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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회복 4 막혔던 걸림돌이 제거된 이후에 주어지는 자유와 기쁨!

예배 회복 4.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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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6:14 개역한글] 14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때에 베 에봇을 입었더라

1.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

[요한복음 4:23-24, 개역 한글] 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은 참된 예배를 찾으신다. 참된 예배는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다.
영과 진리의 예배는 어떤 예배인가?
성령과 증언 된 말씀으로 드리는 예배이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진리는 예수님 자체이다.
내 힘으로 예배하는 것이 아니다.
’걸림돌‘
영과 진리로 드리는 참된 예배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이루신 일 위에 서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함이다.
죄가 있으면 하나님께 예배할 수 없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분리시키는 가장 강력한 ‘걸림돌’이다.
걸림돌을 제거해야 길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사야 62:10, 개역 한글] 성문으로 나아가라 나아가라 백성의 길을 예비하라 대로를 수축하고 수축하라 돌을 제하라 만민을 위하여 기를 들라
이사야 62장 10절에 기록된 왕의 대로를 만들기 위해 ‘돌’을 제거해야 한다.
걸림돌을 제거하지 않는 길은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반드시 돌을 제거해야 한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는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걸림돌의 죄가 사해졌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지성소의 휘장이 둘로 갈라졌다.
이는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인간이 하나님 앞에 다시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을 얻은 중요한 사건이다.
진정한 예배는 ‘십자가’와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되어야 한다.
우리의 죄가 사해지고 구원받은 사실이 얼마나 큰지 이에 대한 감격이 있어야 한다.

2. 다윗의 예배, 자유함

지난주에 이어 다윗의 예배를 보자.
하나님은 다윗에게 예루살렘의 문을 여셨다. 그에 대한 증표가 오벧에돔의 집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의 예배는 완전한 자유함의 예배이다.
다윗은 완전한 자유 안에 춤춘다.
‘다윗의 예배’
[사무엘하 6:14 개역 한글]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때에 베 에봇을 입었더라
다윗은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해 춤을 춘다. 기억하라. 예배는 여호와 앞에서 드리는 것이다. 예배의 판단자가 되지 말라고 했다. 예배는 내가 받는 것이 아니다. 다윗처럼 하나님께 힘을 다하는 것이다.
‘춤을 춘다’는 것은 자유하다는 것이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하게 한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진리가 죄에서 우리를 자유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예배 안에는 ‘자유함’이 있다.
‘춤’은 표현하는 것이다. 다윗은 전심을 다해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표현한 것이다. 우리의 예배도 그와 같아야 한다. 전심으로 표현해야 한다. 찬양 가사 하나, 말씀 구절 하나에 전심으로 반응해야 한다. 그리고 “아멘!”으로 손을 들어 박수를 치며 표현해야 한다. 예배는 형식이 아니다. 표현함이 없는 예배는 죽은 예배이다.
[시편 47:1, 개역 한글]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
말씀을 보라. 박수를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치라고 말씀하고 있다.
다윗처럼 표현해야 한다.
‘베 에봇’
다윗은 베 에봇을 입었다. 에봇은 대제사장이 입는 옷이다. 일반적으로는 대제사장의 에봇은 화려한 금실과 보석이 박힌 옷이다. 다윗은 제사장이 아님에도 하나님 앞에 에봇을 입었다. 이는 왕의 신분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한 사람으로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예배도 이와 같아야 한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내 어떤 것도 걸림돌이 되지 말아야 한다. 다윗처럼 한 사람의 예배자로 나아가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화려한 에봇이 아니라 베(세마포)로 만든 에봇을 입은 것은 다윗의 겸손함을 말한다.
다윗은 특별한 왕이지만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백성의 한 사람일 뿐이다. 바로 이 모습이 자유함의 예배이다. 모든 걸림돌이 제거된 사람의 예배이다.
’자유함‘
[사무엘하 6:21 개역 한글]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저가 네 아비와 그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로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21절을 보자. 다윗은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라고 고백한다. 기뻐하겠다는 것이다.
예배 안에 기쁨이 있어야 한다. 벅참이 있어야 한다. 여호와 앞에 뛰놀겠다는 다윗의 고백 안에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이 있다. 누가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뛰놀 수 있겠는가?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 예배할 뿐이다. 하나님이 너무 좋아 견딜 수 없는 한 사람으로 예배한 것이다.
우리도 다윗의 예배를 드려야 한다. 이 예배가 예루살렘에서 드릴 예배이다.
자유함과 기쁨과 은혜의 감격으로 가득한 예배가 다윗의 예배이다. 이 예배가 우리 안에 회복되어야 한다.

