서 돌 다섯 개를 골라서, 자기가 메고 다니던 목동의 도구인 주머니에 집어 넣은 다음, 자기가 쓰던 무릿매를 손에 들고, 그 블레셋 사람에게 가까이 나아갔다.
1. 막막하고 답이 없는 상황
오늘 본문은 골리앗이라는 거대한 적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스라엘의 막막한 상황을 보여 준다.
골리앗과 싸울 수 없는 이유가 분명하다.
[사무엘상 17:4-7]
4 블레셋 진에서 가드 사람 골리앗이라는 장수가 싸움을 걸려고 나섰다. 그는 키가 여섯 규빗 하고도 한 뼘이나 더 되었다.
5 머리에는 놋으로 만든 투구를 쓰고, 몸에는 비늘 갑옷을 입었는데, 그 갑옷의 무게는 놋 오천 세겔이나 되었다.
6 다리에는 놋으로 만든 각반을 차고, 어깨에는 놋으로 만든 창을 메고 있었다.
7 그의 창자루는 베틀의 용두머리만큼 굵었고, 그 창날의 무게는 쇠 육백 세겔이나 되었다. 그의 앞에서는 방패를 든 사람이 걸어 나왔다.
키 : 여섯 규빗과 한 뼘 - 약 2.9m 정도로 추정. (1규빗은 약 45cm) 압도적인 신체적 존재감.
무기와 갑옷 : 놋 투구, 비늘 갑옷, 놋 단창 등은 매우 무거운 전투 장비로, 숙련된 전사만이 다룰 수 있는 수준. 갑옷 무게 약 57kg, 창날 무게 약 7kg 정도로 추정. 골리앗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인간의 능력과 기술의 최대치를 보여 줌.
베틀 채 같은 창 자루 : ‘베틀 채’(weaver’s beam)는 매우 두껍고 튼튼한 막대기. 즉, 골리앗의 창은 일반적인 무기보다 훨씬 크고 무거움을 강조.
방패 든 자 : 골리앗 앞에 따로 방패를 들고 걸어가는 하인(무기 운반자)이 있음. - 골리앗의 존재는 싸움에 최적화된 인간을 말한다. 조직적으로 골리앗의 싸움을 돕는 자들이 이를 증명. (방패 든 사람)
오늘 성경이 이스라엘이 감당 못할 데이터를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도 구체적으로 숫자로 보여 주고 있다. 숫자는 거짓말을 못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확실하고 정확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한계치를 뛰어넘는 골리앗에 대한 데이터는 이스라엘이 절대 대항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실한 근거를 제공한다.
우리의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막막하고 답이 없는 상황은 막연했던 모든 문제들이 숫자로 데이터화될 때이다.
거대한 골리앗이 있다고 묘사해도 될 텐데 골리앗이라는 존재를 계량화해서 보여 준 성경의 의도가 있다.
내가 처한 막막하고 답이 없는 상황은 나를 둘러싼 모든 문제가 계량화되었을 때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계량화되었다는 것은 내 능력에 비례해 이미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결론이 도출되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정해진 현실 앞에 굴복하게 된다.
이미 정해진 현실에 굴복한 사람은 사울이다.
사울은 언제나 지극히 논리적이다. 합리적이다.
사울은 혼적인 생각을 상징하는 존재이다.
혼적인 생각의 특징은 인간의 논리에 근거하기 때문에 계산하기를 좋아한다.
정확한 계산을 통해 결과를 예측하려고 한다.
그래서 혼적인 사람들의 특징은 할 수 없는 이유 백만 가지를 찾는다.
반드시 이유를 찾아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결정에 정당성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핑계를 찾는 근본적 원인은 두려움이다. 두렵기 때문에 계량화된 합리적 이유를 찾아 숨는 것이다.
죄로 오염된 아담은 하나님과 단절되었다.
오염된 아담의 생각은 자기 자신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탄의 거짓말이다)
사탄은 아담에게 하나님과 같은 능력이 있다고 미혹했다. 그러나 아담이 처한 현실은 하나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본 것이다. (죽음이 언도되다)
내 능력을 넘어선 상황의 한계를 직시하는 순간 인간은 두려워 숨는다.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인간의 논리가 거짓말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작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회피하는 것이다.
[로마서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그래서 바울은 육신의 생각이라고 표현했다. 육신의 생각이 사망인 이유는 ‘답’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2. 다윗
사울과 같은 육신의 생각을 이길 수 있는 새로운 영의 생각이 ‘다윗’이다.
다윗도 골리앗이라는 계량화된 현실 앞에 선다.
그러나 다윗은 다르게 반응한다. 데이터를 알고 있음에도 그는 데이터에 근거해 생각하지 않는다.
골리앗이 주는 상황은 막막하고 답이 없다. 그런데 다윗은 골리앗과 싸워 보려고 마음을 먹는다.
결국 다윗 앞에서 골리앗은 무너진다.
성경 말씀은 막막하고 답이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1) 하나님의 사람은 데이터에 근거해 움직이지 않는다
데이터는 참고일 뿐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절대 데이터에 근거해 결정하지 않는다. (현실적 참고만 할 뿐이다)
(2) 하나님의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영적인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지 않는다. 혼은 자신을 집중하지만 영은 하나님께 집중한다.
그래서 영적인 사람은 막막하고 답이 없는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중요하다. 그래서 이 사람은 문제가 있을 때 오히려 귀를 열고 들으려고 한다.
