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3:1-3]
1 그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
2 그 다음은 여리고 사람들이 건축하였고 또 그 다음은 이므리의 아들 삭굴이 건축하였으며
3 어문은 하스나아의 자손들이 건축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1. 느헤미야가 성벽과 문을 재건하는 이유
예루살렘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 무너짐이 그에게 절절한 아픔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기도와 금식으로 하나님께 나아갔고, 재건을 위한 하나님의 비전을 받았다. 느헤미야의 재건에는 목표가 있었다.
[느헤미야 2:17]
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떠났을 때 심판과 아픔을 겪었다. 무너짐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원수에게 능욕과 수치를 입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성을 건축하는 분명한 이유를 밝힌다.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마찬가지이다. 오늘 우리 삶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말씀과 언약이 다시 회복되어야 한다. 다른 이유가 아니다. 무너지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무너진 삶과 사람과 영역을 회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다. 복음은 무너짐으로 인한 절망과 저주, 묶임과 수치에 갇혀 사는 사람들을 다시 세운다. 복음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분명하다.
[요한복음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성벽과 문을 재건하는 이유는 위 말씀처럼 원수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생명과 풍성함’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분명히 알아야 한다.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다시 세우신 이유는 고난을 주시기 위함이 아니다. 생명의 풍성함과 영광의 승리를 주시기 위함이다. 우리가 바라보는 십자가는 고난의 십자가가 아니라 고난을 이기신 영광의 십자가라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이사야 61장의 콜링의 말씀이 바로 재건의 사역이다.
[이사야 61:1-3]
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절 - 여호와가 내게 기름(권위와 할 수 있는 능력)을 부어 주시는 이유는 분명하다.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시기 위함이다. 아름다운 소식이란 세상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이 아니다. 마음이 상한 자가 치유를 받는다. 포로된 자와 갇힌 자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아름다운 소식이다. 그래서 복음은 아름답다.
2절 -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한다. 위로의 사역이 필요한 때이다. 교회는 위로가 가득해야 한다. 슬픈 자의 마음에 공감하고 함께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3절 -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준다. 화관은 신부에게 필요하다. 사랑으로 회복된 신부들이 일어난다. 하나님을 향한 깊은 사랑이 회복된다. 기쁨의 기름이 부어진다. 모든 사역을 기쁨으로 감당하게 된다. 찬송의 옷을 입은 사람들을 통해 깊고 기쁜 예배가 회복된다. 마지막으로 의의 나무로 심겨져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 ‘의’는 불의가 없어지고 억울한 사람이 없어지는 완전한 하나님 나라를 말한다.
2. 재건의 시작, ‘예배’
오늘 말씀을 보면 느헤미야가 재건을 위해 가장 먼저 중수한 문은 ‘양문’이다. 각 문은 역할과 기능이 있다. 여기에 아주 중요한 영적 원리가 있다. 재건은 모든 것을 새롭게 다시 세우는 일을 말한다. 다시 무너지지 않기 위해 세우는 중요한 작업이 재건이다. 재건의 때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오늘 느헤미야 3장에 기록된 각 문과 성벽과 망대의 일들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느헤미야가 재건을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양문’을 중수하는 일이었다.
(1) 예배를 가장 먼저 세워야 한다
[느헤미야 3:1] 그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은 영적인 일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영적인 일은 하나님의 일이다. 하나님의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때 임하는 통치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인정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 ‘예배’이다. 예배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가장 중요한 존재의 이유이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와 만나신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 받은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이다. 예배는 임재를 통해 하나님의 다스림이 이 땅에 실재가 되게 하는 것이다. 왜 선교하는가? 왜 전도하는가? 왜 치유하고 회복해야 하는가? 죄 사함의 용서를 받은 이유는 무엇인가? 예배하기 위함이다. 다른 어떤 이유도 아니다. 마지막에 성도들이 영원히 해야 할 일이 예배이다. 예배가 모든 것의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양의 문’
제사에 사용될 희생 제물용 양들이 이 문을 통해 성전으로 들어간다. 제사장들은 이 문을 건축한다. 양의 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상징으로도 자주 해석된다.
