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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작 (Cultivation) 12 위축된 마음과 상황 속에서 주어지는 반전의 믿음

Cultivation 1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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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1:1-6] 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3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4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5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6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1. 위축된 마음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를 알 것이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자체가 성립이 될 수 없다. 속도로 비교한다면 거북이는 토끼를 절대 이길 수 없다. 거북이와의 비교우위에 있던 토끼는 자신의 속도를 과신한 채 자만하여 잠을 잔다. 속도를 가늠하는 경주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지만 성실히 한 걸음을 내딛은 거북이가 결국 승리한다.
거북이가 왜 승리했을까?
거북이의 위대한 점은 애당초 속도를 비교할 수 없는 경주 속에서 위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거북이가 처음부터 ‘이 경주는 내가 절대 이길 수 없어. 내 속도로는 절대 토끼를 따라잡을 수 없어’라고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거북이가 자신을 토끼와 계속 비교하고만 있었다면 거북이는 이 경주를 진작에 포기했을 것이다.
거북이의 경주는 토끼와의 싸움이 아니다. 자신과의 싸움이며 경주이다.
거북이의 내면이 건강하다는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현대인들의 마음 안에 ‘위축됨’이 있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위축됨은 당연하다.
(1) 비교 경쟁 사회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비교하게 만드는 구조이다.
SNS, 직장, 학업, 외모 등에서 타인과 자신을 비교한다.
이런 문화 속에서 ‘나는 부족하다’는 열등감이 쉽게 생긴다.
그 결과는 자신감이 약해지고, 마음이 위축된다.
(2) 성공의 압박(경험으로부터 오는 위축)
여러 이유로 실패와 좌절을 경험했을 때 위축됨의 마음이 생겨난다.
극복하지 못하고 좌절하고 넘어지고 실패했던 상황 앞에 섰을 때 위축된 마음이 생겨난다.
실패와 좌절이 있는 사람은 ‘다음 번에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인정받아야 한다’는 압박이 마음의 긴장과 불안을 만들어 낸다. 실패의 경험이 두려움으로 굳어지고, 결국 마음이 움츠러드는 결과를 만든다.
(3) 위축됨의 심리학적 원인
위축됨은 단순히 ‘기가 죽는 상태’가 아니다.
영적, 심리적, 관계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내면의 수축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외부의 압력, 실패의 경험, 부정적 평가, 혹은 자기 부정으로 인해 자존감이 낮아지고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회피하는 심리적 방어 반응이다. 즉 위축은 자신감 상실+두려움+자아 위축이 결합된 내면의 긴장 상태이다.
특징 :
타인의 시선에 과도하게 민감하게 된다. 표현력이 감소한다. (말과 행동이 줄어듦)
‘나는 안 될 거야’라는 부정적 자기 확신과 실패와 비교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2. 성경은 ‘위축됨’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1) 성경적 원인
성경에서 위축은 종종 ‘두려움’과 ‘믿음의 결핍’으로 표현된다.
이는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영적인 문제이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내적 상태를 말한다.
‘하나님보다 환경을 크게 보고 그로 인해 자기 자신을 작게 보는 마음의 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다.
[민수기 13:33]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가나안 정탐꾼들이 환경에 눌려 자기 자신을 작게 보았을 때 그들의 마음은 위축되었다.
[디모데후서 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마음은 위축의 마음이 아니다.
위축된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 ‘두려움’으로부터 온다.
(2) 위축된 사람과 만나시는 하나님
‘위축됨’은 세상에서 자기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바닥의 마음이다.
그러나 ‘위축됨’은 크신 하나님을 만나는 ‘문’과 같다.
위축됨 안에 있는 놀라운 비밀이다. 모든 상황을 반전시키는 반전의 문과 같다.
’모세‘
[출애굽기 3: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 “내가 누구이기에~“ 자기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모세 - 과거의 쓰라린 아픔(애굽에서의 살인, 도망자)에서 나오지 못하는 상태. 그래서 위축됨.
[출애굽기 3: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출애굽기 4:1]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 하나님의 존재보다 자기 입장의 불안감이 앞선다. (사람들이 모세를 믿지 않을 것에 대한 불안감) -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 (위축된 마음)
[출애굽기 4:13]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 하나님보다 모세가 앞으로 직면해야 할 상황에 대한 위축된 마음의 결정적 표현 - 내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찾으세요. (위축된 마음)
하나님은 모세가 완벽하게 준비되었을 때 출애굽이라는 엄청난 사명을 주신 것이 아니다.
모세가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고 여기는 위축된 마음이 오히려 출애굽의 사명을 받는 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위축된 마음에 대한 성경적 해석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역설적으로 위축된 마음은 하나님이 사용하시기에 가장 좋은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위축된 마음의 모세가 오히려 떨기나무 앞에서 하나님을 강렬하게 만난 것처럼 위축됨은 하나님을 더 분명히 만나게 하는 게이트이다.
(3) 위축된 마음을 향한 하나님의 음성
[출애굽기 3: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하나님은 내가 나를 바라보는 위축된 마음과 상황과 관계없이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완벽한 비전의 그림을 가지고 찾아오셨다. 그냥 오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직시하라.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모세, 네가 나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이 산에서 나를 섬기게 할 것이다”라는 약속으로 오셨다.
명심하라. 위축된 마음과 상황 속에서 내 귀를 열고 집중해야 할 음성이다.
세상의 소리를 차단하라.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반전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라.

