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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een World 19. 모든 힘을 다 쏟아부은 후에 반드시 해야 할 일 (샤밧의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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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6:30-32] 30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31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32 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새

1. 지속 가능한 신앙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변화는 ‘이슈’ 중심의 단거리 경주와 같은 삶에서 ‘지속 가능한’ 장거리 경주로 변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왜 이슈 중심의 단거리적 삶이 장거리 경주와 같은 ‘지속성’으로 그 무게가 옮겨지고 있을까? 그 이유는 분명하다. 다 쏟아부어 낸 후에 오는 공허함과 번아웃과 같은 현상 때문이다.
‘목표 달성 후 우울증, 목표 공허 증후군‘
모든 것을 다 쏟아부은 후 찾아오는 공허함과 그로 인한 탈선의 부작용은 심리학적으로 ‘목표 달성 후 우울증’(Post-Achievement Depression), 또는 ‘목표 공허 증후군’(Goal Void Syndrome)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는 큰 목표를 달성한 후 삶의 방향성을 잃거나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지 못해 발생하는 심리적 상태를 말한다.
’건강한 성장‘
성경은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에게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나라고 말씀하고 있다. 신앙은 성장하는 것이다. 젖먹이 상태, 초보의 상태에 머물러 있지 말고 단단한 음식을 소화할 수 있는 장성한 분량으로 성장하라고 말씀하신다.
건강한 성장과 몸은 무엇을 말하는가? ’안정감’이다. 안정감은 샬롬을 말한다. 하나님의 일은 샬롬의 상태에서 세워지고 확장된다. 샬롬은 완벽한 통치의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샬롬의 왕이시다. 왕이신 예수님이 완전히 통치하고 계신 속에서 백성은 가장 행복하다. 그 행복은 안정감을 말한다. 교회는 반석이신 예수님의 토대에 세워질 때 안전하다. 예수님의 토대가 아닌 다른 모든 기초는 불안하다. 그래서 결국 무너진다. 바벨탑은 아주 좋은 예가 된다. 최고의 기술을 집합해서 화려하게 높이 쌓아올려도 결국 무너졌다.
안정감은 무엇인가? 지속 가능한 힘을 말한다. ‘최고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통치의 단계이다. 흔들림이 없다. 기복이 없다. 사람도, 가정, 교회, 공동체, 일터, 나라도 안정감이 가장 중요하다. 안정감이 문화가 된 곳의 특징이 있다. 성숙함이다. 어떤 풍랑이 있어도 흔들림이 없다. 풍랑을 잠잠하게 할 수 있는 강력한 샬롬의 문화가 모든 풍랑을 잠재운다. 위로가 있다. 회복, 치유가 있다. 잠잠한 것 같지만 힘이 있다. ‘외유내강’의 문화이다. 조이풀교회가 다음으로 일으켜야 할 문화이다. 흔들림이 없는 안정감이 문화로 일어날 때 모든 사역은 ‘정점에서 지속’될 수 있다.

