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7:49-54]
49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50 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51 다윗이 달려가서 블레셋 사람을 밟고 그의 칼을 그 칼 집에서 빼내어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의 머리를 베니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용사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는지라
52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이 일어나서 소리 지르며 블레셋 사람들을 쫓아 가이와 에그론 성문까지 이르렀고 블레셋 사람들의 부상자들은 사아라임 가는 길에서부터 가드와 에그론까지 엎드러졌더라
53 이스라엘 자손이 블레셋 사람들을 쫓다가 돌아와서 그들의 진영을 노략하였고
54 다윗은 그 블레셋 사람의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고 갑주는 자기 장막에 두니라
1. 견고한 진
성경에 ‘견고한 진’이라는 단어가 있다. 주로 하나님을 강력히 대적하는 조직화된 구조를 지칭한다.
[고린도후서 10:4]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견고한 진은 영어로 ‘stronghold’라고 한다.
strong은 ‘강한’, ‘단단한’, ‘쉽게 무너지지 않는’ + hold는 ‘붙잡다’, ‘지키다’, ‘점유하다’, ‘통제하다’는 의미가 있다.
견고한 진이라는 단어 안에 ‘지속성’과 ‘지배력’이라는, 강제적으로 붙들어 통제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영적으로 말하면 견고한 진은 단순한 방어물이 아니라 성도를 계속 붙들고 놓지 않는 사탄의 거점이다.
바울이 ‘견고한 진’이라는 단어를 썼을 때 그 당시 독자들에게는 군사적 이미지를 주었다.
견고한 진은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통해 의도를 가지고 세워진 강한 요새와 성채와 같다.
바울은 ‘견고한 진’이라는 단어를 통해 하나님을 대적하는 생각이 이론화될 정도로 체계화되어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내 삶의 견고한 진’
마찬가지이다. 사탄은 ‘견고한 진’이라는 거점을 만들어 하나님을 대적한다. 믿는 성도를 대적한다.
바울은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말한다. ‘무너뜨리다’라는 단어 역시 전쟁에서 사용하는 군사적 용어이다.
‘견고한 진’은 그 정도로 강력하다. ‘견고한 진’이 무너지는 것이 진정한 승리이다.
바울은 사탄의 견고한 진이 사람의 내면과 생각에 요새와 같이 존재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진리를 왜곡하는 생각을 만들어 낸다. 지속적인 영향력을 통해 성도가 진리를 거절하도록 한다.
그래서 제대로 설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서지 못하면 결국 아무것도 아니다. 견고한 진이 무너질 때 비로소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로 설 수 있다.
2. 견고한 진이 무너지는 순서
오래된 거점인 ‘견고한 진’은 체계화된 요새와 같다고 했다.
요새를 생각해 보라. 성벽이 있고, 모든 것을 방어하는 ‘문’이 있다.
(1) 게이트와 성벽이 먼저 무너지다
다윗과 골리앗의 전쟁을 통해 견고한 진이 무너지는 순서를 볼 수 있다.
사실 다윗과 골리앗의 전쟁은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두 인물의 싸움 같지만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싸움으로 인식해야 한다. (두 사람 모두 각 나라를 대표함)
이스라엘에 있어서 블레셋은 함께 공존할 수 없는 ‘견고한 진’이었다.
그들은 ‘다곤’(Dagon)을 숭배했다. 힘, 철기 문화, 군사력의 중심에 있었다.
인간 기술과 물질문명을 상징한다. 블레셋은 하나님 없는 문명의 강함을 상징한다.
블레셋은 다윗과 골리앗의 전쟁에서 보는 것처럼 지속적으로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나라였다.
오늘 우리의 신앙에 진정한 승리가 있으려면 블레셋과 같은 사탄의 견고한 진이 무너져야 한다.
우리의 내면과 생각을 거점으로 삼아 끊임없이 공격해 오는 사탄의 견고한 진이 파쇄되어야 한다.
거점이 무너질 때 ‘새로운 판’이 열린다. 여리고가 무너질 때 가나안이라는 새로운 판이 열린다.
골리앗은 ‘게이트’이다.
첫 번째 순서는 게이트(문, 성벽)가 먼저 무너지는 것이다. 골리앗은 본진 블레셋을 지키는 게이트와 같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게이트가 무너져야 본진을 칠 수 있다.
골리앗은 다윗의 ‘물맷돌’로 무너진다.
물맷돌은 무엇인가? 다윗의 결단이다. 골리앗을 무너뜨리라는 하나님의 소명에 대한 다윗의 반응이다. 물맷돌은 죽으면 죽으리라는 강력한 의지와 순종의 표현이다.
본진에 도달하기 위해 게이트를 무너뜨리는 다윗의 첫 번째 무기인 물맷돌은 본능과 같은 다윗의 결단의 마음이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제자들이 자기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간 결단의 첫 마음이 물맷돌이다.
먼저 마음을 먹어야 한다. 두렵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하는 첫 번째 결단이 바로 물맷돌이다.
이때 사탄은 골리앗처럼 위협하고 참소한다. 결단의 의지를 꺾는 것이 이때의 사탄의 공격이다.
이때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뒤로 물러나지 말아야 한다.
다윗의 연약함을 비웃은 골리앗처럼 사탄은 “네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너같이 연약한 자가, 너같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너 같은 죄인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와 같이 나의 정체성을 참소할 것이다.
