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14:1]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느니라
[이사야 55: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1. 노아의 시대
‘심각함이 없는 시대’
[마태복음 24:37-39]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홍수’는 하나님의 카이로스의 때를 말한다.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 홍수의 때가 올 것임을 경고하신다.
그런데 문제는 38절이다.
[마태복음 24: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38절에 언급된 노아의 때는 어떻게 보면 아주 평범한 인간의 일상이다.
일상이 잘못된 것일까? 일상은 중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일상이 하나님의 때를 잠식한다.
사람들은 일상에 파묻혀 하나님의 때를 망각하고 있다.
마지막 때는 하나님의 시간에 대해 둔감한 시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적으로 둔감한 때이다. 왜 영적으로 둔감할까?
땅의 일상이 하늘의 때를 덮었기 때문이다.
일상은 중요하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카이로스에 관심이 없는 인간의 일상을 경고한다.
평범한 일상은 중요하다.
그런데 평범한 일상이 강조되면 특별한 시간을 망각한다.
인생에 있어서 특별한 시간이 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일상에 오셔서 아주 특별한 시간을 던지셨다.
베드로는 자신의 타이밍을 잠시 멈추고, 예수님의 시간에 자신의 시간을 맞추었다.
그래서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질 수 있었다.
(1) 하나님의 때를 덮어버릴 개인주의
모든 것이 ‘자기’에게 맞추어져 있다. 지극히 좁고 협소하다.
비전과 꿈은 없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자신을 넘어선 하나님 나라를 구하게 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특별한 시간을 던지는 것이 부담스러운 시대가 되었다. 아니 잘못된 것처럼 보이는 시대가 되었다.
분별해야 한다.
(2) 지금이 너무 좋으면 더 높은 차원의 일을 구하지 않는다
노아의 방주가 만들어지고 있음에도 그들이 멸망당하기 직전까지 깨닫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마태복음 24: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땅이 너무 행복한 것이다.
땅이 너무 좋은 것이다.
땅이 너무 좋으면 하늘에 관심이 없다.
땅의 불편함이 있어야 하늘을 구한다.
이와 같은 시대에 사람들은 ‘부흥’이라는 특별한 시간에 관심이 없다.
갈망이 없다.
하나님은 그래서 먼저 각성시키신다.
각성시키신 후에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갈망을 주신다.
그 갈망 뒤에 실제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회개’가 일어나는 것이다.
2. 회개의 의미
(1) 구약에서의 회개 - 슈브
구약에서 회개는 단순한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방향 전환이다.
구약의 회개를 이해할 수 있는 단어가 ‘슈브’이다. 이는 ‘돌아가다’, ‘되돌아오다’라는 뜻이다.
[호세아 14:1]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느니라
[이사야 55: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회개는 언약을 어긴 백성이 언약의 하나님께 복귀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회개는 윤리적 행위 이전에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다.
특별히 행동의 방향 전환을 통한 행동의 변화를 강조한다. 하나님께로의 방향 전환을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슈브’이다.
(2) 신약에서의 회개 - 메타노이아
‘메타노이아’는 생각과 마음의 변화, ‘가치관의 전환’을 말한다.
변화를 뜻하는 ‘메타’(meta)와 마음을 뜻하는 ‘누스’(nous)의 합성어로 생각과 가치관이 완전히 바뀌는 내면의 변화이다.
죄에 대한 뉘우침에서 시작해 하나님 중심적인 생각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메타노이아는 생각의 영역에서의 방향 전환이다. 슈브와 메타노이아의 공통점은 ‘방향 전환’에 초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는 강력하다. 부흥이 언제나 회개를 통해 시작되는 이유이다.
노아의 시대처럼 일상에 묻혀 하나님의 특별한 때를 잊어버리는 이유는 분명하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일에 관심을 두고, 그 중심에 ‘인간’이 있는 이유는 ‘회개의 신앙’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3) 이분법적 사고
사탄이 그리스도인을 결박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이분법적 사고’이다. 이분법적 사고는 ‘분리의 생각’이다.
