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1:16-18]
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18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1. 진정한 가족의 의미
오늘은 가족 주일이다. 가족은 내 인생의 전부라고 할 만큼 출생, 동거, 마지막을 함께하는 사람들이다.
가족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가족(家族) : 대체로 혈연, 혼인으로 관계되어 같이 일상생활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공동체) 또는 그 구성원.
가족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이 반드시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거하도록 직접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족은 우리가 생각하는 가치 이상의 것이다.
가족의 원형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 그리스도, 성령 하나님은 하나로 함께하신다. 세 분은 누구도 나눌 수 없는 존재적 관계로 하나되어 함께하시는데 이 모습이 바로 가족이다.
2. 함께하겠다는 메시지
성경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주고 싶으신 공통적인 메시지가 있는데 바로 ‘함께하겠다’라는 것이다.
[이사야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여호수아 1: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시편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마태복음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함께하시겠다는 구절의 상황을 보면 ‘함께함'의 의미가 명확히 전달된다. 이사야 41장의 함께함은 두려움의 상황이다. 여호수아 1장 9절의 여호수아는 곧 맞닥뜨릴 상황이 쉽지 않다. 마태복음 28장 20절은 세상 끝의 어렵고 환난과 핍박이 있는 상황이다. 시편 23편 4절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이 또한 어려운 상황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태복음 1장 23절에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이 땅이 어렵기 때문이다.
왜 함께하는 가족이 필요할까? 그 이유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아담과 하와는 가족으로 함께 창조되었다. 아담의 가족을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다. 그런데 사탄이 와서 하와를 미혹한다. 하와의 미혹에 자동으로 넘어간 사람은 아담이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함께 거하는 가족이기 때문이다. 에덴에서의 추방 또한 가족 단위로 추방을 당했다. 그때부터 이들 앞에 있는 상황은 어려운 상황이다. 놀라운 사실은 죄도 함께 지었지만, 심판도 함께 받았고, 어려움도 함께 이겨 나간다.
그래서 ‘함께하는’ 가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다.
가족은 가깝기 때문에 많은 갈등이 있다. 그런데도 어려울 때 남는 것은 가족뿐이다. 그래서 가족은 소중하다.
3. 나오미의 가족
룻기에서는 ‘함께한다’는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깊이 볼 수 있다. 룻기의 배경은 다음과 같다.
(1) 영적으로 어두운 때
룻기 1장 1절에 보면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시기는 영적 혼란과 도덕적 타락이 만연한 때였다.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는 사사기 17장 6절이 이를 뒷받침한다.
(2) 경제적으로 어려운 때
룻기 1장 1절에는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흉년은 경제적으로 가장 힘든 때이다.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경제적 어려움은 정말 고통스럽다. 사람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것이 의식주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의식주 문제에 직격탄을 맞기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이 가장 힘든 고통이라고 할 수 있다. (생존에 위협을 받기 때문이다)
원래 베들레헴에 살던 가족이 흉년 때문에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으로 이주한 어려운 상황이었다. 모압은 현재 요르단 동쪽 사해 지역에 위치한 이방 족속의 지역으로 이스라엘과 관계가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이 이주민의 삶을 살기로 결정했다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어렵다는 것이다.
(3) 비극적 상황
룻기 1장 3~5절에 보면 어렵게 이주해 온 모압 땅에서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는다. 나오미는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의 아내로 모압 여인 룻과 오르바를 얻었지만, 이들과 함께 기거한 지 10년 정도 되었을 때 두 아들 말론과 기룐 또한 죽는다. 이런 어려움이 있을 수 있겠는가? 나오미의 현실에 닥친 어려움을 생각해 보라! 어려움을 피해 이주해 온 모압 땅에서 상상을 초월한 어려움에 처했다.
(4) 나오미의 결단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나오미는 마지막 결단을 한다.
[룻기 1:6-7]
6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7 있던 곳에서 나오고 두 며느리도 그와 함께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가다가
나오미는 여호와가 그분의 백성을 먹이시고 돌보신다는 소식을 듣는다. 나오미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마지막 결단을 한다. 살기 위해 모압으로 이주했는데 완전히 절망적인 상황이 되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나오미의 심정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때 6절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라는 구절과 7절에 ‘두 며느리도 그와 함께 하여’라는 구절을 주목해야 한다.
어려운 상황에 남은 것은 가족인 두 며느리뿐이다.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의 방법은 ‘함께하는’ 가족이라는 것이다.
이 사실이 가족의 존재 이유이다. 가족이 달리 소중한 것이 아니다. 가족이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의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하나님의 관점에서 가족을 바라볼 수 있다.
