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4:6-7]
6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7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1. 힘과 은총
힘과 은총은 겉으로 볼 때 비슷하게 보이지만 사실 분별하기가 아주 어렵고 성격이 다르다. 여기에 아주 중요한 질문이 있다. ‘힘이 있기 때문에 은총을 받은 것인가? 아니면 은총이 있기 때문에 힘이 있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다시 말하면, ‘힘으로 은총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와 ‘은총이 있으면 힘은 자연스러운 결과로 주어진다'에 대한 것이다. 이 문제가 어려운 이유는 보여지는 결과에 대한 다른 해석과 관점이기 때문이다. 힘이라는 결과의 관점과 은총이라는 결과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결과의 본질은 완전히 다르다. 실상은 힘과 은총은 보이는 결과만으로 분별하기 아주 어렵다. 둘의 결과가 모두 강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가장 큰 차이일까?
(1) 사탄은 은총이 없기 때문에 힘에 몰두한다
보이는 영향력과 힘은 사탄에게도 있다.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시는 장면을 보자. 사탄은 예수님께 보여지는 강한 결과를 줄 만큼 강력한 힘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사탄에게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은총이다. 은총과 힘의 문제는 ‘존재’에 대한 문제이다. (소유와 존재의 문제) 은총은 만들 수 있는 힘이 아니다. 은총은 권위이다. 주어지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태생에 대한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존재가 되었기에 그에 부합한 모든 것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에게 힘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소유로부터 오는 힘의 경중이 있을 뿐이다. 쉽게 말하면 ‘적통’의 개념이다. 적통은 정당성을 가진 계승자나 정당한 혈통을 말한다. ‘적통’에게 주어지는 힘은 노력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주어지는 것이다. 은총이 없는 사람은 ‘힘’에 몰두한다. 토양 자체가 안정감이 없다. 그래서 불안하다. 인간의 불안과 두려움은 확실함이 없는 정체성으로부터 온다. 이 사람들의 특징은 항상 좇긴다. 경쟁한다. 질투심이 많다. 예민하다. 분노가 많다. 경쟁적이다. 결과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왜 그런가? 안정감이 없기 때문이다. 존재로부터 오는 불안과 두려움을 해결하는 방법은 ‘소유’이다. 소유가 ‘집착’이 된다.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이유는 컨트롤에 있다. 자신의 소유로 있어야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제어 바깥에 있을 때 두려워한다. 자신의 힘이 영향력 바깥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 은총을 모르는 사람에게 있는 악함
[마태복음 18:33-34]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만 달란트를 탕감 받은 사람이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탕감해 주지 않는 악함에 대한 내용이다. 만 달란트나 되는 엄청난 재정을 아무 공로 없이 탕감 받은 것이 은총이다. 본인이 은총을 받았음에도 은총을 모를 때 이런 악함을 보일 수 있다. 힘보다 중요한 것은 은총이다.
2. 예수님의 선택
예수님의 선택은 너무나도 선명하다. 예수님은 힘을 선택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위로부터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셨다. 힘은 보여지는 결과이지만, 말씀은 보이지 않는 영역의 결과이다. 예수님이 더 집중하고 계신 영역을 보자. 보여지는 영역의 결과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영역의 결과이다. 예수님이 사탄의 시험을 받으신 사건을 보자.
(1) 사탄은 보이는 떡으로 시험한다.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답하신다
[마태복음 4:3-4]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하나님의 아들이 왜 돌들을 떡덩이가 되게 하는 능력을 보여야 하는가? 사탄의 생각 구조 자체가 모순이다. 근거가 없다. 존재는 증명의 문제가 아니다. 영적인 영역은 증명의 문제가 아니다. 믿음의 문제이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믿음의 문제이지 어떻게 증명의 문제가 되는가?
(2) 사탄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보이는 능력으로 시험한다
[마태복음 4:5-7]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같은 맥락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왜 뛰어내려야 하는가? 뛰어내리는 능력이 있으면 하나님의 아들인가? 은총 없는 힘만 있는 사탄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들의 유치함을 보라. 예수님은 보이는 힘의 시험에 응답하지 않으신다.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사탄의 시험 자체에 오류가 있다. 하나님은 시험을 받으실 수 없고, 인간이 시험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절대성은 능력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다. 존재 자체가 완벽하시기 때문에 증명할 필요가 없다.
