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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or Nothing 1 불확실한 상황에서 붙잡아야 할 믿음의 생각과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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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6:1-6] 1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따르니라 2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3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4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며 5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6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1. 불확실한 상황에 있을 때

인생의 여정 가운데 불확실한 상황에 처할 때가 있다. 이 시간은 그리스도인들이 통과해야 할 시험 중 가장 어려운 시험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약속을 붙잡고 있다. 결국 그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신뢰하며 찬양할 수 있느냐에 대한 문제이다.
가장 힘든 영적 전투는 어려운 문제 속에서, 갈등이 풀리지 않는 상황 속에서 낙담하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궁극적으로 승리와 응답을 확신하며 결국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게 된다.
결론의 과정까지 가기 위해 넘어가야 할 몇 가지 일들이 있다.
‘좋으신 하나님’
그리스도인들은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질문이 많아진다. 하나님은 왜 내게 이런 어려움을 주셨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생겨난 문제에 대한 오해가 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다.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언급이다.
성경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강조하고 있다. 이 말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마태복음 7:7-11] 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좋으신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말씀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잘 알고 계신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어떤 문제든 하나님께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가르쳐 주신다. 그러면 찾게 되고, 문이 열리게 되며, 구하는 것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좋으신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11절을 보라. 악한 자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준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시기에 구하는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막상 불확실한 상황에 처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하시고 좋으신 분이라는 것을 잊어버린다.
바로 이 지점이 하나님에 대한 강력한 오해가 생기는 부분이다. 불확실한 상황에 있을 때 우리가 취해야 할 중요한 믿음의 태도가 있다.
첫째, 하나님을 힘써 알아야 한다.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좋지 않은 마음이 있다. 섭섭한 마음이 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면서 왜 이런 어려운 상황을 주시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하나님에 대한 질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질문과 해답은 다른 문제이다. 해답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다. 내가 정한 해답이 하나님의 해답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결국 불확실한 상황에서 집중해야 할 것은 문제 자체가 아니다. 문제의 해결은 하나님께 있다.
그러므로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 집중해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풍랑 속의 제자들이 된다. 풍랑이라는 문제에 집중했을 때 제자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풍랑이라는 문제가 아니라 풍랑을 잠잠하게 하시는 예수님께 집중해야 한다.
예수님께 집중하라는 말은 ‘더 깊이 알아야 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 호세아 6장 3절을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호세아 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여기서 ‘힘써’라는 단어는 ‘추적하다’라는 뜻이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어도 더 힘을 내어 하나님을 ‘추적하듯 따라가야 한다’라는 말이다. 놀라운 말씀이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을 힘써 아는 일이다’. 바로 그때 하나님의 뜻은 어김없이 나타나는 새벽 빛과 같다. 그 순간 마른 땅과 같은 불확실한 우리 마음을 적시는 비와 같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다.
둘째, 불확실한 상황은 영적 전쟁과 같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사탄의 가장 강력한 거짓말은 하나님을 오해하게 하는 것이다. 특별히 불확실한 상황과 같은 고난의 문제를 ‘연단’으로 생각하려는 태도이다. 물론 하나님은 광야를 통해 우리를 연단하고 단련하신다. 그런데 연단과 사탄의 공격은 다르다.
사탄이 어떤 존재인지 알아야 한다. 사탄은 우리를 파괴하고, 죽이고, 도둑질하고, 갈등하게 하고, 고통을 주고 싶어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사탄은 질병을 통해 공격한다. 여러 문제를 통해 공격한다. 모든 문제를 연단으로만 이해하려는 태도의 맹점은 영적 전쟁으로 끊어 내야 하고 문을 닫아야 하는 부분까지 연단으로 본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사역을 보라.
