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37:9-10]
9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10 이에 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1.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과정
어떤 일이든 그 일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있다. 과정은 어떤 일이 활성화되는 최적의 조건을 말한다. 하나님의 일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는 최적의 조건이 있다.
(1) 소망
하나님의 일은 ‘소망’을 통해 착상된다. 소망은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말한다. 여기에 아주 중요한 영적 원리가 있다. 영적인 세계가 움직이는 조건은 인간의 지혜와 지식, 논리 체계, 인간의 힘이 아니다. 언제나 낮은 차원은 높은 차원의 지배를 받는다.
더 높은 차원인 영적인 세계가 움직일 수 있는 조건은 단 하나이다. ‘갈망’이다.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하나님께 인간의 힘과 지혜와 지식과 능력이 필요하겠는가? 오히려 하나님은 인간이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이다. 하나님이 필요하신 것은 단 하나이다. ‘간절한 소망’이다. 예수님의 예를 보자.
‘시각 장애인 바디매오에게 하신 말씀’
[마가복음 10:51-52]
51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베데스다 못가의 병자에게 하신 말씀’
[요한복음 5: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두 명의 시각 장애인에게 하신 말씀’
[마태복음 20:32-34]
32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들을 불러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3 이르되 주여 우리의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34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
예수님을 통해 하늘의 능력과 치유가 나타난 세 사건의 공통점은 간절한 소망이다. 예수님도 분명히 물으신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네가 낫고자 하느냐?”,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하나님 나라의 일은 어느 곳에서 현실이 되는가? 간절히 소망하는 곳이다. 간절히 원하고, 소망하는 마음이 있어야 그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바라는 것’
[히브리서 11:1-2]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바라는 것’의 헬라어 원뜻은 막연한 바람, 단순한 소망이 아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근거로 한 확신에 찬 기대를 말한다.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해서 미래에 반드시 실현될 사실에 대한 현재의 확신이 ‘바라는 것’이다. 반드시 이루어 질 줄 알고 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말씀을 들음에서 오는 것이다. 말씀을 듣게 될 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겨나는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이것을 반드시 경험해야 한다.
믿음이 없는 것은 말씀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람과 소망이 없고, 낙담과 좌절과 두려움, 걱정으로 가득한 것이다.
2절을 보라. 믿음의 선진들은 확신에 찬 소망으로 분명한 증거를 얻었다고 말씀하고 있다.
(2) 에스겔 37장
오늘 본문은 에스겔 37장이다. 마른 뼈가 가득한 죽음의 골짜기가 나온다.
[에스겔 37:1-2]
1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2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뼈가 가득한 골짜기는 생명이 없는 곳이다. 절망이다. 2절에 마른 뼈라는 표현이 있다. 마른 뼈라는 것은 시간이 오래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절망의 상태, 죽음과 소망이 없는 상태가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마른 뼈는 누구인가? 절망에 빠진 이스라엘이다.
[에스겔 37:11]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마른 뼈는 이스라엘 백성의 상태를 말한다. 조국을 잃고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며, 예루살렘 성전도 파괴된 절망의 상태이다. 스스로 소망이 없고 멸절된 상태(죽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1절에 보면 하나님은 작정하시고 권능으로 에스겔에게 임재하셔서 마른 뼈가 가득한 곳, 죽음의 골짜기에 두신다. 그리고 질문하신다.
‘하나님의 질문’
[에스겔 37:3]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은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라고 질문하신다. 이에 대해 에스겔은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한다. 놀라운 대답이다. 에스겔은 상황을 분석하지 않았다. 상황을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과 분석의 함정에서 나오라’
왜 하나님의 일이 이 땅에서 현실이 되지 않는가? 그 이유는 너무나 명확하다. 인간의 머리로 상황을 보기 때문이다.
이미 머리에서 분석과 설명으로 하나님의 일을 제한하고 있는데 어떤 역사가 일어나겠는가? 머리가 시키는 대로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의 능력에 제한을 두었는데 어떤 일이 나타날 수 있겠는가? 그 마음 안에 소망이 있겠는가? 마른 뼈를 분석한 절망과 두려움과 좌절의 데이터만 가득할 뿐이다.
현대 기독교는 설명과 분석의 함정에 빠져 있다. 마음이 아니라 머리를 위한 기독교가 되어 있다. 혼적인 기독교가 되어 버렸다.