4. 함께하지 말아야 할 백만 가지 이유
이런 상황 속에서 나오미는 결단한다. 젊은 며느리들의 미래를 위해 이별을 결심한다. 며느리들과 이별해야 할 나오미의 이유는 너무나 명확했다.
(1) 민족 간 사이가 나쁜 상황에 모압 여인들이 유다 베들레헴으로 가서 겪을 어려움을 예상했다.
(2) 당시 형사 취수 제도가 있었지만, 죽은 두 아들의 형제가 없는 상황에 며느리들과 함께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룻기 1:11]
나오미가 이르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내 태중에 너희의 남편 될 아들들이 아직 있느냐
(3)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있다
[룻기 1:13]
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으며 어찌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하매
‘치셨다’의 원 뜻은 ‘징벌’, ‘심판’, ‘고통을 주다’이다. 며느리들은 남편도 없이 미래가 불행할 것을 감수하면서도 나오미와 함께하기로 했다. 나오미는 이런 며느리들에게 영적인 이유까지 더해 말한다. 지금의 이 모든 상황은 하나님이 자신을 징계하시는 것, 즉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것이다. (아마도 모압 땅으로 이주했던 것에 대한 자책) 자신 때문에 생겨난 고통인데 아무 관계없는 며느리들이 고통을 받는 것이 나오미에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오미는 마음이 아프다고 토로한다.
5. 축복을 위한 결단
함께하지 말아야 할 백만 가지의 합리적 이유가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두 가지 중요한 결단을 한다. (나오미와 룻의 결단)
(1) 오르바를 향한 나오미의 결단
[룻기 1:14-15]
14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15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함께하겠다고 했던 며느리 오르바는 마음이 아프지만 모압 땅에 남기로 결정한다. 모압에 남기로 한 오르바의 결정은 오르바의 입장에서 잘못된 결정이 아니었다. 나오미는 룻에게 오르바에 대해 15절에 “오르바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갔다”라고 말한다. 오르바의 결정을 존중한 것이다. 나오미가 어떻게 오르바를 보냈겠는가? 저주해서 보냈겠는가?
여기까지 함께 따라와 준 며느리가 얼마나 고마웠겠는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시어머니를 잘못 만나서 며느리 오르바가 어렵겠구나'라고 생각하지 않았겠는가?
나오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결단은 두 며느리를 위해 좋게 하겠다는 결단이다. 이 결단이 필요하다. 어떤 상황 속에서 우리는 상대방에 대해 축복의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오미의 결단은 복되다. 진심으로 며느리들을 위해 아끼고 축복하는 마음으로 가득했다. 우리도 이와 같은 결정들을 해야 한다. 상대방이 잘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결정을 해야 한다.
(2) 나오미를 향한 룻의 결단
[룻기 1:16-18]
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18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두 번째는 룻의 결단이다. 룻이 나오미와 함께하겠다는 태도는 결연하다. 나오미가 이별해야 하는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해도 상관없다. “나오미가 어떤 선택을 하든 나는 당신과 함께하겠다는 굳은 결심이 있다. 나의 존재 됨은 이제부터 어머니를 위해서이다. 어머니가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가 머무시는 곳에 나도 머물겠다. 나는 모압 여자이지만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 어머니께서 죽는 곳에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다. 내가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기를 간구한다.”
어떻게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나오미를 향한 룻의 결단은 모든 합리적 이유를 넘어선다. 민족적 정체성, 신관 등 모든 것이 중요하지 않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어머니 나오미뿐이다. 이런 룻의 결단에 나오미는 말하기를 멈추었다. 놀라운 장면이다.
룻 또한 나오미에게 축복의 존재가 되기로 결정한 것이다. 오늘 이 모습 속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보인다.
하나님이 죄인 된 인간과 함께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백만 가지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죽이셔서 우리와 함께하셨다.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셔서 그 결심을 확증하셨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이 얼마나 깊고 강인하고 분명한 약속인지를 알아야 한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하겠다”는 약속이 하나님의 굳은 결심으로부터 온 약속이라는 사실을 알 때 우리는 모든 어려움을 이길 수 있다.
하나님은 정말 우리와 함께하신다. 그 말은 하나님이 우리를 가족으로 여기신다는 것이다. 자신의 아들을 죽이면서까지 우리를 자녀로 받아 주신 하나님의 이 절대적 사랑의 다짐을 꺾을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오늘 그 사랑이 우리와 함께하신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그와 같은 사랑으로 절망과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함께’의 존재가 되어야 한다. 상황과 환경이 아닌 절대적 축복과 사랑으로 함께해야 한다. 할렐루야!
어떤 어려움도 가족 됨의 사랑으로 이길 것이다. 그 아름다운 동행이 우리 앞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