(3) 하나님의 사람은 결국 믿음의 행동을 한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내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 진짜 믿음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내 행동과 연결되지 않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다. 진짜 믿음은 반드시 실천하는 행동과 연결되어 있다.
3. 혼적인 생각을 제거하려면
틀에 박힌 생각(옛 생각)에서 벗어나려면 새로운 것이 일어나야 한다.
새로운 것이 일어날 때 가장 중요하게 필요한 것이 ‘담대함’이다.
옛 생각(혼적인 생각)은 언제나 형식이라는 구조에 담긴다.
구조와 형식이 주는 안정감이 있다.
본질을 잘 담아낼 수 있는 형식과 체계가 필요하다.
눈에 보이는 구조 또한 중요하다. (예수님이 인간의 몸에 오신 것처럼)
그런데 문제는 본질과 상관없는 형식이 강조될 때이다.
사울과 다윗이 처한 골리앗은 현실이다.
본문을 보면 골리앗과 싸우려고 하는 다윗을 향한 사울의 대안은 갑옷과 칼이라는 전쟁의 형식이다.
[사무엘상 17:38-40, 새번역]
38 사울은 자기의 군장비로 다윗을 무장시켜 주었다. 머리에는 놋투구를 씌워 주고, 몸에는 갑옷을 입혀 주었다.
39 다윗은, 허리에 사울의 칼까지 차고, 시험삼아 몇 걸음 걸어 본 다음에, 사울에게 "이런 무장에는 제가 익숙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무장을 한 채로는 걸어갈 수도 없습니다" 하고는 그것을 다 벗었다. 그렇게 무장을 해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40 그런 다음에, 다윗은 목동의 지팡이를 들고, 시냇가에서 돌 다섯 개를 골라서, 자기가 메고 다니던 목동의 도구인 주머니에 집어 넣은 다음, 자기가 쓰던 무릿매를 손에 들고, 그 블레셋 사람에게 가까이 나아갔다.
사울은 구체적으로 군장비로 다윗을 무장시켜 주었다.
전쟁에 나가려면 당연히 필요한 형식의 장비들이다.
39절 - 다윗은 사울이 제시한 군장비로 무장한 후에 (허리에 사울의 칼까지 차고) 시험 삼아 걸어 보았다. 그리고 다윗은 사울에게 "이런 무장에는 제가 익숙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무장을 한 채로는 걸어갈 수도 없습니다" 하고는 그것을 다 벗었다. 그렇게 무장을 해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윗은 사울이 제시한 형식을 거절한다. 그리고 담대히 말한다. 이런 무장이 자신에게 익숙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이런 익숙하지 않은 군장비를 입고는 걸어갈 수도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다 벗어 버린다. 그 이유는 너무나 명확하다. ‘그렇게 무장을 해 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39절에 놀라운 영적 원리가 숨겨져 있다.
막막하고 답답한 상황에서 사울이 제시한 군장비라는 형식은 실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이다.
다시 말하면 군장비는 도움이 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싸우는 사람의 마음 자세에 있다.
왜냐하면 전쟁은 실전이기 때문에 그렇다.
오늘 우리의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막막하고 답답한 상황을 벗어나려면 혼적인 생각을 ‘담대하게’ 거절해야 한다.
혼적인 생각을 거절할 떄 필요한 것이 담대함이다.
혼적인 생각은 너무나 합리적인 생각이다. 사울은 혼적인 생각에 익숙한 사람이기 때문에 혼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갑옷이 문제가 아니다. 이스라엘이 갑옷이 없었는가? 칼이 없었는가? 문제는 도구가 아니다. 싸울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다윗이 갑옷을 거절한 이유는 분명하다. 혼적인 생각이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항상 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막막하고 답답한 싸움에서 생각지도 못한 전혀 새로운 차원의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4. 상황을 반전시키는 믿음
‘빛 좋은 개살구’
겉보기에는 좋아 보이지만, 실속이 없거나 품질이 나쁜 것을 비유하는 속담이다.
움직이지 않는 형식적 믿음을 버려야 한다. 담대해야 한다.
다윗은 골리앗과의 전쟁을 앞두고 사울이라는 옛 가죽 부대 앞에 섰다.
옛 부대의 생각은 혼적이고 육적인 생각이다.
하늘로부터 오는 창조적 생각을 가로막는 것이 혼적인 생각으로부터 온 선입견이다.
혼적인 생각으로는 소년이 골리앗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맨몸의 다윗이 골리앗을 절대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시냇가에서 주운 돌 다섯 개로 골리앗이 쓰러질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한다.
혼적인 생각으로는 계산할 수 없다.
마찬가지이다.
지금은 전혀 새로운 차원의 생각이 필요하다.
새로운 차원의 생각으로부터 온 다윗과 물맷돌이 필요한 때이다.
‘다윗’은 새로움을 상징한다.
막막하고 답답한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새로운 믿음이 필요하다.
그래서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 (성령의 능력을 충만하게 하기 위한 비결은 자기를 부인하는 일이다)
다윗의 새로움이 필요한 때이다. 다윗에게 부어졌던 하나님의 마음이 내게도 동일하게 부어지기를 기도하자.
그리고 형식적인 옛것을 과감히 거절하는 담대한 믿음으로 새롭게 나아가자.
하나님 나라는 다윗과 같이 준비된 새 가죽 부대에 임한다.
새롭게 되자! 변화되자! 담대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