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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회복 5 섭리! 이해되지 않는 고통의 시간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완벽한 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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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7:1, 개역한글] 여호와께서 사방의 모든 대적을 파하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거하게 하신 때에
예배 회복 시리즈를 통해 다윗이 예루살렘에 어떻게 들어가는지 그 과정을 보고 있다. 다윗에게 예루살렘은 인생과 신앙의 하이라이트와 같은 정점이다.
하나님은 목동 다윗을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왕으로 부르셨다. 다윗은 여러 역경을 통해 드디어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예루살렘의 왕이 된다.
다윗의 꿈이 현실이 되는 아주 중요한 순간이다. 바로 이 정점의 시간에 하나님은 웃사 사건을 통해 다윗을 하나님 앞에 제대로 정렬시키신다.
특히 주목할 점은 예루살렘 시대 직전에 일어난 ‘웃사’ 사건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하나님이 왜 웃사 사건을 드러내셨는지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예루살렘의 시대를 제대로 맞이할 수 있다.

1. 웃사 사건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웃사 사건은 ‘실수’가 아니다. 웃사 사건은 ‘죄’의 문제이다. 율법을 어겼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실수에 대해서는 관대하시지만 죄에 대해서는 단호하시다. 죄는 영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영적인 영역이라는 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영역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영적인 문제의 해결을 위해 가장 선결되어야 하는 일은 ‘자기’를 부인하는 일이다. 자기 부인에 있어 중요한 영적 원리는 혼과 육의 차원이 영적인 차원을 컨트롤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영적인 문제는 하나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다. 그래서 옛 자아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라는 선언적 고백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웃사 사건을 보아야 한다. 웃사 사건은 단순한 실수의 차원이 아니다. 웃사 사건은 죄의 문제이다.
죄의 문제는 다윗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이 용서하셔야 한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심판자로 판단하셔야 한다.
(1) 외부의 대적이 없는 시대가 열리다
[사무엘하 7:1, 개역한글] 여호와께서 사방의 모든 대적을 파하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거하게 하신 때에
하나님은 왜 예루살렘이라는 엄청난 장소로 나아가기 전에 죄의 문제를 철저히 다루시는가? 예루살렘의 시즌은 권세의 시즌이다. 확장과 능력의 시즌이다. 사무엘하 7장은 다윗에게 이전과 다른 계절의 문이 열리는 중요한 전환의 장이다. 지금까지 다윗을 어렵게 한 것은 외부의 적이었다.
그래서 사무엘하 7장 1절 말씀이 중요하다. 예루살렘 시대에 하나님이 사방의 모든 대적을 파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 신앙의 여정에도 반드시 예루살렘의 시대가 있다. 사방의 대적이 없어진 ‘평화’의 시간이다. (~궁에 평안히 거하게 하신 때에)
예루살렘은 축복이다. 확장이다. 풀림이다. 응답이다.
예루살렘의 왕이 된 다윗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축복을 받는다. 권력과 재정의 축복을 받는다. 모든 전쟁에서 이김으로 이스라엘의 영토를 확장한다.
다윗을 당할 사람이 없다. 성경에 보면 다윗은 가는 곳마다 승리한다.
[사무엘하 8:6, 개역한글] 다메섹 아람에 수비대를 두매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사무엘하 8:14, 개역한글]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되 온 에돔에 수비대를 두니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라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적수가 없다는 것이다. 다윗을 견제할 사람이 없다. 외부에 적이 없다. 이런 엄청난 다윗을 무너뜨린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다. 그전까지는 블레셋과 같은 외부의 적이었다.
(2) 내적 전쟁이 시작되다 (외부의 적이 없을 때 집중해야 할 내면)
외부의 적을 평정한 권세자 다윗을 무너뜨린 것은 ‘죄’의 문제이다. 다윗을 무너뜨린 것은 밧세바를 간음한 사건이다. 외부의 적이 아니다. 권세와 권력과 힘의 정점에 있던 다윗을 무너뜨린 적은 놀랍게도 다윗의 내면 안에 있던 ‘죄성’이다. 하나님은 다윗의 범죄에 대해 나단 선지자를 통해 다윗의 내면이 죄로 병들었음을 분명히 밝히신다.
[사무엘하 12:7-9, 새번역] 7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기름을 부어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고, 또 내가 사울의 손에서 너를 구하여 주었다. 8 나는 네 상전의 왕궁을 너에게 넘겨 주고, 네 상전의 아내들도 네 품에 안겨 주었고, 이스라엘 사람들과 유다 나라도 너에게 맡겼다. 그것으로도 부족하다면, 내가 네게 무엇이든지 더 주었을 것이다. 9 그런데도 너는, 어찌하여 나 주의 말을 가볍게 여기고, 내가 악하게 여기는 일을 하였느냐? 너는 헷 사람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다. 너는 그를 암몬 사람의 칼에 맞아서 죽게 하였다.
7-8절을 보면 하나님은 예루살렘 시대에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고, 상전의 왕권도 넘겨주셨다. 다윗에게 부족함이 없이 모든 것을 다 주셨다. 다윗이 부족하다고 여겨 구하면 무엇이든지 더 주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바로 이런 시대가 예루살렘의 시대이다. 부족함이 없는 시대이다.
9절을 주목하라. 결국 다윗을 무너뜨린 것은 ‘하나님의 말을 가볍게 여기는 죄성’이다. 그 죄성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줄을 알면서도 죄를 짓게 한다.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이고, 밧세바를 간음해 아내로 취했다)
다윗이 서슴없이 하나님의 경계선을 넘어선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죄’이다. 이스라엘의 왕인 다윗이 누린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허락 안에서 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외부에 부족함이 없을 때 오히려 내면의 죄성은 강력해진다.
하나님의 일(예배, 기도, 말씀)이 희미해지고 있는가? 분명히 하라. 다른 문제가 아니다. ‘죄’의 문제이다. 웃사 사건, 밧세바 사건은 다윗의 예배를 멈추게 했다. 분명히 알아야 한다. 예배를 멈추게 하고, 예배를 가볍게 여기게 하는 것은 다른 외적 문제가 아니다.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은 인간의 악한 죄성이다.
예루살렘에서 다윗을 넘어지게 한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다. 내면의 죄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웃사’ 사건이 죄의 문제였다는 사실을 다른 각도에서 보게 한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철저히 레슨하고 계신다.
“다윗아, 앞으로 네게 열릴 예루살렘의 시즌은 지금까지 네가 달려왔던 시즌과는 완전히 다른 시간이다. 네 앞에 적수가 없을 것이다. 네가 가는 곳마다 이길 것이다. 그러니 명심해야 한다. 혼과 육의 차원에서 네 적수가 없다는 것은 영적인 영역을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는 사인이다. 영적 존재인 사탄을 경계해라. 아담과 하와를 죄에 굴복시킨 사탄의 존재를 기억해라. 그러니 죄에 민감해야 한다. 결국 너를 넘어지게 할 것은 죄 문제이다. 내가 네게 웃사 사건을 보게 한 것은 내가 얼마나 죄에 대해 단호한지에 대해 너로 알게 하려고 함이다. 아들 다윗아, 명심해라.”

