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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een World 18. 약속의 성취 직전에 나타나는 공격과 시험을 뚫고 나가는 믿음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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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4: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 가능하게 하는 기름 부음을 구하라

2025년도 하나님이 우리 공동체에 주신 말씀은 ‘갑절의 축복’이다.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구한 것은 엘리야에게 나타난 성령의 역사의 갑절의 능력이었다. 엘리사는 왜 갑절의 능력을 구해야 했을까? 그 당시의 배경을 보면 이해가 된다. 이세벨과 아합이 통치하던, 가장 악한 시대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이 죽임을 당하고 핍박을 받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엘리사가 갑절의 능력을 구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같은 마음이다. 쉽지 않은 시대이다(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가정, 종교 등). 그렇기 때문에 지금 성도들과 교회가 갑절의 능력을 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누가 갑절의 능력을 구할 수 있을까? 엘리사처럼 ‘사명’이 있는 사람, 즉 하나님의 약속과 언약이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약을 통해 인간에게 주어진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고 성취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분의 약속을 끝까지 붙잡고 나아가는 사람에게 비전을 주신다. 비전이 선명해지면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사명’이 된다. 사명은 주어진 임무를 끝까지 완수하는 것을 말한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의 약속’을 사명의 형태로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끝까지 가지 못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군중’에서 ‘제자’를 선별하셨다. 군중은 예수님을 보기는 했으나, 특별한 사명이 있는 사람들은 아니다. 자신의 어떤 필요에 의해서 예수님을 찾고 따르는 사람에게 사명이 있을 수 없다. 그들은 예수님을 연호하고 찬양했지만, 나중에는 예수님을 못 박으라고 외치게 된다. 그 이유는 사명이 없기 때문이다. 사명이 없는 이유는 분명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명’으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신앙과 믿음이 약해지는 문제의 본질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약속을 ‘사명’으로 받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사명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약속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명이 되는 순간은 심령에 불이 붙는 순간이다. 이 불이 모든 환경과 상황을 이길 수 있는 강한 믿음의 원동력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가능하게 하는 기름 부음’의 간구는 하나님의 말씀을 언약의 말씀으로 받은 사명자들이 하는 간구이다. 사명은 존재의 이유이다. 내가 사는 이유이다. 그래서 중요하다. 하나님은 사명자에게 위로부터 능력을 부어 주신다. 문을 열어 주신다. 영적인 원리이다.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2. 끝까지 가는 사람들

사명의 또 하나의 특징은 ‘끝까지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디모데후서 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사명을 맡은 자의 마음의 태도를 보여 주는 말씀이다.
(1) 선한 싸움
사명을 맡은 사람에게는 싸움이 있다. 어려움이 있다. 사탄의 목표는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를 막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될 때 사탄의 나라는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에게 싸움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바울이 에베소서 6장에서 언급한 성도의 싸움(우리의 싸움)은 원거리에서 시작된 싸움이 가장 근접전이 된 육탄전이다. 치열하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보면 놀라운 일이 있다는 것이다. 회복이 있다는 것이다. 명심하라. 회복은 언제나 비용을 요구한다. 비용을 지불했기 때문에 회복은 귀하다(예수님의 십자가).
(2) 나의 달려갈 길
사명의 특징은 달려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길은 마침과 끝이 있다는 것이다. 사명이 있는 사람은 걷지 않는다. 멈추지 않는다. 무조건 사명을 향해 발을 뗀다. 어렵게 뗀 첫발은 나중에 가속도가 엄청나게 붙어 달리는 경주가 된다. 달려가는 상태는 이미 하나님과 동역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하나님은 그분과 함께 달려가는 사람과 함께 많은 일을 하신다. 바로 이 순간이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절정의 순간이다. 한국을 생각해 보라. 하나님은 한국에 가능하게 하는 능력을 부어 주셔서 전 세계 복음 전파를 위해 달리게 하셨다. 놀라운 확장이 있었고 축복이 있었다. 내 평생에 ‘달려감의 축복’이 있기를 기도하라. “하나님과 함께 달려갈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기업, 가정, 교회, 나라가 되게 하소서. 한순간도 의미 없이 살지 않게 하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 달려갈 길은 ‘마침’이 있는 경주이다. 그래서 끝까지 가야 한다. 명심하라. 끝까지 가야 한다.
(3) 믿음을 지켰으니
사명의 특징은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사명의 경주를 끝까지 마칠 수 있도록 믿음을 지켰다고 말한다. 믿음을 지켰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려운 시험이 있었다는 것이다. 믿음을 흔들리게 할 만한 일들이 있다는 것이다. 믿음이 흔들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게 할 만한 일들이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사탄은 모든 것을 동원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희미하게 한다. 그 방법 중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다른 것을 듣게 함으로써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오염’시키는 것이다. 오염이라는 단어를 반드시 기억하라. 내 안의 믿음이 흔들리는 이유가 환경과 상황의 문제인 것 같지만 그보다 더 본질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의 가치와 혼합되어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거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염시킨다. 그래서 사탄은 사람, 환경 등 모든 것을 동원해서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오염시킨다. 믿음이 없으면 사명의 경주를 끝까지 완주하지 못한다. 그래서 바울은 “믿음을 지켰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3. 세상을 사랑한 ‘데마’

