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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작(Cultivation) 2. 무너짐의 시간 속에서 마련되는 도약의 발판 (무너짐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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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1:3-5] 3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5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1. 애통하는 자의 복

[마태복음 5:3-4]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예수님은 팔복을 통해서 천국의 가치를 가르치신다. 가치는 존재 이유이며 우선순위에 관한 것이다. 가치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모든 존재마다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존재해야 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면 공허하고 허무해진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존재 이유는 명확하다.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특별한 공간, 에덴을 경작하는 것이다. 그것은 창조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그래서 인간의 존재는 소중하다. 죄는 인간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파괴했다.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함께 거하던 에덴에서 추방당했다. 하나님을 잃었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잃었다는 것이다. 존재 이유를 잃어버린 인간은 땅에서 다른 것을 구하기 시작했다. 육신적인 것을 구하기 시작했고, 바벨처럼 썩어 없어질 것을 세우기 시작했다. 바벨의 결과는 무너짐이다. 멸망이다. 혼돈이다. 죽음이다. 다시 말해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고, 전진할 곳이 없다는 것이다. 절벽과 같은 상황이다.
‘진짜 죄의 속성’
진짜 죄의 속성의 무서움은 깨닫지 못하는 것에 있다. 잠언을 보면 과격할 정도의 강한 표현으로 인간의 어리석음을 말하고 있다.
[잠언 26:11-12, 표준새번역] 11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듯이, 미련한 사람은 어리석은 일을 되풀이한다 12 너는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사람을 보았을 것이나, 그런 사람보다는 오히려 미련한 사람에게 더 희망이 있다
토한 것을 다시 먹는 것은 ‘개’라는 것이다. 미련한 사람은 그와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그 사람은 12절의 기록처럼 스스로 지혜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스스로 지혜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없는 존재이다. 인간의 지혜와 미련함의 기준과 하나님의 기준은 다르다. 진짜 신앙은 ‘죄의 속성’에 대해 아는 것이다.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를 구별할 줄 아는 것이다.
‘팔복’
예수님은 오셔서 진짜 복을 말씀하신다. 팔복은 세상의 복과 다르다. 천국의 속성이며 존재 이유이다. ‘팔복’ 안에 다 들어 있다. 그래서 팔복은 강력하다. 팔복이 강력한 이유는 인간의 무너짐과 절벽과 같은 상황에 대한 답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반드시 무너진다. 멸망한다. 한순간도 나아갈 수 없는 절벽과 같은 절망에 이른다. 방법이 없다. 그런데 팔복은 무너짐의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오히려 그 무너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무너짐 속에서 하늘이 열린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무너짐 속에 있던 사람이다. 나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교만한 사람은 예수님을 만날 수 없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복음이 진짜 강력한 이유는 무너진 사람들에 대한 소망이기 때문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
팔복의 시작은 ‘심령이 가난한 자’로 시작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무너진 자들이다. 하나님 없는 육신의 무너짐을 아는 자들이다. 죄로 인한 육의 무너짐은 예수를 찾게 한다.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천국 백성’이 된다.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 그래서 가난한 심령이 중요하다. 가난한 심령의 유익은 세상이 아니라 천국을 갈망하게 한다. 그 순간 인간은 천국에 정렬된다. 우선순위가 세워진다. 천국의 실체를 경험한다. 공급하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알게 되는 놀라운 순간이다.
‘애통하는 자의 복’
두 번째는 애통하는 자의 복을 누리게 된다. 애통함은 안타까움을 말한다. 소망이 있는 후회이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그래서 우는 것이다. 예수님께 죄송하고, 하나님께 죄송하다고 고백하기 시작한다.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예수님께 감사하기 시작한다. 그 사람이 위로를 얻는다. ‘멸망에서 끝나지 않았구나’를 아는 것이다. 나같이 부족한 사람을 살리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해 다시 일어서는 순간이다. 그래서 무너짐을 통해 애통하는 심령은 하늘의 소망과 비전이 부어지는 놀라운 순간을 경험하며, 그것은 앞으로 도약하는 믿음의 발판이 된다.

