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4:6-7]
6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7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1. 마지막 때의 특징
성경은 마지막 때를 노아의 때와 같다고 말씀한다.
[마태복음 24:37-39]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성경은 마지막 때를 모호하게 말씀하지 않는다. 노아의 때와 같다고 말씀한다. 노아의 때는 심판의 때이다. 이미 땅은 악함으로 심판의 경계선을 넘었다. 이미 심판이 언도되었다. 마지막 때는 심판의 때이다. 이미 심판이 언도되었다고 하는 것은 악이 그 절정을 향해 나아가는 무법천지의 시대라는 것이다.
노아의 때는 홍수의 심판이 이미 예고되었다. 지금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심판의 홍수는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심판의 홍수 앞에서 노아의 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보여 주는 태도는 놀랍다.
잠자는 교회, 분별하지 못하는 교회가 있다는 것이다. (믿지 않는 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어떤 흐름이 교회를 주도하고 있는가? 38절을 보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했다고 말씀하고 있다.
사탄은 마지막 때에 교회와 성도들을 둔감하게 한다. 성경에서 예언된 일이 일어나도 관심이 없다.
2. 마지막 때는 메시지가 아니라 ‘모멘트’이다.
마지막 때에 주목할 것은 메시지가 아니다. 메시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어떻게 보면 메시지는 모멘트가 일어나기 전의 일이다. 마지막 때는 비가 올 것이라는 메시지가 아니라 떨어지는 한 방울의 빗방울, 모멘트에 주목해야 한다. 한 방울의 빗방울이 떨어지는 그 순간이 모멘트이다.
그래서 노아의 때는 한 방울의 빗방울이 떨어지는 순간(모멘트)을 알아야 한다. 이 말은 미룰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에 집중해야 한다.
한 방울의 빗방울 안에는 멈추지 않고 사십 주야를 내리는 홍수가 담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내게 주어진 ‘지금’이라는 시간에 집중해야 한다.
3. 깊은 거짓말과 혼돈
사탄은 마지막 때에 ‘깊은 거짓말’로 사람들을 미혹할 것이다. 노아의 때처럼 깊은 거짓말로 사람들을 무감각하게 할 것이다. 사탄은 깊은 거짓말로 사람들을 혼돈에 빠트린다. 그와 같은 상황이 창세기 1장 2절에 기록되어 있다.
[창세기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마지막 때는 깊은 혼돈이 있다. 공허함이 있다. 한 발자국도 뗄 수 없는 흑암이 있다. 마지막 때는 어려운 때이다. 이런 어려운 때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1) 믿음이 없는 사람들 = 관심이 없는 사람들. (홍수가 나서 멸망당하는 시점까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 = 마음이 굳어진 사람들)
(2) 믿음이 있는 사람들 = 노아처럼 하나님이 허락하신 고난과 환난을 통과하는 사람들.
혼돈과 공허와 흑암과 같은 고난의 시간을 통과하는 사람들이 질문할 것이다. “왜 하나님은 고난을 주실까? 고난을 통과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라는 질문을 하게 될 것이다.
이해되지 않는 고난의 시간을 통과할 때 사람들은 풍랑 속의 제자들처럼 풍랑을 통과하기 위한 힘을 모을 것이다. 고난의 풍랑 한복판에서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힘을 집결시킬 것이다. 인간의 모든 힘이 모이는 정점은 바로 바벨탑과 같다.
고난과 인간의 힘의 관계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고난을 주시는 이유는 결국 인간의 지혜와 힘을 집결시키는 과정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고난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돌파가 일어나기 직전의 장소와 같다.
