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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회복 9 버팀과 인내의 시간! 갑자기 열리는 하늘의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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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6:24-26] 24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1. 버팀과 인내에 대하여

버텨야 할 때가 있다. 버티고 인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버티고 인내해야 하는 두 가지 상황이 있다.
(1)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버텨야 한다
버티고 인내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버팀과 인내의 시간은 ‘멈춤’의 시간이다.
여기서 멈춤이란 자발적 멈춤보다는 외부의 상황으로 인한 강제적 멈춤이다.
멈춤의 시간이 요구하는 인내의 구간이 있다.
다른 길은 없다. 버텨야 하고 인내해야 한다.
버팀과 인내의 시간은 어렵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성경은 버팀과 인내를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인내하고 버티는 것이 아니다.
버팀과 인내는 수동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처럼 보인다.
버팀과 인내의 시간은 ‘나’의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보이지만, 영적으로 볼 때는 돌파의 문이 만들어지는 하나님의 시간이다.
버팀과 인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시간이다.
하나님은 그 시간 속에서 돌파의 문을 여신다.
(2) 이해되지 않기 때문에 버텨야 한다
버팀과 인내의 시간은 일어난 일에 대해 이해가 되지 않는 때이다.
시편 73편이 그 좋은 예가 된다.
[시편 73:3-25, 새번역] 3 그것은, 내가 거만한 자를 시샘하고, 악인들이 누리는 평안을 부러워했기 때문이다. 4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으며, 몸은 멀쩡하고 윤기까지 흐른다. 5 사람들이 흔히들 당하는 그런 고통이 그들에게는 없으며, 사람들이 으레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아예 가까이 가지 않는다. 6 오만은 그들의 목걸이요, 폭력은 그들의 나들이옷이다. 7 그들은 피둥피둥 살이 쪄서, 거만하게 눈을 치켜 뜨고 다니며, 마음에는 헛된 상상이 가득하며, 8 언제나 남을 비웃으며, 악의에 찬 말을 쏘아붙이고, 거만한 모습으로 폭언하기를 즐긴다. 9 입으로는 하늘을 비방하고, 혀로는 땅을 휩쓸고 다닌다. 10 하나님의 백성마저도 그들에게 홀려서, 물을 들이키듯, 그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11 덩달아 말한다. "하나님인들 어떻게 알 수 있으랴? 가장 높으신 분이라고 무엇이든 다 알 수가 있으랴?" 하고 말한다. 12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은 모두가 악인인데도 신세가 언제나 편하고, 재산은 늘어만 가는구나. 13 이렇다면, 내가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온 것과 내 손으로 죄를 짓지 않고 깨끗하게 살아온 것이 허사라는 말인가? 14 하나님, 주님께서는 온종일 나를 괴롭히셨으며, 아침마다 나를 벌하셨습니다. 15 “나도 그들처럼 살아야지" 하고 말했다면, 나는 주님의 자녀들을 배신하는 일을 하였을 것입니다. 16 내가 이 얽힌 문제를 풀어 보려고 깊이 생각해 보았으나, 그것은 내가 풀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17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야, 악한 자들의 종말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18 주님께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세우시며, 거기에서 넘어져서 멸망에 이르게 하십니다. 19 그들이 갑자기 놀라운 일을 당하고, 공포에 떨면서 자취를 감추며, 마침내 끝장을 맞이합니다. 20 아침이 되어서 일어나면 악몽이 다 사라져 없어지듯이, 주님, 주님께서 깨어나실 때에, 그들은 한낱 꿈처럼, 자취도 없이 사라집니다. 21 나의 가슴이 쓰리고 심장이 찔린 듯이 아파도, 22 나는 우둔하여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나는 다만, 주님 앞에 있는 한 마리 짐승이었습니다. 23 그러나 나는 늘 주님과 함께 있으므로, 주님께서 내 오른손을 붙잡아 주십니다. 24 주님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해 주시고, 마침내 나를 주님의 영광에 참여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25 내가 주님과 함께 하니, 하늘로 가더라도, 내게 주님 밖에 누가 더 있겠습니까? 땅에서라도, 내가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3절~16절 : 이해되지 않는 악인들의 성공을 바라보며 버티고 인내한다.
17절 :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야, 악한 자들의 종말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17절처럼 하나님은 버티고 인내하게 하신 이유를 깨닫게 하신다. 놀라운 돌파의 순간이다.
오늘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버팀과 인내의 돌파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깨달음이다.
왜 버티고 인내하게 하셨는지 결국 알게 하신다.
버팀과 인내의 시간 속에 있는가? 결국 놀라운 하늘의 비밀을 알게 될 것이다.
18~22절 : 이해되지 않는 버팀과 인내의 시간에 대한 회고이다.
특히 21절에 “나의 가슴이 쓰리고 심장이 찔린 듯이 아파도”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22절에 “나는 우둔하여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나는 다만, 주님 앞에 있는 한 마리 짐승이었습니다”라고 고백한다.
버팀과 인내의 시간에 뱉었던 믿음 없는 해석과 불평에 대한 회개이다.
결국 버팀과 인내가 힘들었던 이유는 ‘무지’ 때문이라고 말한다.
23~25절 : 버팀과 인내의 시간을 통해 알게 된 놀라운 하나님에 대하여 고백한다.
결국, 버팀과 인내의 시간의 끝은 ‘예배’이다.
예배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해지는 순간이다.
하나님에 대하여 선포하는 것이다.
25절을 보라. ”내가 주님과 함께 하니, 하늘로 가더라도, 내게 주님 밖에 누가 더 있겠습니까? 땅에서라도, 내가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놀라운 고백이다.
버팀과 인내의 시간을 통해 결국 놀라운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예배의 충만함이 되었다.

