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2:7-10]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1. 언제 넘어지는가?
[고린도전서 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사람은 언제 넘어질까? 약할 때, 어려울 때 시험에 들고 넘어질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약할 때, 어려울 때 오히려 하나님을 붙잡는다. 성경을 보면 대부분의 타락은 어려울 때가 아니라 강할 때, 힘이 있을 때, 많은 것을 소유했을 때, 성공해서 정점에 있을 때 일어난다.
고린도전서 10장 12절을 보니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사람의 타락은 모든 것이 완벽한 에덴동산에서 일어났다.
다윗의 타락은 광야와 같은 시간을 지난 후에 예루살렘의 왕이 된 권력의 정점에서 일어났다.
왜 섰을 때 넘어질 가능성이 더 높을까?
강해졌기 때문이다. 강하다는 것은 어떤 일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 능력이 커졌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지 않을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자아의 능력이 커질수록 하나님만을 의지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성경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힘을 의지하는 상태를 ‘교만’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가장 싫어하신다.
[잠언 6:16-19]
16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곧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예닐곱 가지이니
17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18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19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이니라
[잠언 16:5]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 중에 ‘교만’이 가장 으뜸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야고보서 4: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싫어하시는 정도가 아니라 물리치신다.
‘대적하시다’라는 표현으로 쓰이는데, 대적하다는 군대가 전열을 갖추어 맞서는 모습이다.
교만은 하나님이 직접 맞서 대항하시는 죄이다.
[잠언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교만은 모든 패망의 첫 번째 원인이다. 거만한 마음 또한 같다.
왜 패망하고 넘어지는가? 다른 이유가 아니다. ‘교만’하기 때문이다.
2. 잘되면 타락한다
목회를 하며 알게 된 인간의 본성은, 인간은 잘되면 타락한다는 것이다.
잘되어야 한다. 그런데 동시에 타락할 가능성 또한 높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너무 잘되어서 하나님을 찾을 시간도 없게 된다. 그러면 백 프로 타락한다.
여지가 없다. 인간은 모두 그렇다. 그래서 인간은 연약하다.
내 능력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님이 필요하겠는가?
혼과 육의 힘이 커질수록 영적인 능력은 약해진다. 영의 눈과 귀가 닫히니 어둡다.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3.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누구인가? 교만과 반대로 ‘겸손한 사람’이다.
‘가장 큰 자’
[마태복음 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여자가 낳은 자 중에’라는 말은 ‘모든 인류를 통틀어’라는 말이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가장 큰 자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세상에서 큰 자와 천국에서 큰 자는 다르다. 왜 세례 요한이 큰 자인가?
[마가복음 1:7]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당시 신발을 푸는 일은 가장 낮은 종의 일이었다. 요한은 “나는 그 종의 자리에도 못 미친다”고 고백할 정도로 겸손한 사람이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할 줄 아는 겸손한 사람이다. 자기를 부인하는 겸손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볼 수 있는 ‘눈’과 같다. 그래서 이 사람은 예수님을 신뢰한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른다. 예수님은 이 사람과 함께하신다.
4. 제한 없이 쓰임 받는 사람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큰 영광은 무엇이겠는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데 ‘제한’이 없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데 한계와 제한이 없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모세를 제한 없이 마음껏 사용하셨다.
하나님은 다윗을 제한 없이 사용하셨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도행전에서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하나님의 일에 제한 없이 사용되었다.
‘바울’
특별히 바울을 보라. 다메섹 도상에서 하나님을 만난 이후, 하나님은 바울을 제한 없이 마음껏 사용하셨다.
바울이 3차 전도 여행을 포함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동한 거리는 2만 km 가까이 된다. 포장도 되지 않은 도로를 도보로 움직였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엄청난 거리이다.
바울은 서신서를 작성했고, 교회를 개척했으며, 이를 통해 오늘날 기독교가 든든히 세워질 수 있는 큰 토대를 마련했다.
바울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과 치유 또한 그 수를 다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바울 한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강력하게 쓰임 받을 수 있었겠는가?
이런 정도의 능력이 있으면 반드시 타락하는 것이 인간인데, 어떻게 바울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데 제한 없이 쓰임 받는 존재가 되었을까?
‘고난’이 비결이다
[고린도후서 12:4-5]
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5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4절 –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바울은 환상과 계시를 통해 셋째 하늘의 놀라운 영광을 보았다. (셋째 하늘은 천국이다) 그런데 바울은 셋째 하늘을 경험한 사람이 자기라는 사실을 숨긴다.
5절 - 바울은 이 엄청난 경험을 하고도 자신은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한다. 자신을 위해서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고 고백한다. 바울은 철저히 자신을 부인한다. 바울은 누구보다 자신을 부인하는 일을 강조했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바울이 하나님을 만나기 전 사탄의 도구가 되어 교회를 핍박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죽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없이 살았던 자신의 모습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전의 모습을 부인하는 것은 옛 모습에 대한 통회함과 회심의 삶도 있겠지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에 대한 의지) 더 중요한 의미는 그가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을 보았기 때문이다. 세상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하늘의 보화를 보았기 때문이다. 바울은 하나님이 더 마음껏 사용하시도록, 제한 없이 사용하시도록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고린도후서 12:7-10]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7절 - 바울은 교만이 하나님께 쓰임 받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육체의 가시를 통해 자신이 교만하지 않도록 하셨다는 놀라운 고백을 한다.
8절 - 바울에게 있어 육체의 가시는 힘든 고통의 문제였다. 그래서 바울은 주님께 세 번이나 간구했다고 말한다. 바울이 하나님께 세 번이나 간구한 것은 육체의 가시가 그에게 매우 힘든 고통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9절 - 바울은 육체의 가시로 인한 약함에 대해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바울은 오히려 육체의 가시를 두고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 고백한다.
10절 -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이 받은 고난(약한 것들, 능욕, 궁핍, 박해, 곤고)을 기뻐한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다시 강조한다.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오늘 바울이 하나님께 제한 없이 마음껏 쓰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울의 육체의 가시 때문이다. 그는 육체의 가시로 인해 고통을 받았으나 오히려 그 육체의 가시로 인한 연약함 안에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러 있었다.
여기에 놀라운 하늘의 비밀이 있다.
바울에게 있었던 고난은 그가 교만하지 않도록 제어하는 브레이크와 같다.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는 결국 사고를 낸다.
오늘 내게 고난이 있는가? 오늘 나는 고통의 구간을 지나고 있는가? 바울처럼 하나님께 제거해 달라고 구하는 어려움이 있는가?
하나님은 그 어려움을 해결해 주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께 ‘제한 없이’ 쓰임 받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가르쳐 주신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있는 고난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제한 없는 통로이다.
“나는 묶이고 하나님은 제한 없이 움직이신다.” 할렐루야! 이 말은 세례 요한의 고백이다.
[요한복음 3: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하나님의 제한 없는 통로가 되고 싶은가?
세례 요한의 고백을 잊지 말자. 내가 쇠할 때 하나님의 능력은 제한 없이 이 땅에 나타난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