결국 풍랑 속에서 제자들은 자신의 힘의 한계를 깨닫는다. 그때 비로소 고난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하게 된다. 고난은 하나님이 인간의 힘의 한계를 보여 주시는 마지막 연단이다. 결국 제자들은 풍랑을 내 힘과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풍랑을 해결할 수 있는 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4. 힘을 주는 구간과 힘을 빼는 구간
여기에 놀라운 영적 원리가 있다. 인간의 힘이 집결될 때 풍랑은 정점에 이른다는 것이다. 바벨탑과 같이 인간의 힘이 정점에 이를 때 하나님의 심판의 풍랑은 가장 가까이에 있다. 노아의 때가 바로 그와 같은 때이다. 인간의 악함이 정점에 이를 때 심판의 비 한 방울이 내리는 모멘트가 일촉즉발에 있다는 사실이다.
‘연단’
하나님은 마지막 때에 교회와 성도들에게 고난을 허락하신다. 이 시간을 지나며 이들은 비로소 진리를 깨닫기 시작한다. 하나님이 없는 인간의 힘과 지혜가 소용없다는 놀라운 영적 원리를 알게 된다. 그 순간이 바로 십자가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아니라 믿는 시점이다.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내 힘과 방법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창세기 1장 2절의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아니라 수면 위에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영(성령님)에 대해 눈을 뜨게 되는 시점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고난을 주신다. 고난을 통해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내 힘으로 해결될 수 없음을 알게 하신다. 그때 수면 위에 운행하시며 나와 함께하시는 성령님의 리더십을 온전히 따를 수 있는 영의 생각으로 충만한 사람이 된다. 내 힘과 생각이 날마다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 나는 다른 차원의 영의 사람이 된다.
5. 움켜쥐지 말고 펴라
움켜쥐는 순간은 힘을 모으는 순간이다. 내 눈에는 빈틈이 없이 내 완전한 힘으로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것 같다. 물을 움켜쥘 수 있는가? 결국 물은 보이지 않는 손가락 마디의 빈틈으로 다 새어 나간다. 바람을 움켜쥘 수 있는가?
결국 손바닥을 펴야 한다. 손바닥을 편다는 것은 내 힘이 모여 있지 않은 상태이다. 힘이 없다. 하나님은 그때 하나님의 응답을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신다. 바로 이 순간이 하나님의 돌파의 순간이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때이다. 은총의 때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부어지는 은총’
야곱의 씨름이라는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은 내 힘으로 하나님의 뜻을 움켜쥐게 하신다. 하나님은 야곱이 씨름으로 붙잡고 있는 합리적 이유를 알고 계신다. 하나님은 내 힘을 모아 야곱처럼 문제를 움켜잡아야 하는 합리적 이유를 알고 계신다. 야곱은 에서의 문제 때문이다. 에서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자신의 처자식이 다 죽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씨름의 손을 펼 수가 없었다.
모세가 불평하는 백성을 향해 지팡이로 바위를 치는 합리적 이유가 이해가 된다. (모세는 자신의 힘을 사용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사랑하는 이삭을 드리라는 말에 불순종할 수 있는 합리적 이유가 있다. 사울이 바울이 되기 전에 기독교인을 죽여야 하는 합리적 이유가 있다. 하나님은 사울의 힘과 분노가 절정에 있을 때 사울의 모든 힘을 빼신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마지막에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힘을 사용해야 하는 합리적 이유를 반드시 다루신다. 놀라운 순간이다. 혼돈과 흑암과 공허가 아무리 깊은 마지막 때라도 하나님의 사람들과 교회는 다른 차원이 된다.
지금까지 경험한 하나님과 다른 차원의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다. 움켜쥠의 시간을 지나 펴진 내 손바닥 위에 하나님은 해결된 에서를 올리신다. 해결된 이삭을 올리신다. (여호와 이레 - 준비된 양) 모세의 손바닥 위에 여호수아를 올리신다. 바울의 손바닥 위에 십자가와 그리스도와 복음을 올리신다.
[스가랴 4:6-7]
6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7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고백하자.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한다.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만 된다. 큰 산이 평지가 된다. 하나님의 은총의 시간이 우리 조이풀교회에 충만할 것이다! 은총으로 큰 산은 평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