이때 다윗의 고백처럼 ‘나는 연약하지만 만군의 주 하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나아가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모든 참소함을 돌파하는 담대한 마음이 믿음이 된다. 절대 뒤로 물러나지 않겠다는 마음이 중요하다. 사람의 소리를 듣지 말고, 사람과 환경을 보지 말고 다윗처럼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그 마음이 골리앗을 무너뜨렸다. 게이트를 여는 첫 번째 승리이다.
(2) 견고한 진 - 본진 블레셋이 무너지다
오늘 말씀을 보라. 골리앗이 무너진 것으로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골리앗이라는 게이트가 열리자 본진 블레셋까지 단번에 나아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사무엘상 17:49-54]
49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50 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51 다윗이 달려가서 블레셋 사람을 밟고 그의 칼을 그 칼 집에서 빼내어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의 머리를 베니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용사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는지라
52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이 일어나서 소리 지르며 블레셋 사람들을 쫓아 가이와 에그론 성문까지 이르렀고 블레셋 사람들의 부상자들은 사아라임 가는 길에서부터 가드와 에그론까지 엎드러졌더라
53 이스라엘 자손이 블레셋 사람들을 쫓다가 돌아와서 그들의 진영을 노략하였고
54 다윗은 그 블레셋 사람의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고 갑주는 자기 장막에 두니라
‘두 번째 무기 - 칼’
오늘 말씀을 보라. 다윗의 두 번째 무기인 ‘칼’이 등장한다.
50절 –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이미 골리앗은 쓰러졌으나 확실하게 골리앗의 숨통을 끊어 낼 무기는 물맷돌이 아니라 ‘칼’이었다.
51절 – 다윗은 골리앗의 칼집에서 칼을 빼내어 그를 죽이고 그의 머리를 베었다.
51절을 주목해라. 블레셋이라는 견고한 진이 무너진다.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용사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는지라”.
블레셋이라는 거점에 금이 간다.
52-54절 - 51절에 블레셋이라는 거점에 금이 간다. (도망하는지라)
52절을 보라. – “~블레셋 사람들의 부상자들은 사아라임 가는 길에서부터 가드와 에그론까지 엎드러졌더라”.
53절 – “~블레셋 사람들을 쫓다가 돌아와서 그들의 진영을 노략하였고”.
블레셋이라는 견고한 진이 완전히 무너진다. 이스라엘이 가서 블레셋의 진영을 노략할 정도의 완전한 승리이다.
견고한 진 블레셋을 무너뜨린 두 번째 무기는 물맷돌이 아니라 ‘칼’이었다는 사실을 주목하라.
물맷돌은 게이트를 열었고, ‘칼’은 견고한 진을 무너뜨렸다.
블레셋의 판을 뒤집고 하나님의 판이 열렸다.
‘칼은 말씀’이다.
검은 성경에서 말씀을 의미한다.
첫 번째는 결단과 의지로 나아갔다면 두 번째 판을 바꾸기 위해서는 반드시 말씀 위에 서야 한다.
말씀 위에 서지 않는 모든 것은 결국 흔들린다.
[이사야 40: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감정의 결단과 의지에는 한계가 있다. 말씀이 두 번째 무기가 되어야 한다.
[마태복음 12:43-45]
43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44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45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영적 세계를 보여 주는 무서운 말씀이다.
귀신이 떠난다. 그런데 거할 곳이 없어서 다시 자기가 나온 사람에게 간다.
44절 –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무서운 말씀이다. 귀신이 자기 집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말은 이미 거점으로 삼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맷돌과 같은 결단 때문에 나갔지만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고 말하고 있다.
나중에 돌아올 때 그는 저보다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기에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된다.
주목할 것은 ‘거하다’라는 단어이다. 사탄의 거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 거점은 더 강력한 거점이 되어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을 전보다 더욱 심하게 만들었다.
판을 바꾸어야 한다. 말씀이 결국 판을 바꾼다. 판을 바꾸어야 한다. 판이 바뀐다는 것은 새로운 질서 체계가 견고히 자리 잡혔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질서가 필요하다. 새로운 명령 체계가 필요하다.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말씀 앞에 설 때, 말씀이 내게 칼이 되기 시작할 때 내 안에 있던 블레셋이 무너지게 된다.
‘마지막 때의 열쇠는 말씀’
[요한계시록 10:9-11]
9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10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11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마지막 때, 하나님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의 두루마리를 먹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말씀이 그 입에서 달다는 것은 말씀의 계시가 열렸다는 것이다. 비밀을 아는 기쁨이 있다. 즐거움이 있다.
말씀을 읽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이다. 배에서 쓰다는 것은 삶으로 살아 낸 여정을 말한다. 말씀이 소화가 된 상태이다. 말씀이 체화된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강력하다.
이 사람이 11절처럼 마지막 때 놀라운 일들을 예언하게 된다. 예언은 하늘의 비밀이다. 사탄이 가장 두려워하는 자는 하나님의 비밀을 알고 있는 자들이다.
‘여호수아의 언약’
[여호수아 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하나님은 가나안 땅이라는 새판에 들어갈 여호수아에게 다른 것을 말씀하지 않으신다. ‘말씀’을 강조하신다.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라고 말씀하신다. 그 결과는 평탄과 형통이다.
2026년 말씀 앞에 서야 한다.
말씀의 검을 날카롭게 하라.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라. 그 위에 평탄과 형통이라는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의 실재를 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