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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een World 12. 자기 생각과 신념으로 진리를 대적하는 사람들을 분별하라

20250112 Unseen World 1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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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17-19]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1. 베드로의 신념이 말씀을 대적하다

(1) 신념과 신앙의 차이
‘신념의 특징’
개인의 판단과 경험에 의존 : 신념은 주로 개인의 삶에서 겪은 경험이나 사고방식에 따라 만들어진다. 따라서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객관적 근거보다 주관적 확신에 기반 : 신념은 반드시 진리나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하지 않을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이 맞다고 확신하는 경우, 신념을 가지게 된다.
변화 가능성 : 신념은 새로운 경험이나 지식에 의해 바뀔 수 있다.
‘신앙’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근거한 믿음. 인간적인 관점이 아닌 초월적인 하나님의 권위에서 출발한다.
(2) 베드로의 신념이 진리를 가로막다
[마태복음 16:21-24] 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오늘 말씀은 베드로를 통해 신념이 진리를 어떻게 가로막는지를 보여 준다. 예수님은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죽기 위해 오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모든 사람이 죄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진리’이다. 고난을 받고 죽는 것이 진리이다. 이사야 53장에 우리를 구원할 메시아 예수가 죽어야 우리가 나음을 입고 구원을 받을 수 있음이 이미 기록되어 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랑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22절에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며 주님을 말렸다. 단호하게 예수님은 절대로 죽을 일이 없다고 말한다.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듯 말하는 베드로의 모습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베드로는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했다. 그래서 진정성 있게 예수님을 말린 것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예수님이 절대로 고난을 받아서도, 죽어서도 안 된다고 확고하게 말한 것이다.
23절 -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말씀하신다. 놀라운 말씀이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베드로의 신념이 진리를 가로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신앙은 어떤가? 내 신앙은 내가 생각하기에 옳다고, 맞다고 생각하는 신념 위에 있는지, 아니면 진리의 말씀 위에 있는지 질문해야 한다.
(3) 신념과 다른 진리
진리의 말씀을 대적하는 것은 ‘반대의 다른 생각’이 아니라 ‘사탄적’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 가라”고 말씀하셨다)
: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은 영이다. 하나님의 영을 반대하는 것은 악한 영뿐이다. 이 사실을 깊이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진리는 또 하나의 의견이 아니다. 내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 하나님의 말씀은 해석이 아니라 오직 적용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할 존재는 없다.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했는가? 사탄이다. 악한 영 사탄에게 미혹을 받은 인간은 선악과를 먹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게 되었다. 문제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까지도 옳고 그르다고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까지 판단하는 인간은 이미 하나님이 되었다.
진리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다.
: 예수님은 베드로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인간의 일을 생각한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생각이 잘못되어 있다고 말씀하신다. ‘생각’의 헬라어는 φρονέω(phroneō), 프로네오이다. 이 단어는 마음의 태도에 관한 것이다. 마음이 어디에 집중하고 있느냐에 대한 말씀이다. 베드로의 생각이 어디에 집중하고 있느냐에 대한 물음이다. 예수님을 향한 베드로의 말은 인간적으로 보기에 맞고 옳은 것 같지만 그 생각의 출처는 다르다. 예수님은 정확히 베드로의 생각이 인간적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다. 우리의 삶에서도 내 생각이 진리 위에 있는지, 아니면 인간의 생각으로 가득한지를 보아야 한다.
(4) 신념에 대한 해결은 자기를 부인하는 십자가뿐이다
인간의 생각과 신념은 말의 설득의 문제가 아니다. 생각의 개조로 고쳐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뿌리와 본질이 영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24절처럼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능력말고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말씀을 통해서 진리의 십자가 복음 앞에 다시 서야 한다.

2. 권위와 말씀

신념과 신앙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권위’의 문제이다. 신념이 신앙보다 앞서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에 권위를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리의 말씀 위에 있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는 일이다.
(1) 말씀에 권위를 두신 예수님
[마태복음 5:17-18]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Matthew 5:18, NIV] I tell you the truth, until heaven and earth disappear, not the smallest letter, not the least stroke of a pen, will by any means disappear from the Law until everything is accomplished.
예수님이 기록된 말씀에 얼마만큼 권위를 두고 계신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17절을 보라.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분이 아니다. 율법을 해석하고 비평하는 분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는 분이다. 18절을 보라. 예수님은 기록된 작은 글자 하나에까지도 권위를 두고 계신다.
(2) 사두개인과의 부활 논쟁
[마태복음 22:31-32] 31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Matthew 22:31, NIV] But about the resurrection of the dead-have you not read what God said to you,
예수님은 사두개인들과의 부활 논쟁에서 말씀에 권위를 두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자기 생각과 의견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읽어 보신 기록된 말씀을 말씀하셨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말씀에 권위를 두셨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2: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예수님은 29절을 통해 사두개인들이 성경을 모른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도 모른다고 말씀하신다.
31절에 보면 예수님은 부활을 논하시면서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have you not read what God said to you,)라고 반문하셨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보지 않았느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아느냐?”
32절에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는 그때나 지금이나 (1300년 전이나) 동일하다고 강조하셨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느냐? 그렇다면 그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로 인해 그는 여전히 산 자의 하나님이시다”라고 강조하며 그들의 부활 논쟁을 일축시키신다.
(3) 신념인가? 진리인가?
혼돈의 때 조이풀 성도들은 신념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 위에 서도록 해야 한다.
1) 말씀을 많이 읽어야 한다. 목표를 두고 말씀을 통독하라.
2) 깊이 있게 말씀 공부를 하라.
3) 말씀을 해석하지 말고 적용해야 한다. 말씀이 말의 영역이 아니라 진리의 영역이며 영적인 영역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십자가를 중심에 두고 자기를 부인하는 겸손한 제자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