나의 일상을 하나님과 연결하지 않는다. (비전, 인생의 목표, 경제관, 가정관, 교육관 등)
연결하더라도 얕은 차원의 연결이다. 얕은 차원의 연결이라고 함은 하나님을 중심에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선순위에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방법대로 다 찾아보고 구한 뒤에 그래도 안 될 때 하나님께 나아온다. 처음부터 하나님께 주도권을 드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군중은 많아도 제자를 찾기 힘들다.
부분적 삶이 아니라 삶 전체의 영역에 하나님의 통치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을 먼저 돌아볼 수 있는 ‘회개’의 신앙이 회복되어야 한다.
회개를 통해 천국이 임한다. 천국이 임했다는 것은 삶의 전 영역에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 분리된 ‘자기’로부터 나올 수 있는 것이 회개이다. 그래서 회개는 중요하다.
3. 회개와 영적 전쟁 - 억압과 묶임과 결박으로부터의 자유
회개가 필요한 진짜 중요한 이유이다.
부흥은 판이 뒤집어지는 것이다. 그 말은 반복되는 결과로부터의 자유이다.
아침에 일어날 때 다른 세상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회개는 영적인 차원이다.
영적인 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탄의 존재에 대한 인식’과 ‘사탄과의 영적 전쟁’이다.
사탄의 존재에 대한 눈을 뜨게 될 때 영적인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다. 혼적인 신앙 생활은 사탄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언제나 ‘자기’에게 집중되어 있다. 보여지는 문제의 근원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사탄의 존재에 대해 인식할 때 성도는 비로소 ‘영적 전쟁’을 할 수 있다.
사탄은 인간의 죄와 연약함을 근거로 인간을 묶고 결박하고 억압한다.
그래서 진정한 의미의 자유는 ‘사냥꾼과 같은 사탄의 올무’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가 중요하다.
회개는 사탄이 일할 수 있는 모든 발판을 제거하기 때문이다.
‘회개와 축사(Deliverance)의 관계’
많은 성도들이 다음과 같은 문제에서 자유를 원한다.
악한 영의 억압, 영적 결박, 저주, 반복되는 죄의 습관.
진정한 회개가 없다면 문제는 다시 돌아온다.
왜냐하면 죄는 사탄에게 법적 권리(legal ground)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죄는 사탄에게 공격할 권리를 준다. 회개는 그 권리를 제거한다. 그 후에야 지속적인 자유가 가능하다.
‘법적 빌미’란 무엇인가?
성경은 사탄을 단순한 공격자가 아니라 고발자(accuser)로 묘사한다.
‘고발자로서의 사탄’ - 우리 형제들을 고발하는 자.
[요한계시록 12: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틈을 노리는 사탄’
[에베소서 4: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여기서 ‘틈’은 헬라어로 ‘topos’(장소, 자리)이다. 즉 죄는 영적 공간을 내어 주는 행위이다.
‘영적 전쟁과 회개’
영적 전쟁의 흐름
죄 발생 - 영적 문 열림 - 고발 지속 - 영향력 확대
‘회개할 때’
죄 인정 - 하나님의 편에 서기 - 고발 근거 제거 - 영적 권위 회복
회개는 법정에서 ‘사탄’의 입장에서 죄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편에 서서 ‘죄’를 바라보는 것이다.
회개는 단순한 감정 처리가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그 죄를 정죄하는 입장으로의 전환이 일어나는 놀라운 순간이다.
중요한 것은 사탄 또한 하나님의 공의 안에서 움직인다. (이 점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공의 안에서 인간을 정죄하고 공격한다. (하나님의 법을 어긴 인간을 정죄하는 것이다)
그런데 회개는 법정에서 하나님의 편에 섬으로써 사탄이 활동할 수 있는 모든 법적 근거를 제거하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는 영적 전쟁에서 가장 강력하게 승리하는 무기이다.
‘스가랴 3장의 대제사장 여호수아 사건’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서 있음 - 사탄이 그의 오른편에서 고발 - 하나님이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새 옷을 입히심.
그래서 회개할 때 인간의 노력으로 얻는 자유와 기쁨이 아닌 하늘의 차원의 기쁨과 자유가 임하게 된다.
부흥은 그래서 언제나 회개와 함께 온다.
회개의 신앙으로 부흥의 문을 열자.
진정한 기쁨과 자유가 우리에게 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