2. 느헤미야의 무너짐

(1) 무너짐의 시간
[느헤미야 1:3-5] 3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5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의 무너짐을 보고 절망한다. 4절을 보라. 그는 절망의 소식에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했다. 절망은 달리 어떤 방법도 없는 순간이다. 할 수 있는 일이 우는 것뿐이다. 그런데 놀라운 장면이 있다.
(2) 킹덤 마인드, 리더의 생각(존재다움의 생각)
느헤미야는 무너짐 속에 갇혀 있지 않았다. 그가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무너짐의 순간에 절망한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금식하며 기도했다. 사방이 막혀 있는 절망의 시간이기 때문에 그는 위에 계신 하나님께 금식하며 간구했다. 우리는 이 순간에 주목해야 한다. 느헤미야가 절망의 순간에 갇혀 있지 않고 금식하며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의 사람’, ‘리더’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아주 중요한 영적 원리가 있다. 그 사람의 존재 됨은 생각을 보고 아는 것이다. 아들은 아들의 생각을 한다. 리더는 리더의 생각을 한다. 생각의 차원이 다르다. 장군은 장군답게 생각하고, 사병은 사병답게 생각한다. 명심해야 한다.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사람이며 리더이기 때문에 금식하며 기도한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존재다움의 생각’이다. 명심해야 한다.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죽은 나사로를 “잔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모든 인간은 죽은 나사로를 보았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른 생각을 하신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예수님다운 생각을 하시는 것이다.
(3) 도약의 발판, 전진해 앞으로 나아가다
[느헤미야 1:9-10] 9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10 이들은 주께서 일찍이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느헤미야는 금식하며 기도한 이후 간구한다. 재건을 간구한다. 회복을 간구한다. 언약을 붙잡고 나아간다. 절망의 시간에 우리에게 어떤 사람이 필요하며 어떤 신앙이 필요한지를 느헤미야를 통해 알아야 한다. 그리고 느헤미야의 생각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는 도약의 발판을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4) 비전이 그림이 되고 설계도가 된다
[느헤미야 2:5-8] 5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6 그 때에 왕후도 왕 곁에 앉아 있었더라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몇 날에 다녀올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하고 왕이 나를 보내기를 좋게 여기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7 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거든 강 서쪽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그들이 나를 용납하여 유다에 들어가기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8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그가 성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내가 들어갈 집을 위하여 들보로 쓸 재목을 내게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고
느헤미야의 다음 단계는 구체적인 회복과 재건의 설계도를 그리는 것이다. 무너짐의 때에 필요한 사람은 위로의 사람이 아니다. 위로를 넘어 비전의 사람이 필요하다. 비전이 위로이다. 비전이 소망이다. 비전이 회복이다. 무너짐의 때에 비전은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는 도약의 발판이 됨을 기억하라. 구체적으로 그려야 한다. 명심하라. 바라는 대로 된다. 비전대로 된다. 분석이 아니다. 비전의 설계도를 그려라. 내가 비전의 설계도를 그려서 구체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이미 하늘 문이 열렸음을 알아야 한다. 느헤미야의 설계도는 다음과 같이 분명했다.
5절 - 느헤미야는 비전이 선명했다. 문이 열렸을 때 분명하게 성을 건축하게 해 달라고 말한다.
6~7절 - 느헤미야는 자신이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조서를 달라고 분명히 말한다.
8절 - 느헤미야는 구체적으로 삼림 감독에게 조서를 내리게 하셔서 성전에 속한 문을 건축할 들보의 재목을 달라고 구체적으로 말한다.
(5) 느헤미야 기도회
우리는 느헤미야 기도회를 통해 구체적으로 구할 것이다. 느헤미야는 무너짐 속에 있는 우리들을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도약의 발판이 될 것이다. 조이풀은 느헤미야 기도회를 통해 순식간에 도약할 것이다. 그날을 기대하며 기도하자.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