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고 네가 이 큰 광야에 두루 다님을 알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을 너와 함께 하셨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하시기로
1. 광야의 의미
(1) 배경
이 말씀은 모세가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난 40년 광야 생활을 회상하며 설교하는 장면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가데스 바네아(Kadesh-barnea)에서 가나안 진입 전 열두 명의 정탐꾼을 보낸다. 정탐꾼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 위한 상황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고 부인하며 거부하기 위한 판단을 준비했다. 그것이 40년 방황의 이유가 된다.
신명기 2장은 모세가 광야 생활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재해석하는 중요한 설교이다.
(2) 광야
광야는 어려운 곳이다. 물도 없다. 경작할 수도 없다. 인간의 힘으로 생존할 수 없는, 절대적 도움이 필요한 곳이다. 우리의 인생도 광야와 같은 시간이 있다. 내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구간이 있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은 절대적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절대적 돌봄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광야는 중요하다. 하나님이 광야를 허락하시는 이유이다.
‘광야의 시작’
광야의 시작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광야는 엄밀히 말하면 ‘형벌’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불순종으로부터 광야는 시작된다. 아무 이유 없이 시작되는 광야는 없다. 광야의 시작을 인정할 때 광야 훈련을 온전히 마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시작이 없는 끝은 없다. 시작은 끝을 보여 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불순종과 광야’
인류 최초의 범죄는 아담의 불순종으로부터 시작된다. 불순종은 다른 문제가 아니다. 불순종의 결과는 ‘관계의 파괴’이다. 기독교의 핵심은 ‘관계’에 있다. 인간의 시작은 하나님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관계는 인간의 존재 됨을 풀어 가는 아주 중요한 열쇠가 된다. ‘관계’가 전부이다.
‘불순종’은 상대방을 믿을 수 없다는 의심이다. 의심은 관계에 불신의 틈을 낸다. 결국 그 작은 틈이 관계를 끊어 낸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인간의 불신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으로 연결된다. 결과는 인간의 힘을 절대적으로 믿고 살아야 하는, 어떻게 보면 인간이 원했던 모습이다.
하나님과 단절된 순간부터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는다.
바로 그 장소가 ‘광야’이다. 광야는 인간의 힘으로 살아갈 수 없는 곳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광야를 여신다.
2. 광야의 해석
오늘 말씀은 광야에 대한 모세의 해석이다. 40년 가까이 광야를 돌았던 이스라엘에게 광야는 어떤 곳인지를 지도자 모세가 해석한다.
‘광야의 해석’
신앙의 정점은 광야를 해석하는 순간이다. 왜 광야가 시작되었는지, 광야에서 무엇을 경험했는지, 그리고 광야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해석하는 순간이 신앙의 정점이 된다.
광야 학교를 졸업하면 깊어지는 이유이다. 오늘 신명기 2장 7절의 해석을 보자.
특별히 오늘 말씀은 출애굽의 목적인 ‘약속의 땅’ 가나안 입성을 앞에 둔 시점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신명기 2: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고 네가 이 큰 광야에 두루 다님을 알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을 너와 함께 하셨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하시기로
(1) 큰 광야
모세는 큰 광야라고 고백한다. 광야 자체가 힘든 곳인데 큰 광야라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경험한 광야는 큰 광야이다. 끝도 없다. 기약도 없다. 어떤 계획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히브리어로 ‘가돌’이라고 한다. 가돌은 단순히 규모의 ‘큼’을 말하지 않는다. 가돌은 종종 위압적이고 두려운 상황을 표현할 때 사용된다. (생존이 어려운 환경, 위험이 큰 장소, 인간의 한계가 드러나는 공간)
광야는 인간의 한계가 드러나는 위험한 곳이지만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역사도 ‘크다’. 그곳이 광야이다. 광야는 크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곳이다. 여기에 아주 중요한 영적 원리가 있다. 인간의 한계가 드러날수록 하나님의 임재는 더 커진다. 그래서 광야는 성도에게 있어서 중요하다.
두려움과 염려가 큰 곳이 광야이지만 하나님의 은혜 또한 비례해 커지는 곳이 광야이다.
(2) 두루 다닌다
‘두루 다닌다’라는 것은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모습이다.
광야는 정착할 수 없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착할 장소에 대한 갈망이 커지는 곳이다. 광야에서는 안식할 수 없다. 두루 다닐 뿐이다. 그래서 안식에 대한 갈망이 일어나는 곳이 광야이다.
40년 가까이 광야에서 두루 다녔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안식’에 대한 갈망은 소중하다. 오직 주님께만 참 안식이 있다. 우리의 마지막 안식의 장소는 천국이다. 이 땅은 광야와 같은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안식의 본향 천국에 대한 소망은 커져 간다.
이 광야에서 예배가 열린다. “하나님만이 나의 참 만족입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참 안식입니다. 나는 하나님만을 바라봅니다.” 진짜 예배가 열리는 곳이 광야이다. 온전한 갈망이 하늘의 문을 연다.
광야는 하늘 문을 여는 갈망의 열쇠를 받는 곳임을 꼭 기억하라.
(3) 사십 년을 함께하시다 - 부족함이 없으리라
모세의 광야에 대한 절정의 해석이다. “하나님이 광야에서 40년을 함께하셨다. 나는 부족함이 없다.” 할렐루야! 놀라운 고백이다.
밭에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한 사람의 고백이다. 평생을 목마름으로 살았던 우물가의 여인이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님을 만난 후 물 항아리를 버리고 돌아간 기쁨의 고백이다. 수치와 열등감의 인생이었던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난 후 자신의 전부를 팔겠다는 진정한 마음의 고백이다. 예수님을 너무 사랑해서 전 재산과 같은 향유 옥합을 깨어 예수님을 섬겼던 여인의 고백이다.
“내 힘으로 살아갈 수 없는 광야였습니다. 돌이켜 보니 하나님이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셨습니다. 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결핍의 시대’
이 시대는 결핍의 시대이다. 그래서 목마르다. 결핍은 존재적 연약함에서 오는 인간의 상태이다. 그래서 인간은 노력한다. 돈, 명예, 권력으로 결핍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결국 해결할 수 없다. 존재적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다. 존재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은 창조주 한 분 하나님뿐이시다.
‘부족함이 없다’라는 것은 필요한 모든 것이 채워졌다는 고백이다. 시편 23편 1절은 다윗의 고백,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라”의 고백이다.
광야는 부족함이 없게 하시는 만족의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다. 광야를 통과한 사람은 하나님을 떠날 수 없다. 얕은 사랑이 아니다. 깊은 사랑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려움을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은 ‘깊이’이다. 하나님을 만난 인생은 그래서 ‘깊이’가 있다. 깊은 곳에 지혜가 있다. 광야의 길을, 사막의 강을 볼 수 있는 지혜가 있다.
부족함이 없게 하시는 하나님! 광야에서 나는 그 하나님을 만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