2. 다 쏟아부은 후

30절 말씀을 보면 제자들이 자신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보고한다. 이 말씀은 제자들이 예수님께 파송받아 전도하고 돌아온 상황을 나타낸다. 마가복음 6장 7~13절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 보내셔서 회개를 선포하게 하시고, 귀신을 쫓아내며 병자를 고치는 사역을 하게 하셨다. 제자들은 열심히 사역을 했고, 돌아와서 예수님께 보고하느라 안식할 틈도 없이 바쁜 상황이었다.
[마가복음 6:31]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좀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예수님과 제자들은 끝없는 사람들의 요청과 몰려드는 무리들로 인해 쉴 시간조차 없었다. 먹을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바빴다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는 제자들이 사역으로 지칠 대로 지쳤음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그들을 단순한 ‘일꾼’으로만 대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영육 간의 회복을 배려하신다.
너무 놀라운 장면이다. 예수님이 정말 양을 사랑하는 목자이며, 진정한 지도자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왜 예수님은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좀 쉬라고 말씀하셨을까?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있는 시간은 ‘훈련’의 시간이다. 훈련이란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다. 예수님이 3년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던 모든 제자 훈련은 앞으로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제자들이 바통을 이어받아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지속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주 중요한 영적 원리를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제자들은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이 다 쏟아부어 내고 있다. 물론 다 쏟아부어 내야 하는 상황이 있다. 그때는 다 쏟아부어 내야 한다. 사역도, 예배도, 일도 쏟아부어야 하는 때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다 쏟아부어 낸 후 예수님은 어떤 일을 하셨는가? “한적한 곳에 가서 좀 쉬어라”라고 말씀하셨다.
’한적한 곳‘
한적한 곳은 어떤 곳인가? ’안식‘이 있는 곳이다. ’안식‘은 샤밧이다. 가장 최초로 안식을 하신 분은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일하셨다. 그리고 안식하셨다. 일은 쏟아부어 내는 것이다. 그리고 안식하셨다는 것은 ‘재창조’를 위한 지속 가능한 상태를 만드신 것이다. 놀랍다. 하나님이 안식하신 것은 ‘재창조’의 지속 가능한 삶을 친히 보여 주신 것이다. 안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멈추는 시간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멈추는 것이다. 그리고 점검하는 시간이다. 공급받는 시간이다. 깊어지는 시간이다. 이 시간이 있어야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다.
‘광야의 만나’
[출애굽기 16:23-27] 23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일은 휴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라 너희가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고 그 나머지는 다 너희를 위하여 아침까지 간수하라 24 그들이 모세의 명령대로 아침까지 간수하였으나 냄새도 나지 아니하고 벌레도 생기지 아니한지라 25 모세가 이르되 오늘은 그것을 먹으라 오늘은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오늘은 너희가 들에서 그것을 얻지 못하리라 26 엿새 동안은 너희가 그것을 거두되 일곱째 날은 안식일인즉 그 날에는 없으리라 하였으나 27 일곱째 날에 백성 중 어떤 사람들이 거두러 나갔다가 얻지 못하니라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내려 주셨지만, 안식일에는 만나를 주지 않겠다고 하시며, 안식 전날 두 배를 거두라고 명령하셨다. 일부 백성들은 안식일에도 만나를 거두려고 나갔다가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그들은 안식일 전에 유일하게 하루를 넘길 수 있는 만나를 공급받는다. 안식일에 그들이 해야 한 것은 누가 만나를 공급하시는지 멈추어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깊이 인식하고 다시 새롭게 나아갈 좌표를 점검하는 것이다.

3. 공급이 없을 때(샤밧이 없는 삶)

하나님은 우리의 삶 가운데 다 쏟아부어야 하는 시간들을 주신다. 엘리야도 갈멜 산에서 다 쏟아부었다. 그 후에 로뎀에서 엘리야를 다시 회복시키신다. 멈추게 하시는 시간이 있다. 모세를 보라. 도망자로 광야에 왔지만 광야의 멈춤을 통해 하나님은 모세의 내면을 만지셨다. 다음 단계로 강력하게 도약하는 시간이 멈춤의 시간을 통해서 마련되었다. 지금 한국과 전 세계는 모든 것을 쏟아부어 내고 있다. 쏟아부어 내야 하는 때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쏟아부어 낸 다음 반드시 엄청난 후폭풍이 온다. 공허함이 온다. 바로 그때 탈선이 일어난다. 에덴의 아담과 하와의 탈선은 어려울 때가 아니라 힘의 정점에서 일어난 일이다. 명심해야 한다. 힘의 절정은 모든 것을 쏟아부어 낸 시간이다. 전쟁의 시간이다. 전투의 시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공급해야 한다. 사탄은 모든 것을 쏟아붓고 난 후를 노린다. 승리 뒤를 노린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쏟아부은 제자들에게 한적한 곳에 가서 쉬라고 말씀하셨다. 왜 그러셨을까? 예수님의 사역 또한 모든 것을 쏟아부어 내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꼭 한적한 곳에 가셔서 지속 가능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만드셨다. 진정한 지도자라면 다음 단계를 예비해 주어야 한다. 허탈하지 않도록 다음 단계를 준비시켜 주어야 한다.

4. 다음 단계로 도약하는 발판, ‘한적한 곳과 우리들의 일상’

‘한적한 곳’으로 가야 한다. 회중의 함성 소리가 멈추게 될 것이다. 다시 그곳으로, 일상으로 돌아가서 준비해야 한다. 이슈는 중요하다. 골리앗이라는 이슈는 중요하다. 이슈의 역할은 ‘판’이 바뀌는 게이트의 역할이다. 그러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도약의 발판은 이슈가 아니라 다윗의 일상이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다윗의 한적한 곳이다. 그 한적한 곳이 다윗의 일상이다. 오늘 내 일상의 삶들은 소중하다. 오늘 내 일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본 사람이 결국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다. 한적한 곳으로 나아가라. 한적한 곳을 확보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