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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een World 20. 하나님의 약속이 현실이 되는 순간의 마지막 씨름(붙드는 믿음)

Unseen world 20.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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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2:24-28]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1. 야곱의 간절한 소망

(1) 장자의 복을 구함
[창세기 25:31] 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야곱은 형 에서에게 있었던 장자의 복을 사모한다. 자신이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장자의 복을 사고자 하는 모습에서 하나님의 복을 향한 야곱의 갈망을 볼 수 있다. 반면에 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판다. 성경은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창 25:34)라고 에서의 잘못을 분명히 지적한다. 결국 야곱이 복을 받는다. 성경은 하나님의 복이 어떤 사람에게 부어지는지를 명확히 보여 준다.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에서처럼 하나님의 복을 가볍게 여김이다. 왜 에서가 복을 가볍게 여겼을까? 복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때문이다. 이는 에서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반면에 야곱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복이 결국 자기 인생의 모든 것이 된다는 인식이 분명했다. 그래서 갈망함으로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복을 구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복이 내 인생의 전부라는 사실을 믿는 사람이 그 복을 받는다.
(2) 이삭의 축복을 받은 야곱
[창세기 27:28-29] 28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29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야곱에게 부어진 하나님의 복은 구체적이다. 하늘의 이슬(광야의 이슬은 생명의 물과 같다. 광야에서 생명의 공급원이 되는 것이 이슬이다)과 기름진 땅(땅이 좋으면 작은 수고로 큰 수확을 얻는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을 보여 준다),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받는 복이다. 곡식과 포도주는 생존을 위한 가장 중요한 품목이다. 주목할 표현은 ‘풍성한’이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복은 풍성하다. 그러므로 인색하지 않게 베풀 수 있도록 구하라. 축복의 인생은 풍성하다. 29절을 보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복의 단위는 ‘만민과 열국’이다. 그들이 굴복한다. 복의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하늘로부터 온 복이기 때문에 복의 주체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축복하는 자는 복을 얻는다. 내가 만든 복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 복이다. 야곱은 하늘의 복을 정확히 알았다. 그래서 복을 갈망한 것이다. 하늘로부터 오는 복의 실체를 아는 사람이 복을 구하고, 그 사람이 복을 받는다.
(3) 벧엘에서 복을 간구한 야곱
[창세기 28:12-13]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야곱은 하늘의 복의 실체를 보았다. 하늘과 연결된 사닥다리가 땅 위에 있다. 사닥다리가 하늘에 닿아 있고,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한다는 것은 야곱의 인생을 축복하는 하늘의 복이 땅과 연결되었고, 이를 실현할 천사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왜 야곱을 통해 우리도 하늘의 복을 갈망해야 하는가? 복의 출처가 하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땅에 임하는 복의 출처가 하늘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신다.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이 야곱처럼 복을 갈망한다. 13절에 보면 복을 주시는 분은 여호와시다.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하나님이 친히 복을 주도하신다. 놀라운 구절이다. 하늘의 복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이 복을 주도하신다. 하나님이 주도하신 복을 받은 사람이 야곱이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복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보증하시는 복을 받아야 한다.
[창세기 28: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하늘의 복을 받은 사람은 복의 출처가 되시는 하나님께 다시 돌려 드린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알아야 한다. 누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가? 복을 받은 사람이다. 내가 드리는 것이 아니다. 하늘의 복을 받은 사람이 다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십을 받았다. 그래서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이다. 이는 받은 복에 대한 감사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억지로 짜내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복을 갈망해야 한다. “하나님께 드릴 수 있도록 복을 주십시오”라고 갈망해야 한다.
(4) 얍복 강에서의 복
[창세기 32: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야곱은 에서와의 만남을 목전에 두고 있다. 에서와의 만남은 야곱의 생명의 보전을 장담할 수 없는 가장 큰 위기 상황이다. 지금까지 야곱은 복을 갈망했고, 하나님은 약속대로 많은 복을 주셨다. 그런데 그의 인생 마지막까지 그는 복과 다투어야 했다. 아무리 복을 받았어도 마지막에 무너지면 앞에 받은 복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진짜 중요한 것은 마지막에 받는 복이다. 마지막까지 복을 받는 인생이 축복의 인생이다. 야곱을 통해 하늘로부터 온 복의 소중함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복은 내 마지막은 물론이고 나를 넘어서 자손에까지 이르는 복이다. 나를 넘어서 천 대까지 이르는 복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로부터 온 복을 사모하는 것이다. 이 복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야곱은 하늘의 복을 끝까지 갈망한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야곱은 진심으로 하늘의 복을 갈망했다. 야곱의 전 인생을 통해 우리는 하늘의 복의 실체를 볼 수 있다. 그 복이 진짜 복이다. 그 복을 받은 사람의 인생은 받지 못한 사람과 비교할 수 없다. 오늘 하나님은 야곱처럼 하늘의 복의 실체를 정확히 알고 믿는 사람을 찾고 계신다. 조이풀은 이 복을 구해야 한다. 야곱의 복을 받아야 한다. 하늘의 사다리가 연결된 벧엘이 되어야 하고, 자손 천 대에 이르는 복을 받아야 한다.

