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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회복 1 혼적 예배를 파쇄하고 땅의 권세를 다시 찾으라!(예배 회복이 필요한 이유)

예배 회복 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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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4:23-24]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1. 결국 예배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신 이유는 ‘예배’를 받으시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예배 안에 거하신다. 예배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
[요한복음 4:23-24]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1) 참된 예배
예수님은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이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온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아직 그때가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과 진리로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
위의 말씀을 주목해야 한다. ‘참된 예배’가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은 거짓 예배도 있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나는 참된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거짓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2) 영과 진리로 드려지는 예배 - 혼적인 예배와 영적인 예배의 차이
참된 예배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이다. 성령의 임재가 있는 예배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선포된 말씀이 있는 예배이다. 오늘 내 예배는 어떤 예배인가? 성령 충만한 예배인가? 인간 중심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선포된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는 심령이 있는 예배인가?
점검해야 한다. 예배는 내가 무엇을 받고 얻어 가는 것이 아니다. 예배는 드려지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받고 얻어 간다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린다면 이 예배는 참된 예배가 아니다. 내가 받는 예배가 되면 예배를 판단하게 된다. 영의 예배가 아니라 혼적인 예배가 된다.
혼적인 예배는 내 감정과 지성과 이성이 중심이 된 예배이다. 내 감정이 좋게 느껴지면 좋은 예배로 인식한다. 내 이성에 지식 전달로 인한 지적 깨달음이 있을 때 좋은 예배로 인식한다.
영적 예배는 하나님께 맞추고 드려지는 예배이기 때문에 판단하지 않는다. 온전히 드릴 뿐이다. 여기에 예배의 비밀이 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 우리와 함께하신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 하늘 문을 여시고 모든 것을 부어 주신다. 그래서 예배는 내가 받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받으시도록 드려지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는 사람은 머리에 열린 하늘 문이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그래서 참되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 성경을 보라.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된 사람들이 가장 우선순위로 하는 것은 ‘예배의 단’을 쌓는 것이다. ‘왜 다른 일보다 가장 먼저 예배의 단을 쌓았을까?’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예배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점검해야 한다. 예배가 가장 중요한가? 받는 예배가 아니라 드리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2. 가인 성

[창세기 4:16-17] 16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17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1) 여호와 앞을 떠나서
창세기 4장 16절 말씀을 보면 자기 동생을 죽인 살인자 가인의 행보에 대해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났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의 죄의 대가 또한 하나님을 떠난 것이었는데 그의 아들 가인 또한 죄로 인해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다. 2대에 걸친 죄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성경은 ‘죄’에 대해 단호하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아야 한다. 죄의 무서움을 아는 것이 은혜이다. 가장 불쌍한 사람은 죄의 무서움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는 증거는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신다는 것이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영적인 사람)은 죄의 권세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알기에 깨어 있으려고 한다. 그러나 혼적인 그리스도인들은 그렇지 않다. 죄에 대해 무감각하다. 중요한지는 아는데 그 죄가 내 영혼을 파괴하는 강력한 도구라는 사실은 모른다.
(2) 가인은 성을 쌓는다 - 가인의 자아
가인이 쌓은 성은 성경에서 말하는 최초의 도시이다. (City) 왜 가인은 성을 쌓았을까? 그리고 왜 성에서 거주했을까?
성은 보호와 방어와 안전을 위해 만들어진다. 성을 만들었다는 것은 엄청난 힘을 모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인의 성은 하나님을 대적해 만들어진 인간 중심의 도시를 상징한다.
하나님은 창세기를 통해 사람에게 복을 주셔서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해 다스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 나라는 확장된다. 그러나 성은 그렇지 않다. 성은 갇힘을 상징한다. 정착된 상태를 말한다. 하나님을 떠난 두려움의 보호를 위해 만든 성은 가인을 하나님과 철저히 격리한다. 가인의 성은 그래서 크고 견고하다.
가인이 만든 성은 ‘가인의 자아’를 보여 준다. 자기를 더 강화하는 것이다. 자기 힘, 자기 지식, 자기 문명을 더 강화하는 것이다. 결국 불의로 하나님을 떠난 가인이 만든 성은 ‘자기 의’이다.
왜 ‘자기 의’에 있는가? 자기 성에서는 자기가 모든 것의 기준이다. 자기의 말이 법이다. 자기 세상에 있어야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성안에서는 가인의 힘과 영향력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자기 힘으로 통제되지 않는 모든 상황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성은 더 견고하고 강력해진다.