에스겔 37장의 상황은 혼적인 머리로 절대 이해할 수 없다. “마른 뼈들이 살아나겠느냐?”라는 하나님의 질문은 오히려 상황을 하나도 모르겠기에 화가 나는 질문이다.
오늘 내가 마른 뼈와 같은 절망의 현장, 절망의 사람들 속에 있다면 하나님은 “이들이 살아나겠느냐?”라고 동일하게 질문하실 것이다.
그때 나는 어떻게 말하겠는가? 이 상황을 설명하고 분석하겠는가?
에스겔은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한다. 이 말은 단순히 모른다는 대답이 아니다. “나의 판단과 분석과 이해로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라는 하나님에 대한 강력한 신뢰의 대답이다.
누가 마른 뼈를 살게 할 수 있는가? 이들이 살아날 수 있다고 간절히 소망하는 사람이다. 명심하라. 살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있는 사람이다.
병에 관련된 유튜브를 보면서 분석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일도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분석과 설명이 하나님의 일을 막을 것이다.
2. 살리는 사람
마른 뼈를 살게 하려면 먼저는 ‘살리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두 번째로 살리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일은 살리고 싶은 마음이 있는 에스겔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에스겔 37:4]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절망과 죽음의 시간이 오래된 마른 뼈에게 대언하라고 말씀하신다. 대언한다는 것은 단순한 미래에 대한 예언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다.
마른 뼈를 살게 하는 사람이 에스겔이다. 하나님의 기적은 살리는 사람의 선포를 통해 일어난다. 머리의 사람이 아니라 ‘마음의 사람’이 살리는 사람이다.
‘나는 오늘 어떤 사람인가?’
살리는 사람인가? 죽이는 사람인가?
오늘 나의 말은 살리는 말인가? 분열과 절망을 가져오는 말인가?
이 시대는 똑똑하고 상황을 분석하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 이 시대는 영적인 사람이 필요하다. 옛 자아를 십자가에서 처단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자기를 부인하는 제자가 필요하다.
조이풀교회는 혼적이고 육적인 사람이 아니라 영적인 사람, 성령 충만한 사람으로 가득해야 한다. 어떤 상황, 어떤 누구를 만나도 살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3. 살려 내는 바람
살리고 싶은 마음, 살리는 사람이 준비되었다면 마지막은 ‘살려 내는 바람’이다.
결국, 마른 뼈를 살릴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애당초 에스겔을 마른 뼈의 골짜기로 데려가지 않으신다. 살리는 사람이 준비되면 하나님은 하늘 문을 여신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살리는 일을 하신다.
오늘 그 증거가 8-9절에 있다.
[에스겔 37:8-9]
8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9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에스겔 37:10]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오늘 말씀을 보면 형태적으로는 회복되었지만, 아직 그 속에 생기가 없었다. 생기는 ‘루아흐’이다.
창세기 2장 7절에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는 말씀과 같이 생기는 살리는 바람이다.
요한복음 20장 22절에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는 말씀대로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숨(호흡)을 내쉬며 성령을 부어 주셨다.
9절을 보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나님은 살리는 바람을 불어 주신다. “살아나게 하라”고 선포하신다. 분석, 설명이 없다. 선포이다. “살아나게 하라.” 얼마나 강력한 선포인가? 그때 살아나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사방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다.
[에스겔 37:9, NIV]
Come, breath, from the four winds and breathe into these slain, that they may live.
동서남북, 모든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다. 개인, 가족, 공동체, 교회, 일터, 국가와 열방 등 모든 곳을 살게 할 바람이다.
조이풀교회는 사방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four winds)이 필요하다. 사방으로부터 불어오는 살리는 바람의 게이트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느헤미야 기도회로 간절히 나아가는 우리에게 사방으로부터 불어오는 살려 내는 바람을 약속하셨다.
오늘 선포하자. 살려 내는 바람아, 불어오라. 모든 영역에서 불어오라.
절망에 빠진 사람을 살게 하라. 재정으로, 건강으로 절망에 빠진 마른 뼈를 살게 하라.
한국 교회를 살게 하라. 다음 세대를 살게 하라.
가정을 살게 하고, 부모님과 자녀들을 살게 하라.
온 열방을 살게 하라.
4. 살리고 싶은 마음, 살리는 사람, 살려 내는 바람은 하나님의 약속이다
[에스겔 37:14]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