2. 씨름하는 자가 복을 받는다(붙드는 믿음)

[창세기 32:24-25]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야곱의 상황은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승부를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하나님의 복을 받기 위해 한 발도 뒤로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다. 모든 것이 없어질 수도 있는 위기의 상황에 몰렸고,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바닥의 상황이다. 이때 야곱의 자세를 보라. 이때가 중요하다. 우리는 이와 같은 때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하나님의 복을 받는 사람의 마지막 싸움은 어떤 싸움이겠는가?
(1) 하늘의 복을 받을 마지막 시험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하나님은 마지막 복을 진짜 받을 사람인지 테스팅하신다. 하나님의 시험 과목은 하나이다. ‘갈망’이다. “네가 끝까지 나로부터 오는 복을 갈망하느냐?”, “이 복이 없으면 진짜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느냐?” 이 질문에 답을 하는 사람이 갈망하는 사람이다.
(2) 사탄의 방해
당연히 사탄이 방해한다. 두려움을 준다. 낙망, 좋지 않은 생각들, 기도할 수 없게 하고, 기대할 수 없게 한다. 부정적인 생각을 연결해서 결국 사로잡히게 만든다. 우리도 이와 같은 상황이 올 때가 있다. 이때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낙망함으로 침륜되어 있어야 하겠는가?
(3) 씨름하는 야곱 - 붙드는 힘, 믿음
야곱은 밤이 새도록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했다. 씨름을 생각해 보라. 씨름은 붙드는 싸움이다. 붙들고 놓지 않는 것이다. 붙드는 힘이 있어야 한다. 나는 반드시 이 복을 받으리라. 그래서 나는 하나님을 붙든다. 약속을 붙잡는다. 생각이 아니라 기도를 붙잡는다. 붙드는 힘이 씨름이다. 오늘 끝까지 붙드는 자가 결국 놀라운 복을 얻는다. 끝까지 붙들 힘을 달라고 기도하라. 누가 붙들 수 있겠는가? 자기 처지만 생각하면 붙들 수 없다. 오늘 야곱의 마음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가족들이다.
[창세기 32:11]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야곱의 진짜 두려움은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전부와 같은 가족 때문이다. 야곱은 에서가 와서 자신과 자신의 처자들을 칠까 봐 두렵다고 고백한다. 가족은 전부와 같다. 가족이 있기 때문에 복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가족이 없는 부와 명예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야곱이 씨름을 통해 밤새도록 ‘붙들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이 간절함으로부터 온다.
(4) 복의 통로가 되는 사람의 어깨에 올려진 짐
누가 복의 통로가 될 수 있는가? 어깨에 짐을 진 사람이다. 오늘 야곱이 복을 받아야 할 명확한 이유는 그 어깨에 자신의 가족들과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어깨에 올려진 짐을 보았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세상 죄(짐)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라고 설명한다. 예수님의 어깨에 세상 짐이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삶은 버거움이 있는 치열한 삶이다. 그러나 치열함과 버거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결국 예수님은 온 인류의 복의 통로가 되셨다. 할렐루야! 오늘 씨름하는 자의 어깨에 짐이 있다. 하나님은 그 짐을 아신다. 그렇기에 그 씨름에서 이길 수 있도록 성령을 통해 도우시고 응원하신다. 야곱의 복을 받자. 그리고 하나님의 복을 갈망함으로 붙드는 씨름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