2. 하나님의 복권 (섭리가 이해되다)

죄 문제의 해결은 하나님께 있다. 다윗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오벧에돔의 삼 개월이 중요한 기간이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오벧에돔의 삼 개월은 내가 죽는 시간이다. 답답한 시간이다. 갑갑한 시간이다. 두려움의 시간이다. 고통의 시간이다. 다윗의 삼 개월은 자아가 죽는 시간이었지만 하나님은 결국 그 시간을 통해 다윗의 권위를 복권시키신다. 결국 예루살렘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권위가 주어진 사람이다.
영적인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권위이다. 권위는 내가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권위는 위로부터 오는 것이다. 하나님이 복권시켜 주실 때 다윗이 다시 설 수 있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권위의 복권을 받은 다윗은 기뻐함으로 예배한다. 다시 하나님이 지지하는 인생이 된 것이다.

3. 말씀을 지키며 법궤를 옮기다

권위가 복권된 다윗은 철저히 말씀대로 법궤를 옮긴다. 왜 이 사건이 중요한가?
만약 말씀대로 법궤를 옮기지 않았다면 후일 다윗의 왕정 가운데 흠이 될 수 있는 일이다. 말씀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은 ‘명분, 령’이 서지 않는 일이 될 수 있다. 나중에 제사장 그룹의 책망이 있을 수 있다.
예루살렘은 권력의 암투가 강력했던 곳이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의 시대를 통치하는 다윗을 지지하신다. 그래서 다윗을 흠 없이 만드신다.
돌이켜볼 때 웃사 사건은 다윗에게 얼마나 고마운 사건인가? 하나님의 복권을 갈망하자.
어려운 시간이 올 때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오벧에돔의 삼 개월을 기억하자. 하나님이 복권시켜 주시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복권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금은 엎드려 기도할 때이다. 좁은 길,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 회개할 때이다.
‘섭리의 이해’
이해되지 않는 웃사 사건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보호를 발견하는 것이 섭리에 대한 이해이다. 내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이해되지 않는 고통의 시간이 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있어 고통은 고통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 속에 숨겨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완전한 계획과 보호와 인도하심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하나님의 복권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알게 된다. 이해되지 않는 나의 시간과 사건을 하나님의 시간의 터널 속에서 이해하게 된다.
웃사 사건과 같은 어려움으로 완전히 바닥의 시간 가운데 있는가? 하나님의 복권이 있을 것이다. 예루살렘을 준비시키시는 웃사와 오벧에돔의 사건을 깊이 이해하라. 내 인생 가운데 일어난 웃사와 오벧에돔의 사건을 깊이 이해하라. 그리고 예루살렘의 문이 열릴 때까지 엎드려 예배하라. 여섯 걸음의 예배 시간을 가지라. 이 사람에게 놀라운 예루살렘이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