2. 버팀과 인내의 시간을 잘 보내려면

(1) 엎드려야 한다
버팀과 인내의 시간 속에서 내가 할 일이 없다.
하나님 앞에 완전히 엎드려야 한다. 겸손해야 한다.
겸손은 엎드리는 것이다.
버팀과 인내의 골짜기는 서서 걸어가는 구간이 아니다.
엎드려 기어가는 구간이다.
명심하라. 겸손하게 엎드려 기어가는 구간이다.
왜 하나님은 버팀과 인내의 시간을 요구하시는가?
이유는 선명하다.
놀라운 결과를 위해서이다.
요셉에게 있었던 이해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요셉은 버티고 인내했다.
요셉은 결국 총리대신이 되었다.
다윗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결국 왕이 되었다.
제자들은 복음서에서 철저히 무너진다.
그들에게 예수님의 죽음 이후 엎드려 기어가는 시간이 있었다.
마지막 버팀의 시간에 나타난 일의 결과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것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엎드려 기어서 통과하는 구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마지막은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고 기름을 머리에 부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다.
놀라운 고백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버팀과 인내의 시간으로 통과한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하늘의 상급은 놀랍도록 선명하다.
(2) 예배로 나아가라
버팀과 인내의 시간은 진짜 예배를 드리는 순간이다.
버팀과 인내의 구간은 나의 모든 힘이 소멸하는 구간이다.
자존심이 아니라 주존심이 내 마음에 세워지는 순간이다.
‘정말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구나.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정말 교만했구나’를 깨닫는 순간이다.
바로 그 고백의 공간 안에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채워진다.
하나님의 영광이 채워진다.
바로 그 순간이 진짜 예배를 아는 순간이다.
하나님만 생각하는 순간이다.
[사도행전 16:24-26] 24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감옥에 갇혀 버팀과 인내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제자들은 하나님을 예배했다.
모든 상황의 문은 닫혔지만 그들이 예배할 때 상황의 문을 열 수 있는 하늘의 문이 열렸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리고 그 일은 현실의 모든 묶임을 풀어내는 능력의 예배가 되었다.
감옥에 갇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제자들의 예배 가운데 일어났던 일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버팀과 인내의 시간에 가장 집중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버팀과 인내의 시간이 우리를 현실의 모든 차꼬를 풀 수 있는 돌파의 예배로 인도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지금은 그 어떤 때보다 버팀과 인내의 시간이다.
버팀과 인내의 시간은 수동적 버팀과 인내의 시간이 아니다.
그 어떤 때보다 하늘 문이 열리는 능동적 버팀과 인내의 시간이다.
땅의 모든 문제를 풀어낼 하늘의 능력이 부어지는 시간임을 기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