예수님이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치료하실 때 ‘귀신’을 쫓아냄과 함께 오는 치유의 사건들이 많이 있다. 어려움을 당한 사람(마가복음 9장의 귀신 들린 아이)의 원인이 귀신 들림과 같은 사탄의 강력한 공격이라면 이는 연단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끊어 내야 하는 영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문’과 ‘뿌리’에 대한 이해
영적 사역을 이해할 때 문과 뿌리의 기능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영적 영역에는 두 종류의 문이 있다. 하나는 축복의 문이며, 다른 하나는 저주의 문이다. 사탄은 언제나 저주의 문을 열려고 노력한다. 아담 한 사람을 통해 열린 저주의 문으로 인해 모든 인간이 고통을 받았다. 반대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분명하다. 천국의 문, 구원의 문을 열기 위해 오셨다. 천국의 문, 구원의 문, 축복의 문이 열릴 때 반드시 저주의 문은 닫혀야 한다.
뿌리도 마찬가지이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뿌리가 변해야 한다. 뿌리는 나무 전체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뿌리 자체가 저주의 뿌리라면 아무리 노력해도 다시 저주의 열매를 맺게 된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정말 변화를 원하는가? 진정한 변화를 원한다면 열린 저주의 문을 닫고, 연결된 저주의 뿌리를 완전히 끊어 내야 한다. 출애굽을 보라. 애굽의 뿌리는 이스라엘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었다. 그들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족쇄가 되었다.
우리는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분별해야 한다. 이 문제가 나를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사탄의 공격인지를 알아야 한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저주의 문을 닫고, 결정적인 순간마다 나를 묶는 족쇄인 뿌리를 끊어 내야 한다.
하나님은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시기 전에 우리가 먼저 저주의 문을 닫고 확실하게 끊어 낼 수 있도록 인도하신다.
저주의 문이 닫히는 순간 엄청난 반전이 일어난다. 흐름이 바뀐다. 마음에 담대함이 생겨나고,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믿음의 확신이 생겨난다.

2. 믿음의 사고로 불확실한 상황을 돌파하라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고향으로 가신다. 고향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시자 그 가르침을 듣고 사람들이 놀란다. 놀라운 파장이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감동을 받아 질문한다.
2절 –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는가?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여기까지는 좋다. 만약 이 사람들이 예수님이 행하신 일과 가르침을 보고 겸손히 배웠다면 그들의 삶에 놀라운 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3절을 보면 그들의 태도가 달라진다.
3절 –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놀라운 능력 앞에서 그들은 예수님을 판단하기 시작한다. 자신들이 어렸을 적부터 알고 지내던 한동네 사람, 마리아의 아들이며 목수인 예수를 기억에서 소환해 판단한다.
분명 그들은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일 앞에서 경탄하며 질문했다. 그러나 결국 그들 안에 있던 부정적이고 틀어진 마음과 생각이 예수님을 판단하게 했고, 결국 궁금한 일에 대한 해답을 얻지 못하고 예수님을 배척했다.
주목할 것은 5절과 6절이다.
[마가복음 6:5-6] 5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6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말씀은 예수님이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만 안수해 고치셨다고 기록한다. 그리고 6절에서 예수님은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다고 말씀하신다.
결국 그들의 생각 안에 있던 부정적이고 틀어진 마음이 하늘의 능력을 제한했다. 이 말씀에 주목하라. 예수님은 바로 그 마음이 믿음이 없는 불신의 마음이라고 말씀하신다.
불확실한 상황에 놓인 우리가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우리의 마음이 비뚤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어도 비뚤어진 마음, 틀어진 마음은 불신의 마음이다. 그 마음 속에서는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날 수 없다.
‘다윗’
[시편 103:1-2] 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다윗은 이해할 수 없는 모든 상황에서 그의 마음과 생각을 지켰다. 더 나아가서 여호와를 송축했다. 이 점이 바로 다윗의 위대한 점이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은총을 허락하신 이유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선하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 송축의 대상이시며, 찬송이시며, 구원이시고 응답이시다.
바로 그때, 닫혔던 하늘 문이 열린다. 이해할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된다.
분노와 섭섭함의 마음이 올라올 때 하나님을 찬양하자. 내 영혼에게 “찬양하라”라고 선포하자.
그때 우리는 놀라운 하나님을 만나고 직접 경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