[요한복음 10: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예수님은 스스로 양의 문이라고 하셨다. 느헤미야가 가장 먼저 제사장들을 선별해 양의 문을 중수한 일이 재건을 위해 얼마나 실제적인 일인지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가장 먼저 제사장들을 구별해 문을 중수하게 한 것이다. 그리고 그 문을 거룩하게 했다는 것은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거룩함이기 때문이다. 거룩함은 성별이다. 구별되는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재건을 위해 예배의 문을 가장 먼저 거룩하게 중수해야 한다. 거룩함은 구별이다. 성별이다. 이제 이분법적인 신앙, 삶과 신앙이 분리된 예배, 앎과 행동이 분리된 신앙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예배의 문을 다는 것이 무너진 재건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이제 내 마음에, 가정에, 일터에, 교회에 양의 문을 달아야 한다.
(2) 어문
‘물고기 문’
3절에 보면 양의 문 다음으로 어문을 중수한다. 물고기 문은 북서쪽 지역, 갈릴리와 지중해에서 잡힌 물고기들이 예루살렘 시장으로 들어오던 문으로 상업의 통로이다. 어문은 추수와 경제적 부흥을 상징한다. 놀라운 말씀이다. 예배를 세울 때 실제적인 추수가 일어난다. 땅의 회복이 일어난다. 예배는 실제로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 통로이다. 예배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내 삶에 추수가 일어난다. 땅의 회복이 일어난다. 하늘의 예배와 땅의 축복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 예배의 양의 문을 중수해야 그 다음의 어문을 중수할 수 있음을 명심하라.
(3) 북쪽의 방어
예루살렘의 성문들은 모두 군사적 방어 시설의 일부였고, 어문도 예외가 아니었다. 성문은 평상시에는 사람과 물자의 출입로이지만, 전시에는 적의 공격을 막아 내는 최전선이 된다. 느헤미야 3장 3절에서 어문의 재건을 기록할 때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다”고 구체적으로 언급된 것을 통해, 이 문이 튼튼한 문짝과 잠금 장치로 보강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문짝, 빗장, 볼트 등은 모두 군사적인 방어 장치로서, 적의 침입을 지연시키고 막아 내는 역할을 했다. 이런 세부 사항까지 기록한 느헤미야서의 서술은, 어문이 단순히 통행을 위한 문이 아닌 전략적 요충지였음을 말한다. 어문이 위치한 북쪽 성벽 구간은 지형적 약점에 속한다. 서쪽이나 남쪽 성벽은 계곡 지형 덕분에 접근이 어려웠던 반면, 북쪽은 개활지가 넓어 적군이 대거 진격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북벽의 관문인 어문에는 특별한 경계와 방비가 필요했다. 느헤미야가 북쪽의 양문과 어문을 망대와 함께 먼저 재건한 것은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취약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강화한 것이다. 언제나 원수는 가장 중요한 곳을 공격한다. 명심하라. 재건에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약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양문과 어문을 구축하는 것이다.
(4) 양문과 어문의 재건을 위해 총력전을 기울이라
다른 것에 신경 쓰지 마라. 양문과 어문의 중수를 위해 총력전을 기울여 세워야 한다. 그래야 원수로부터 보호되고 이길 수 있다. 느헤미야는 영적인 사람이며 실제적인 사람이다. 영적인 것은 추상적이지 않다. 우리는 이 기도회를 통해 예배를 세워 가고 있다. 이 일을 통해 어문이 열리는 축복을 보아야 한다. 할렐루야! 이제는 타협하지 말고, 예배를 세워라. 최선을 다해 예배를 세워라. 모든 것을 부어서 예배를 세워라. 그 일이 내 삶과 가정과 일터의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가장 중수하고 싶은 것이 예배라는 사실을 깨닫고 예배를 세우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