3. 믿음의 그릇을 크게 하라

위축된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과 간구해야 할 일이 있다.
‘믿음의 그릇을 크게 하라’
큰 믿음이 필요할 때가 있다.
하나님이 위축된 상황의 모세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출애굽이라는 엄청난 일을 감당할 믿음의 크기를 요구하신다.
성경은 언제나 역설적이다.
마음이 움츠러들고 쪼그라든 상태에서 하나님의 요구는 믿음의 크기를 크게 하라는 것이다.
’위축된 제자들‘
[누가복음 5:4-6]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예수님은 밤이 새도록 수고해도 잡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제자들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신다.
그 결과 6절에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게 되었다.
낙담되고 위축될 때 우리들이 준비해야 할 믿음의 크기는 배를 고기로 가득 채울 만선의 믿음이다.
’오병이어의 사건‘
오천 명을 먹이는 큰 믿음이 필요하다.
’골리앗과 싸움에서의 승리‘
하나님은 다윗에게 큰 믿음을 요구하신다.
’여호수아 세대‘
[여호수아 1:2-6] 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3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4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5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6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모세의 죽음 뒤에 리더십을 승계 받은 여호수아의 마음은 위축되어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위대한 지도자 모세만큼 잘할 수 있다는 확신과 마음을 가질 수 없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모세보다 큰 믿음의 크기를 요구하신다.
3절에 발바닥으로 밟는 땅을 모두 주겠다고 말씀하신다.
4절에 구체적으로 광야부터 시작해서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 영토가 될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신다.
5절에 여호수아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을 것이며 모세와 함께하신 것처럼 여호수아와 함께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6절에 강하고 담대하라는 것은 큰 믿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여호수아야, 네게 약속한 모든 땅을 네가 차지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는 큰 믿음의 사람이다.
여호수아 세대에게 큰 믿음을 가르쳐야 한다.
세상이 주는 압박과 비교를 뚫고 일어나는 큰 믿음의 세대가 여호수아 세대이다.
작은 믿음의 그릇이 미덕이 아니다.
큰 믿음을 요구해야 할 때는 큰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조이풀은 큰 믿음을 요구해야 할 때이다.
이제 우리가 밟을 땅이 눈앞에 있다. 할렐루야!
위축되지 말고 큰 믿음을 구하라.
약속된 부르심의 산지를 달라고 기도하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