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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or Nothing 2 절망과 아픔의 시간,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창조가 되다(시간의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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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1. 시간의 개념(인간의 시간 vs 하나님의 시간)

(1) 시간의 본질 - 인간의 시간(연속적 흐름) vs 하나님의 시간(의미 중심의 사건)
인간의 시간에서 시간은 물리적인(양적인 - 과거, 현재, 미래) 시간의 흐름이다.
하나님의 시간에서 시간은 ‘의미 중심의 사건’을 말한다. 물리적으로 흐르는 연대기적 시간이 아니다.
(2) 시간의 방향 - 인간의 시간(직선적 진행, 과거-현재-미래) vs 하나님의 시간(목적 지향적, 하나님의 뜻을 향해 진행됨)
하나님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의 연대기적 흐름이 아니다. 분명한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 그 목적이 하나님의 뜻이다.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시간이 있다. 분명한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시간이다.
(3) 시간의 가치 - 인간의 시간(효율, 속도, 성과) vs 하나님의 시간(순종, 의미, 완성)
인간의 시간은 연대기적으로 흐르는 시간이다. 인간에게 시간의 주도권이 있다. 그래서 시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했는가, 시간을 통해 어떤 성과를 얻었는가를 중요하게 본다.
하나님의 시간은 하나님께 시간의 주도권이 있다. 그래서 인간에게 요구되는 것은 하나님의 정한 때에 순종했는가를 본다. 그 시간이 인간에게 있어서 ‘의미’가 있는 시간이 된다. 결국 모든 시간 속의 사건은 완성으로 결말지어진다. (하나님이 주도하시기 때문)
(4) 고통의 시간 - 인간의 시간(지연, 실패, 비효율) vs 하나님의 시간(준비, 침묵, 창조의 과정)
인간의 시간에서 고통은 아무 의미도 없는 지연의 시간이다. 실패와 비효율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시간에서 고통은 당시는 이해할 수 없어도 준비의 시간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으시는 침묵의 시간이다. 고통을 창조의 과정에서 반드시 있어야 할 중요한 과정으로 본다.
(5) 절망에 대해 - 인간의 시간(제거되어야 할 상태) vs 하나님의 시간(해석이 유예된 상태)
인간의 시간에서 절망은 반드시 제거되어야 할 상태이다. 인간의 시간에서 중요한 것은 그 순간의 효율과 성과일 뿐이다. 크로노스는 모든 것을 삼켜 버리는 시간이기 때문에 기다림과 절망은 의미가 없다.
하나님의 시간에서 절망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는 시간이기 때문에 잠시 ‘해석’이 유예된 상태이다.
(6) ‘질문’ - 인간의 시간(언제 끝나는가?) vs 하나님의 시간(하나님이 무엇을 하시는가?)
(7) 세계관 - 인간의 시간(철학, 이성 중심 - 인간에게 시간의 주도권이 있기 때문) vs 하나님의 시간(언약, 관계 중심 - 하나님께 시간의 주도권이 있기 때문)

2. 말씀과 시간

[전도서 3: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Eccl. 3:1, NIV] There is a time for everything, and a season for every activity under the heavens
[전도서 3:1, 새번역]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마다 알맞은 때가 있다.
말씀을 보라.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 절망이라고 해도 그 시간은 의미가 있는 시간이다.
[이사야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를 앙망한다는 것은 단순히 수동적인 기다림이 아니다. 원뜻으로 보면 ‘팽팽히 당기다’, ‘긴장 속에서 연결되다’라는 뜻이다.
즉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상태가 아니다.
‘앙망’은 수동적으로 느슨하게 포기하고 방관하는 기다림이 아니다.
‘앙망’은 두 기둥 사이에 밧줄을 팽팽히 당겨 묶은 모습이다. 끊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당기며 버티는 상태이다.
그래서 ‘앙망’은 하나님께 인생을 단단히 묶어 두는 행위이다.
이 사람이 새 힘을 얻는다. 이 사람이 새 힘을 얻는 이유는 기다림과 절망이 힘들어서가 아니다. 자신의 힘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힘을 하나님께 단단히 묶어 두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순간이 하나님의 새 힘이 주어지는 시간이다.

3. 요셉의 절망에 대한 해석

[창세기 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하나님의 시간의 개념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삶을 산 인물은 성경 속의 ‘요셉’이다.
요셉의 인생은 ‘절망의 연속’이다. 요셉의 절망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있다. ‘구덩이’, ‘노예 생활’, ‘감옥’이다.
요셉의 절망의 시간은 요셉이 이해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요셉의 시간은 하나님의 시간이었다.
요셉의 절망의 시간은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기다림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하나님께 인생을 단단히 묶어 두는 시간’이다. 요셉이 절망의 시간을 버텨 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께 인생을 단단히 묶어 두었기 때문이다.
절망은 쉽지 않은 시간이다. 절망이 힘든 이유는 하나님의 ‘부재감’ 때문이다. 자신도 견딜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모르겠다는 감각이다.
그러나 절망을 이해할 수 없고 알 수 없지만 그 시간은 절망에 대한 해석이 잠시 유보된 것일 뿐이다.
이 모든 절망을 통과한 요셉의 고백이 창세기 50장 20절의 말씀이다.
[창세기 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 때문에 내 인생은 절망으로 가득했지만(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다.”
놀라운 고백이다. 인간의 시간 속에서 요셉의 시간을 보면 절망으로 가득하다. 패배와 실패로 가득하다.
여기서 주목할 말씀이 있다. ‘하나님이 바꾸셨다’라는 표현이다.
하나님이 절망을 ‘선’으로 바꾸셨다. 승리로 바꾸셨다. 영광으로 바꾸셨다. 절망의 구간을 하나님의 언약에 자신을 묶음으로 통과함으로써 요셉에게 주어진 결과는 ‘하나님의 선하심’이다.
오히려 그 시간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는 창조의 일’이 되었다.
‘절망의 시간을 이긴 사람들’
(1) 하나님이 시간의 주관자이시다. 하나님의 시간의 주인공이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믿으라
하나님은 요셉의 형들에게 주목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언제나 창조적인 새 일을 일으킬 언약의 사람을 주목하신다.
하나님은 사울도, 골리앗도 주목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다윗을 주목하신다.
(2) 사건이 아니라 시간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라
하나님은 요셉의 고백처럼 결국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주권자이시다.
(3) 오늘 내 절망은 내가 겪고 있는 유일한 경험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일에 대한 권한과 권위를 주셔서 하나님의 창조적 일에 사용하신다
고난은 간접 경험이 아니다. 내가 겪는 직접 경험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반드시 내가 통과한 고난을 창조적 사역으로 바꾸신다.
(4) 결국 모든 고난은 십자가를 깊이 이해하는 자양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