[디모데후서 4: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오늘 말씀을 보라. ‘데마’라는 등장인물이 나온다. 데마는 누구인가? 데마에 대한 한 구절이 그 답이다. 그는 세상을 사랑하여 사명에서 떠난 자이다. 데마에 대한 언급이 다른 구절에도 있다.
[골로새서 4:14]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빌레몬서 1:24]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데마는 분명 바울의 동역자였다. 동역자는 같은 사명으로 함께 달려가는 사람이다. 분명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런 데마가 사명을 내려놓고 바울을 떠난다. 그 이유가 선명하다.
(1) 말씀의 배경
바울이 디모데후서를 기록한 시기는 네로 황제의 박해가 극심했던 때이다. 바울은 감옥에서 순교를 앞두고 있던 마지막 순간에 이 편지를 썼다. 믿음을 지키기 쉽지 않은 시대였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순간에 데마가 세상을 사랑했다는 배경을 알 필요가 있다.
(2) 그는 세상을 사랑했다
사랑하다 - 강한 애착의 상태 : 데마는 세상에 대한 강한 애착이 있었다. 미련이 있었다. 그 미련이 데마를 흔들리게 했다. 세상에 대한 미련은 믿음을 지키기 어려운 순간에 나타난다. 그 이유는 말 그대로 어렵기 때문이다. 어렵다는 것은 포기하고 싶다는 것이다. 힘이 든다는 것이다. (엘리야도 이세벨의 공격이 쉽지 않았고, 포기하고 싶어했다) 사탄은 이 순간을 정확히 포착해 공격한다. 이스라엘 백성도 광야에서 힘들었기 때문에 애굽에 대한 미련이 생긴 것이다. 영적 원리이다. 그래서 힘들수록 영적으로 무장해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세상 - 현재 이 시대와 상황 : 세상을 사랑했다는 말은 ‘세상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을 버리지 않았지만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가치와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바로 이 상태가 오염이다. 말씀보다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것은 그에게 하나님의 언약을 버릴 합리적 이유와 논거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그냥 먹은 것이 아니다. 먹어야 할 합리적 이유(하나님이 되고 싶은)가 있기 때문에 먹은 것이다. 사탄은 언제나 우리에게 하나님의 언약을 버릴 합리적 이유를 준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3) 나를 버리고
원어로 보면 ‘완전히 떠나버리다’, ‘포기하다’라는 뜻이다. 이 말은 데마가 의도적으로 바울을 떠났고, 하나님의 언약을 의도적으로 버렸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오염되었기 때문에 마음을 먹은 것이다. 모르고 버린 것이 아니라 알면서 의도적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깨어 있어야 한다. 죄는 일부러 그 마음 안에 의도적으로 하나님 두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죄의 본질을 깊이 알아야 승리할 수 있다.
(4) 데살로니가로 갔고
데살로니가는 로마 제국의 중요 도시이자, 무역의 중심지였다. 살기 좋은 곳이다. 기독교 박해가 덜한, 비교적 살기 쉬운 곳이 데살로니가였다. 데살로니가는 데마의 목적지가 변한 결과이다. 하나님의 언약이 오염되면 방향성과 목적지가 달라진다. 오싹한 원리이다. 그래서 끝까지 경주를 완주하지 못하는 것이다.

4.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같은 구절에 데마와는 다른 선택을 한 그레스게와 디도가 나온다. 이들은 세상으로 가지 않고 가야 할 사역의 장소로 나아갔다. 바울은 이 한 구절에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들이 바울과 같이 끝까지 경주를 완주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 안에 하나님의 약속과 언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믿음의 사람들은 경주자이다. 나를 위해, 가정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공동체와 교회, 나라를 위해 달려야 할 경주가 있다. 경주를 완주하기 직전에 어려움들이 있다. 어떻게 이 어려움의 시험과 미혹과 어려움을 이길 수 있을까? 어떻게 뚫고 갈 수 있을까? 놀랍게도 답은 하나님의 언약이다. 말씀이다. 다른 것이 아니다. 내게 말씀하신 언약을 붙들어야 한다. 우리는 다른 음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말씀을 언약으로 우리 마음에 새기셨다. 그 말씀을 붙잡아야 한다. 사람이 아니다. 환경이 아니다. 합리적 이유도 아니다. 이 일을 완성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아야 한다. 그 순간 우리는 장애물과 방해와 미혹을 뚫고 갈 수 있다. 그리고 놀라운 영광과 열매를 보게 될 것이다. 아브라함이, 모세가, 여호수아가, 느헤미야가, 다윗이 그랬다.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 결국 뚫고 가게 하신다는 사실을 명심해 승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