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38-39]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1. 각성(Awakening)
부흥은 침체되어 있는 교회와 성도들이 회복되고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에게 직접 찾아오시는 일이 부흥이다. (James I. Packer)
부흥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그래서 무너진 하나님의 형상이 다시 회복되고 다시 제자리를 찾는 일이다. 인본주의적 질서가 하나님께 정렬된 질서로 바뀌는 것이다. 그래서 부흥에는 언제나 자신을 깨워 내는 ‘각성’이 회개로 일어난다. 각성은 ‘내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구나’를 아는 것이다.
그래서 각성을 ‘Awakening’이라고 한다. 이는 잠에서 깨어나는 것을 말한다. 영적으로 무감각한 상태에서 의식이 회복되는 것이다. 즉 각성은 영적 무감각에서 깨어나는 상태를 말한다.
[에베소서 5: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각성은 죄의 둔감한 상태를 벗어나 자신의 영적 현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자신의 영적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정확히 돌이키는 회개와 연결될 수 있다. 진정한 돌이킴의 회개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정확히 인식하는 각성이 없기 때문이다.
각성은 언제나 자신의 죄를 본다. 그래서 각성은 영적으로 강력하다.
‘각성과 갈망의 원리’
여기에 놀라운 영적인 법칙이 있다. 진짜 자신의 죄를 보는 각성은 언제나 돌이키고자 하는 갈망을 일으킨다.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한 진단을 받은 환자가 기존의 잘못된 생활 패턴을 버리고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회복의 갈망과 같다.
각성을 통해 일어나는 회복을 향한 갈망은 깨끗한 갈망이다. 그래서 중요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부흥의 시작으로 각성을 통한 갈망을 일으키신다. 이 갈망은 내가 원하는 어떤 것을 구하는 갈망과 다르다.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순전한 갈망과 목마름이다.
2. 마음의 동기와 갈망
각성은 그 마음 안에 있는 ‘마음의 동기’를 드러낸다. 마음의 동기가 중요하다. 마음의 동기는 어떤 일에 대한 숨겨진 마음이다. 하나님은 각성을 통해 잘못된 마음의 동기를 드러내신다.
‘아담의 숨겨진 동기’
[창세기 3:11-13]
11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나님은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은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은 이유에 대해 물으신다. 12절과 13절에 보면 아담과 하와는 각자 “여자가 주었기 때문에 먹었습니다”, “뱀이 나를 꾀었기 때문에 먹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사실 그렇지 않다. 앞선 4절과 5절에 그들이 선악과를 먹은 마음의 동기가 분명히 나타나 있다.
[창세기 3:4-5]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4절 -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로 먹어도 죽지 않는다는 사탄의 미혹에 넘어간 마음.
5절 - 선악과를 먹고 눈이 밝아져 선악을 아는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은 마음.
하나님이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게 물으신 것은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 안에 있는 동기에 대한 것이다. 그들이 선악과를 먹은 이유는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은 마음의 욕망이다.
‘위선과 종교’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마음의 동기는 언제나 종교로 포장된다.
[마태복음 23:25-28]
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26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예수님은 겉과 속이 다른 외식하는 종교 지도자들(서기관과 바리새인)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라고 강력히 책망하신다.
25절 - 겉으로만 깨끗한 잔과 대접.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이 가득하다.
26절 -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할 것이다.
27절 - 회칠한 무덤 -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
28절 -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다.
예수님의 법이 구약의 보여지는 행위법보다 강하다. 율법의 그물보다 촘촘해서 어떤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는 마음의 법이기 때문이다.
‘말라기에 기록된 위선적인 예배’
[말라기 1:7-8]
7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
8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잘못된 예배에 담긴 마음의 동기에 대한 하나님의 탄식이 나온다.
7절 - 하나님의 제단에 더러운 떡을 드리고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더럽게 할 수 있습니까?”라고 말하는 잘못된 마음의 동기는 하나님을 경멸하는 것이다.
8절 - 눈먼 희생제물(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을 드리는 것이 얼마나 악한지를 말씀하신다. 인간인 총독에게도 그런 악한 것을 드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탄식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이런 위선적인 예배를 닫아 버렸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신다. (10절)
[말라기 1: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진정한 각성은 다른 것이 아니다. 숨겨진 ‘마음의 동기’가 드러나는 것이다.
3. 하나님의 사랑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숨겨진 마음의 동기를 드러내실까?
그 이유는 너무나 분명하다. 진정으로 우리를 만나고 싶어하시기 때문이다. 진실한 마음은 숨겨진 동기가 없는 깨끗한 마음이다. 그 마음이 사랑의 마음이다.
마음의 동기를 점검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정죄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의 숨겨진 마음의 동기가 드러나는 그 순간, 아담과 하와는 엄청난 수치심과 정죄감과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런데 그 순간은 우리를 온전하게 하실 두 번째 아담이신 ‘예수님’이 계시되는 놀라운 순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바울’
바울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했다. 바울의 사랑은 신부의 사랑과 같다. 신랑 되신 예수님을 사랑했다. 그래서 그는 괴로워했다(롬 7장). 자신 안에 하나님의 법 말고 다른 법을 즐기는 마음이 있음을 괴로워했다. 바울이 두 마음 사이에서 괴로워한 이유는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아담을 향한 수치심과 정죄의 음성이 바울에게도 동일하게 들렸을 것이다. 탕자 역시 각성을 통해 아버지를 떠난 불순한 마음의 동기를 알고, 그는 자신이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고 여길 정도로 정죄감에 스스로 괴로워했다.
인간은 수치심과 정죄감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다. 두 감정 모두 사탄이 쏘는 불화살이며 죄로부터 올라오는 영적인 감정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놀라운 돌파가 있다.
[로마서 8:31-39]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엄청난 말씀이다. 누가 우리를 대적하고 정죄할 수 있는가? 바울은 32절에서 이런 우리를 구하기 위해 자기 아들을 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다.
33절 - 아무도 고발할 수 없다.
34절 - 아무도 정죄할 수 없다.
36~39절 -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
바울은 드러난 마음의 동기를 통해 오히려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깨닫는다.
4. 각성! 부흥의 시작
각성은 부흥의 시작이다. 각성이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만을 향한 순전한 갈망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 갈망이 결국 ‘회개’로 방향을 전환하게 한다.
오늘 부흥을 갈망하는가? 하나님은 아주 성능이 좋은 현미경처럼 우리의 마음의 동기를 보게 하실 것이다. 이 시간은 정말 강력한 시간이다. 세밀한 하나님의 음성에 반응하는, 살아 있는 마음을 보는 놀라운 시간임을 명심하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마음의 동기에 대해 정직한 사람이다.
“하나님, 내 마음의 동기를 비추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자. 바로 그곳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