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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주일 이해할 수 없는 시간을 지나지만 반드시 기쁨으로 달려갈 시간이 온다 (반응과 방향성)

2026 부활주일.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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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0:1-4] 1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2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3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4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1. 절망

예수의 죽음은 제자들에게 ‘절망’이다. 절망은 소망하는 바가 없어진 상태를 말한다.
절망은 인간에게 가장 힘든 순간이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그들의 삶을 올인했다. 자신의 삶 전부를 예수님께 올인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죽음은 ‘절망’이다.
‘무덤’
무덤은 절망의 상징이다. 무덤은 삶의 끝이다. 무덤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복음이 그래서 중요하다.
오늘 복음은 절망의 문제에 답을 해야 한다.
‘힘을 잃은 복음’
절망을 다루지 못하는 얕은 복음이 문제이다. 복음이 절망을 다루지 못하는 이유는 설교자가 절망을 모르기 때문이다. 고난을 회피하는 교회의 메시지는 절망의 문제를 결코 다루지 못한다.
성경은 인간의 절망의 문제에 대해 직관적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큰 절망은 ‘죽음’이다.
모든 인간이 죽는다는 사실을 피하지 않는다. 죽음의 원인이 죄로 인한 하나님과의 단절이라는 사실을 피하지 않는다. 예수님을 믿는 것 말고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설명하지 않고 선포한다. 그래서 믿어야 한다.

2. 예수님의 빈 무덤

오늘 본문을 보니 예수님의 빈 무덤을 찾아간 막달라 마리아가 있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을 찾은 이유는 절망의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덤으로 가는 마리아의 슬픔을 가늠할 수 있는가?
그런데 무덤에 도착한 마리아는 놀란다.
무덤이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빈 무덤’
빈 무덤은 예수님의 부활을 의미한다. 그런데 제자들은 아직 빈 무덤이 예수님의 부활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체를 도둑 맞은 줄 생각했던 것 같다.
[요한복음 20:9]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요한복음 20:1-4] 1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2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3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4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2절 - 마리아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다른 제자(사도 요한 - 요한을 사랑하는 제자라고 표현)에게 달려간다. 그들에게 사람들이 예수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알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3절, 4절 -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라는 말씀을 보아 베드로와 요한은 그 소식을 듣고 무덤으로 달려갔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아직 인지하지 못했다. 여기에 절망을 돌파하는 아주 중요한 영적 원리가 있다.
(1) 반응
빈 무덤의 소식을 듣고 그들이 반응했다. 예수님의 부활을 알지 못했지만 중요한 것은 빈 무덤에 반응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이다. 믿음은 이해하기 때문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 말씀을 다 이해하고 반응하는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는 말씀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마치 빈 무덤에 반응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닫힌 무덤이 아니라 빈 무덤에 반응해야 한다. 빈 무덤이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시점일 뿐이다. 나중에는 빈 무덤이 예수님의 부활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반응해야 한다.
(2) 달음질하더니
그들은 빈 무덤을 향해 달음질했다. 절망은 정체를 말한다.
정체를 돌파하는 순간은 이해할 수 없어도 빈 무덤을 향해 ‘달음질’하는 때이다. 그 순간 절망으로 오는 정체의 구간이 돌파된다.
믿음의 사람들은 빈 무덤(부활)을 향해 ‘달음질’하는 자들이다. 나중에 빈 무덤이 부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이 왜 걸어갈 수 없었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결국 이해할 수 없는 절망(무덤) 속에서 ‘빈 무덤’에 반응하고 달려간 그들에게 부활은 실재가 된다.
‘벅차오름’
이 벅차오름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해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믿음으로 반응한 행동이 결국 엄청난 기쁨으로 내게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