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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회복 2 전환이 필요한 때! 하나님이 만드시는 새로운 흐름을 주목하라

예배 회복 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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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6:11] 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1. 흐름을 따라갈 줄 알아야 한다

어떤 일이든 움직임이 만들어 내는 흐름(flow)이 있다. 보이지 않지만 공기의 흐름(Airflow)이 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성령이 만드시는 흐름이 있다. 사도행전에는 유대인을 넘어 이방인의 구원을 위해 성령이 만드시는 흐름이 있다.
베드로는 성령께 민감한 사람이었다. 그는 보자기 환상(유대인으로서는 결코 먹을 수 없는 음식에 대한 환상)을 보았을 때 이해되지 않지만 성령의 흐름을 좇아간다. 그래서 결국 고넬료의 집으로 인도함을 받는다.
[사도행전 10:17-20] 17 베드로가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아해 하더니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 밖에 서서 18 불러 묻되 베드로라 하는 시몬이 여기 유숙하느냐 하거늘 19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20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 하시니
이 말씀에서 주목할 부분이 있다.
17절에 ‘베드로가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아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바로 그때 이방인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베드로를 찾아온다.
19절에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라는 말씀에 주목하라.
베드로는 이해되지 않는 보자기 환상을 예사롭지 않게 여겼다.
자기 지식과 경험으로 이해되지 않는다고 덮어 두지 않았다.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라는 말씀에서 ‘생각’은 단순한 생각이 아니다.
‘깊게 심사숙고하다’라는 뜻이다.
바로 그때 성령의 음성이 들린다. 20절에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라고 말씀하신다.
마침내 베드로는 성령이 만드시는 새로운 흐름을 따라간다.
그 결과, 사도행전 11장에서 이방인 선교의 문이 열리게 된다.
[사도행전 11:17-18]17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1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17절 -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 성령의 흐름을 온전히 따라갈 때 베드로가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라고 고백한 것처럼 새로운 흐름을 만드시는 하나님께 온전히 순복하게 된다.
18절 -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다’라고 인정한다. 이전에 있었던 흐름이 완전히 바뀌는 장면이다.

2. 성령께 민감해야 하는 이유

믿음의 사람이 성령께 민감해야 하는 구체적인 이유는 성령이 만드시는 새로운 흐름이 있기 때문이다.
성령이 만드시는 새로운 흐름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흐름이다.
이 말은 혼적인 레벨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고차원의 영적 레벨이라는 것이다.
성령이 만드시는 새로운 흐름에는 언제나 돌파가 있다. 변화가 있다.
한여름의 무더위를 잊게 하는 시원한 가을바람과 같다.
시원한 가을바람이 불어올 때 계절이 변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계절의 변화를 주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다.
그래서 교회가 중요하다. 믿음의 사람들이 중요하다.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서 변화의 열쇠 역할을 해야 한다.

3. 예배의 변화가 필요한 이유

지난주에도 강조했다.
마지막 때가 가까이 올수록 하나님은 예배의 변화를 가속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인본주의적 예배, 인간 중심의 예배, 혼적인 예배들의 흐름을 영과 진리로 드리는 참된 예배로 변화시키실 것이 분명하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
가장 차원 높은 예배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에베소서 6장의 말씀처럼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공중 권세 잡은 자들과의 싸움이다.
현대의 전쟁에서는 육, 해, 공군의 싸움 중 공군의 싸움이 가장 중요하다.
제공권을 잡는 군대가 승리한다.
예배는 제공권의 싸움이다. (공중 권세 잡은 자) 차원 높은 예배로 영적 제공권을 장악해야 한다.
다윗의 예배가 그 예가 된다.
다윗의 예배는 가장 차원 높은 예배이다. 요한계시록 4~5장에 기록된 하늘의 예배와 같은 예루살렘의 예배이다.
다윗의 왕국만큼 강한 왕국은 없다.
다윗의 왕국은 땅에서 가장 강력했다. 실제적인 확장이 있었다.
재정과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당대에 따라올 나라가 없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예배자의 수’
다윗은 가장 강력한 예배팀을 일으켰다.
레위인 봉사 총원(38,000명), 찬송하는 자(4,000명), 찬양 교수(아삽, 헤만, 여두둔), 전문 찬양대(288명-24반차 예배팀-12명씩 24시간), 문지기(4,000명 이상).
‘예배에 동원된 재정’
[역대상 22:14]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금 십만 달란트와 은 백만 달란트와 놋과 철을 그 무게를 달 수 없을 만큼 심히 많이 준비하였고 또 재목과 돌을 준비하였으나 너는 더할 것이며
금 1달란트(약 34kg) : 2025년 현재 금 시세(1g당 약 150,000원)로 약 51억 원
금 10만 달란트(10만 x 34kg = 3천 4백 톤) : 약 510조 원
은 1달란트(약 34kg) : 2025년 현재 은 시세(1g당 약 1,700원)로 약 5,800만 원
은 100만 달란트(100만 x 34kg = 3만 4천 톤) : 약 58조 원
총합 약 568조 원 이상의 재정이 예배와 여호와의 성전을 위해 사용되었다. 이것은 놋, 철, 목재, 돌, 곡물, 기름을 제외한 금과 은의 규모만이다. 3만 8천 명의 레위인들은 전임 사역자로 이 국가 재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가장 높은 차원의 하늘의 예배는 땅의 권세와 연관이 있다. 인간 중심의 예배가 아닌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예배를 다시 일으켜야 하는 분명한 이유이다. 이 사실을 믿는가? 그래서 우리는 흐름을 변화시켜야 한다.