3. 예배가 무너질 때 - 가인이 성을 만든 이유

오늘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은 ‘예배’이다. 놀라운 사실이다. 결국 가인은 예배에 무너졌다. 가인의 예배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히브리서 11장 4절은 가인과 아벨의 예배에 대한 차이를 설명한다.
[히브리서 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1) 믿음 없는 형식의 예배를 드린 가인
히브리서 말씀을 통해 아벨은 믿음으로 예배를 드렸지만 가인은 믿음 없이 형식으로 예배를 드렸다는 것이 드러난다. 하나님은 제물 자체보다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다. 마음 없는 형식만 남아 있는 예배를 회개해야 한다.
(2) 헌신 없는 예배를 드린 가인
가인은 헌신 없는 예배를 드렸다. 최상의 것이 아닌, 남는 것으로 드렸다.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 즉 가장 좋은 것을 드렸다.
그러나 가인은 단지 ‘땅의 소산으로’ 제사를 드렸다고만 기록되어 있다. ‘첫 열매’, 혹은 최상의 것을 드렸다는 표현이 없다. 예배는 가장 좋은 것을 중심으로 드리는 것이다. 예배는 언제나 최상급이 되어야 한다.
만약 가인처럼 내 능력의 일부를 드린다는 마음이라면 온전한 예배가 아니다. 점검해야 한다.
(3) 회개 없는 굳은 마음의 예배
[창세기 4: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창세기 4: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가인의 마음 자체가 굳어져 있다. 아벨을 죽이기 전에 이미 죄가 가인을 다스리고 있는 상태이다. 회개가 없는 삶이다. 회개가 없는 삶의 특징은 분 냄이다. 자기 영역이나 자기 자존심을 건드렸을 때 안색이 변한다. 하나님을 대적할 정도로 그 내면에 질서가 없는 상태이다.
오늘 내 마음의 상태는 어떤지를 점검해야 한다. 회개가 없는 신앙은 굳은 마음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4) 예배가 무너질 때 경제, 관계 등 모든 것이 무너진다
예배가 무너지면 하늘이 닫힌다. 하늘이 닫힌 가인의 인생을 보라. 놀랍게도 땅의 권세를 잃는다.
[창세기 4:11-13] 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12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13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11절을 보라. 하늘이 닫히면 ‘땅에서 저주를 받는다’. 12절에는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주지 않는다’고 말씀한다.
예배가 무너지면 땅의 권세를 잃는 것이 순식간이다. 진짜 예배는 하늘의 문을 연다. 하늘 문이 열릴 때 땅의 저주가 끊긴다. 땅으로부터 권세를 다시 찾는다. 땅의 회복을 원하는가? 참된 예배를 세워야 한다. 혼적인 예배가 아닌 영으로 드리는 진정한 예배를 회복해야 한다. 예배를 통해 이 땅을 다스릴 수 있는 차원 높은 하늘 문이 열려야 한다.

4. 다시 시작

[창세기 4:25-26] 25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가인의 성에서 나와야 한다. 하나님은 자기 안에 갇힌 가인 성을 허무신다. 그리고 아담으로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게 하셨다’. ‘다시’라는 말씀을 주목하라. 하나님은 셋을 통해 아벨의 씨를 이어 가게 하신다. 그리고 셋의 아들 에노스를 통해 다시 여호와의 이름을 회복하게 하신다.
예배를 다시 세우라. 다시 점검하라. 최고의 예배를 드려라. 지금은 하나님께만 드려지는 참된 예배를 회복해야 될 때이다. 그렇게 될 때 땅의 모든 영역에서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