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ll or Nothing 5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혼돈 속에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법

All or Nothing 5.pdf
291.4 KiB
[갈라디아서 5:24-25]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1. 원리

성령의 사람은 누구인가?
초자연적인 능력과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인가? 그렇지 않다. 갈라디아서 5장 24절과 25절에 기록되어 있다.
[갈라디아서 5:24-25]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성령의 사람은 십자가에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못 박은 사람이다.
25절을 보라. 성령의 사람은 성령으로 사는 사람이며, 이는 곧 성령으로 행하는 사람이다.
생각과 결정에서 온전히 성령께 순종하는 사람이다.
성령으로 사는 삶의 가장 큰 걸림돌은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은 ‘자아’이다.
그래서 성령으로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은 성령의 아홉 가지 성품이 있는 사람이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 이 시대 집중하고 싶은 열매는 ‘오래 참음’과 ‘절제’이다.
오래 참음과 절제를 주목하는 이유는 이 두 성품 모두 자신을 죽여야 얻을 수 있는 열매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때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자 하는 마음이 절정’에 이르는 때이다.
그 이유는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은 자아의 힘이 최대치가 되기 때문이다.

2. 불신자들에게 복음이 들리지 않는 이유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인터뷰에서 ‘불신자들에게 복음이 들리지 않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고 전도하죠. 제가 불신자라면 ‘그래서 어쩌라고요?’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 ‘당신이 말하는 예수가 누구입니까? 저는 원치 않습니다. 저는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필요한 것은 다 가졌습니다. 관심 없으니 귀찮게 하지 마십시오.’
잘 보십시오. 구약은 율법입니다. 바울은 그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교사였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율법입니다. 사람들이 십계명을 직시하게 되면 그곳에서 자신의 실패를 보게 됩니다.
율법으로 인해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되고, 그렇게 진정으로 자신의 죄를 깨달은 사람만이 복음을 들을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놀라운 설명이다. 십자가에서 자신의 죄를 깨달은 사람만이 복음을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이 말의 뜻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교회는 자신이 전해야 하는 메시지를 확실히 알아야 한다. 바울이 고린도에게 한 말을 기억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고린도전서 2:2] 내가 너희들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맞다. 이는 교회의 본질이며, 성도가 살아가는 존재의 이유이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가 성령님을 온전히 따르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복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니 혼적이고 육적인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 가득하다.
이들은 모양은 그리스도인인 것처럼 보이지만 삶의 전반에서 한 번도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복음을 경험하지 못했다.
당연히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없다. 성령으로부터 오는 능력의 삶을 살 수 없다.

3. 혼돈의 때 어떻게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을까?

혼돈의 때이다. 말세는 고통의 때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성도는 어떻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는가?
그 답이 ‘노아’에게 있다.
예수님은 마지막은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하셨다.
노아의 때는 혼돈의 때이다. 심판의 때이다.
혼돈의 때 하나님은 노아의 가정을 인도하신다. 방주가 ‘열쇠’이다.
(1) 방주
방주의 설계는 하나님이 하셨다. - 노아의 가정을 인도한 방주의 설계를 하나님이 하셨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
방주는 인간의 생각이 조금도 반영되어 있지 않다. 창세기 6장 14절부터 하나님은 직접 방주의 설계를 말씀하신다.
혼돈의 때에 인도함을 받는 법은 하나님이 방주를 설계하신 것처럼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방주를 설계하셨다는 것은 구원은 인간의 작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방주는 하나님의 구원 방식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2) 방향을 조정하는 조타 장치, 노, 돛에 대한 언급이 없다
하나님은 방주의 크기, 재료, 구조에 대해 상세히 지시하신다.
그런데 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조타 장치, 노, 돛에 대한 언급이 없다.
혼돈 속에서 노아는 자신이 어디로 갈지를 결정하지 않았다.
혼돈 속에서 노아는 언제 멈출지도 결정하지 않았다.
혼돈 속에서 방주는 바다를 항해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긴 채떠 있음의 상태였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혼돈의 때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법은 분명하다.
‘파도’의 움직임에 따라갈 뿐이다.
혼돈의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노아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파도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노아의 방주를 통해 당신의 뜻을 선명히 나타내신다.
노아의 방주는 인간의 통제가 아닌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노아를 ‘인도’하시고, 노아는 ‘순종’으로 따라간다.
노아의 방주에 조타기와 같이 방향을 통제할 수 있는 노와 돛이 없다는 것은 내 인생의 방향성을 내가 잡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궁극적 방향성은 하나님께 있다는 신앙 고백이다.
(3) 방주는 심판(혼돈)을 피하는 수단이 아니라 혼돈을 통과하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방주는 홍수를 피하지 않는다. 홍수 위에 떠 있음으로 심판을 견디고 통과한다.
(4) 혼돈 속에서 하나님은 보호하신다
[창세기 6:14]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창세기 6:16]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고페르 나무 :
정확한 수종은 불확실하나 고대 주석가들은 삼나무, 편백나무로 추정한다.
이는 내구성, 방수성, 장기 보존에 적합하다.
하나님은 혼돈을 통과할 수 있도록 우리를 방주에서 보호하신다.
오늘날 방주는 교회이다. 공동체이다. 믿음의 가족들이다.
마지막 혼돈의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공동체’이다. 개인이 아니라 교회가 이기는 것이며, 하나님은 믿음의 공동체가 이기도록 디자인하셨다.
역청 :
히브리어 중 ‘덮다’, ‘속죄하다’와 어근이 같다. 방주를 덮은 역청은 단순한 방수재가 아니라 심판을 막아주는 ‘덮음’의 상징이다. 역청은 죄를 지은 후에 피로 덮는 속죄 개념의 원형적 이미지이다.
혼돈의 때 방주는 하나님의 보호이다. 하나님은 모든 세상의 탁류로부터 ‘덮어’ 보호하신다. ‘덮음’은 은혜이다.
혼돈의 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때에 꼭 기억하자. 하나님의 덮어주심이 있음을.
: 위로 난 창
이는 혼돈의 때 외부 상황을 통제적으로 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세심한 설계이다.
혼돈의 때 하늘만 보게 하신다. 하나님은 혼돈의 때 성도의 시각을 차단하신다.
혼돈의 때는 열린 창으로 하늘을 바라보아야 할 때임을 꼭 기억하자.
: 하나의 문
[창세기 7:16] 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하나님이 직접 문을 닫으셨다. 이는 구원의 시작과 끝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다.
알 수 없는 혼돈의 시작과 끝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다.
혼돈의 때를 통과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법은 십자가 위에서 내 자아를 철저하게 처단하는 것이다.
혼돈의 때 내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깊이 알아야 한다.
더 하나님께 나아가라. 기도하라. 엎드리라. 말씀을 먹고 또 먹으라.
나는 멈추어 있는 것 같지만 그 어떤 때보다 강력한 성령의 인도하심 안에 있다는 믿음으로 나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