4. 다윗에게 일어난 세 가지 흐름

사무엘하 6장은 그래서 중요하다.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기 전, 하나님은 나곤의 타작마당 사건을 통해 지금까지의 흐름을 완전히 변화시키신다.
다윗은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법궤를 되찾아 온다. 당시 하나님의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 자체였다. 하나님의 법궤를 되찾아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다윗의 마음을 1절과 5절에서 볼 수 있다.
[사무엘하 6:1]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뽑은 무리 삼만 명을 다시 모으고
[사무엘하 6:5] 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은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연주하더라
빼앗겼던 법궤를 다시 찾아오는 퍼레이드의 규모는 엄청나다. 행사 운영진이 삼만 명이다. 5절에서 알 수 있듯 여러 악기가 동원되어 가장 화려하고 성대하게 진행된 퍼레이드이다. 엄청난 규모의 예배가 열린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예배를 받지 않으셨다. 수레에 실린 하나님의 법궤가 나곤의 타작마당으로 들어갈 때 갑자기 소들이 뛰기 시작했다. 그때 흔들린 법궤를 잡기 위해 웃사가 손으로 하나님의 궤를 잡는다. 바로 그때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로 웃사는 궤 곁에서 바로 죽는다.
[사무엘하 6:7]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흐름이 변했다. 엄청난 기대감으로 시작된 대규모 퍼레이드의 흐름이 ‘초상집 흐름’이 되었다. 성경은 이를 지켜보고 있던 다윗의 마음의 흐름을 주목한다.
‘다윗에게 일어난 절망의 흐름’
[사무엘하 6:8-10] 8 여호와께서 웃사를 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 곳을 베레스웃사라 부르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9 다윗이 그 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하고 10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 성 자기에게로 메어 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간지라
8절 - ’다윗이 분하여’(분냄의 흐름)
다윗의 분냄을 통해 다윗의 마음속에 있던 흐름을 볼 수 있다. ‘황당하다, 당혹스럽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이 이렇게까지 하셔야 하나’라는 흐름이다. 놀라운 장면이다. 결국 다윗이 준비한 성대한 퍼레이드는 하나님과 관련이 없는 흐름이었다. 다윗의 만족이었다. 강한 다윗, 능력 있는 다윗을 드러내고 싶었던 마음을 수면 위로 올리신 것이다.
9절 - ’다윗이 그 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두려움의 흐름)
하나님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다윗의 마음에 두려움이 흐른다. 그렇게 사모했던 하나님의 궤가 너무 두렵고 무섭다.
10절 -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 성 자기에게로 메어 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즐거워하지 않는 흐름)
평생 하나님만을 따랐던 다윗의 마음에 하나님을 즐거워하지 않는 마음이 드러난다. 이런 흐름이 자신의 마음에 일어났을 때 누구보다 당황한 사람은 바로 다윗 자신이었을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다윗의 마음 안에 있었던 세 가지 흐름이 우리 안에도 일어날 수 있다. 이 마음이 있으면 참다운 예배를 드릴 수 없다. 예루살렘으로 갈 수 없다.

5. 오벧에돔 - 흐름을 바꾸는 자

[사무엘하 6:11-12] 11 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12 어떤 사람이 다윗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새
다윗이 준비했던 엄청난 규모의 퍼레이드는 절망과 죽음과 원망과 분냄의 흐름으로 바뀌었다. 그 흐름은 3개월이나 지속되었다. 3개월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런데 석 달 가까이 오벧에돔의 집에 있었던 언약궤에 복이 임한다(11절). 다시 하늘 문이 열린 것이다. 이 소식이 다윗에게 전달된다. 오벧에돔의 집에 임한 하나님이 주신 복(그의 모든 소유 - 실제적인 복, 경제적인 복의 소식을 듣고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었다.
놀라운 장면이다. 오벧에돔 한 사람이 왕이었던 다윗의 흐름, 이스라엘 전체의 흐름을 바꾸었다. 놀라운 장면이다. 3만 명도 하지 못했던 일을, 왕도 하지 못했던 일을 오벧에돔 한 사람이 이루어 냈다.
오벧에돔은 레위인이다. (가드 사람 – 가드는 레위인 동네)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이다. 오벧에돔이 3개월 동안 한 일은 온전히 전심으로 하나님을 찬양한 것뿐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진실한 예배자 오벧에돔의 찬양을 통해 국가의 흐름을 바꾸신다.
오늘 조이풀교회, 그리고 나와 가정, 더 나아가 한국 교회는 오벧에돔처럼 흐름을 바꾸어야 한다.
절망, 죽음, 수치심, 분노와 좌절의 공기를 기쁨과 소망과 하나님에 대한 기대감의 흐름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한국 교회는 오벧에돔이 필요하다. 화려한 예배가 아니다. 오벧에돔의 진실한 예배가 필요하다.
오늘 우리 조이풀이 준비해야 할 예배는 바로 오벧에돔의 예배이다. 11월 킨텍스 예배까지 조이풀은 약 3개월 동안 오벧에돔의 예배를 드려야 한다. 간절히 진심을 다해 예배할 때 조이풀은 가장 강력한 다윗의 예배의 복을 얻을 것이다.
예배를 통해 모든 흐름을 바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