(3) 사탄은 보여지는 세상의 모든 영광과 권세를 제안하는 시험을 한다
[마태복음 4:8-10]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사탄은 보여지는 모든 천하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고 시험한다. 그러니 자신을 경배하라는 것이다. 바로 이 세계관이 은총이 아닌 힘의 세계관이다. 이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는 소유 때문이다. 이 말은 소유가 없으면 존재도 없어진다는 아주 세속적인 세계관이다. 보여지는 능력으로만 평가하는 셰계관이다. 예수님의 대답은 선명하고 분명하다. 자신을 경배하면 보여지는 이 모든 것을 주겠다는 시험에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대답하신다. 무슨 말인가? 보여지는 힘이 아니다. 예수님은 힘이 아니라 힘의 원천 자체가 되시는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대답하신다. 아주 강력한 대답이다. 이 말은 ‘힘이 어디로부터 오는가?’, ‘영향력이 어디로부터 오는가?’, ‘부와 지혜가 어디로부터 오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4) 하나님의 사람들은 힘을 좇지 않고 그 힘을 주시는 하나님을 갈망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것이 은총인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적용해 본다면 지도자는 힘이 아니라 백성을 좇을 때 진짜 힘이 생겨나는 것이다. 백성을 무시한 지도자는 절대 진실된 힘을 가질 수 없다. 모세를 보라. 백성들이 잘못헀을 때 자신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달라면서까지 백성을 위한다. 모세 하면 리더십이다. 모세의 리더십은 바로 그곳에서부터 오는 것이다.
3. 갑절의 복을 사모한 엘리사
엘리사는 엘리야의 보여지는 능력을 보았다. 그런데 엘리사는 보여지는 능력이 아니라 엘리야의 은총을 구했다. 갑절로 구했다. 보여지는 능력을 보고도 능력이 아니라 엘리야 존재 자체를 구하는 엘리사와 같은 결정은 사실 현장에서 쉽지 않다. 엄청난 유혹이 있다.
(1) 능력으로 가면 고갈된다
능력을 따라가면 모든 능력은 결국 소모됨으로써 고갈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능력이 나타날 때는 엄청 화려하고 멋있어 보이고 모든 것이 가능해 보여도 보여지는 능력이 없으면 없어지는 것이 예수님을 좇는 군중들이다. 진짜 제자는 누구인가? 보여지는 예수님의 힘이 아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시험은 보여지는 십자가에 처참히 달린 메시아 구세주이다. 여기에 가장 큰 시험이 있다. 저 볼품없는 예수님을 떠나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십자가의 도가 중요하다. 멸망당할 자에게는 미련하게 보여지는 것이다.
(2) 거함의 비밀
그래서 은총은 존재로부터 온다. 스승을 좇아갈 때 제자가 만들어진다. 스스로 제자가 되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를 좇아갈 때 요한복음 17장에 있는 깊이 있는 연합에 대한 예수님의 기도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은총을 따라갈 때 행위가 아닌 존재로 하나님 안에 거할 수 있다. 그 거함에 비밀이 있다. 하나님 안에 거함은 외부의 폭풍을 이길 수 있는 강력한 힘이며 안정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거해야 한다. 머물러야 한다. 바쁠수록, 힘이 생겨날수록 더 거하고 깊이 거해야 한다. 예수님이 보여 주신 하늘의 비밀이 ‘거함’이다. 능력이 아니라 은총임을 명심하라. 능력이 아니라 은총을 받아야 한다. 사용하고 없어질 힘이 아니라 갈수록 더 강력해지는 진짜 힘을 받아야 한다. 보이는 것을 좇지 말고 보이지 않는 예수님의 길, 어린 양의 길, 좁은 길을 가기로 결정하라. 그곳에 진짜 승리와 능력이 있다. 할렐루야!
(3) 은총으로 무너지는 큰 산
[스가랴 4:6-7]
6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7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힘으로, 능으로 되지 아니함을 아는 자가 은총을 구한다. 이 사람에게 큰 산이 평지가 되는 놀라운 일이 나타난다. 올 한 해 은총의 하나님을 구하자. 그리고 그 안에 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