3. 걸림돌이 제거된 예배

다윗이 이와 같은 예배를 드릴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
’웃사 사건‘을 통해 드러난 다윗 안에 있었던 ‘걸림돌’이 제거된 것이다.
이사야 62장 10절의 말씀처럼 길을 만들려면 ‘걸림돌’이 제거되어야 함을 명심하라.
오늘 내게 ‘걸림돌’이 있는가?
그 걸림돌이 있는 한 우리는 다윗이 드린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없음을 명심하라.
’걸림돌과 기름 부음‘
기름 부음이 있는 예배와 기름 부음이 없는 예배의 원인을 정리할 수 있다. 기름 부음이 있는 예배와 없는 예배의 차이는 확실하다. 왜 기름 부음이 없을까?
영적 원리가 있다. ‘걸림돌’ 때문이다.
걸림돌이 있는 예배에는 기름 부음이 없다.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이 ‘회개’이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전할 때 가장 먼저 ‘회개’를 외치셨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외치셨다.
다른 말로 하면 천국이 오지 못하는 이유는 회개하지 않는 죄의 걸림돌 때문이라는 것이다. 명심해야 한다. 영적 원리이다.
‘조종’(Manipulation)
걸림돌이 있는데 기름 부음이 있는 예배처럼 느끼는가? 원론적으로 말하면 그럴 수 없다.
인간이 ‘조종’하는 것이다. (Manipulation) 이 예배가 가장 위험한 예배이다.
인간이 예배를 조종할 수 없다.
영적 원리이다. 하늘이 먼저이다. 모든 축복이 위로부터 온다. 예배는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것이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은혜를 받는 것임을 명심하라.
‘걸림돌을 제거하라’
[마태복음 5:23-24, 개역 한글]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예수님은 예배에 대한 아주 중요한 영적 원리를 말씀하신다.
예배하기 전에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다면 먼저 가서 그 형제와 화목하라고 말씀하신다. 온전한 예배를 방해하는 걸림돌에 대한 구체적인 가르침이다.
‘영적 예배-산 제사’
[로마서 12:1, 개역 한글]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나님이 받으시는 영적 예배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이다. 명심하라. 죽지 않은 제물은 제물이 될 수 없다. 걸림돌이 있는 마음은 죽지 않은 마음이다. 이 마음이 있는 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없다.
산 제물이 된다는 것은 ‘회개’하는 심령을 말한다. 흠이 있는 우리 마음이 깨끗하고 거룩한 마음으로 새롭게 될 방법은 ‘회개’뿐이다. 회개는 내 옛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고, 내가 죽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예배하러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있는가? 다윗처럼 걸림돌을 제거해야 한다. 그때 하늘 문이 열린다. 가장 영광스러운 예루살렘의 예배가 회복된다.
‘미갈의 걸림돌‘
[사무엘하 6:20, 개역 한글]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가로되 이스라엘 왕이 오늘날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날 그 신복의 계집종의 눈 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사무엘하 6:23, 개역 한글] 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자식이 없으니라
다윗의 예배를 바라보는 미갈의 마음 안에 있는 걸림돌을 보라. 하나님이 아니다. 사람의 눈이다. 체면이다. 자기에 대한 평가이다. 결국 23절처럼 미갈의 모든 문이 막힌다. (죽는 날까지 자식이 없었다 - 영적 생산이 끝난 몸이다. 죽은 몸이다)
성경은 미갈의 걸림돌을 보여 준다. 다윗처럼 미갈의 마음 안에 있는 걸림돌이 제거되었다면 그녀는 전혀 다른 축복의 삶을 살았을 것이 분명하다.
걸림돌을 제거하자. 성령님이 말씀하시는 모든 걸림돌을 제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