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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하심 4 인생의 중요한 기로 위에서(경계선의 영적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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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2:5] 그들과 다투지 말라 그들의 땅은 한 발자국도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세일 산을 에서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신명기 2:9]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압을 괴롭히지 말라 그와 싸우지도 말라 그 땅을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롯 자손에게 아르를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신명기 2:19] 암몬 족속에게 가까이 이르거든 그들을 괴롭히지 말고 그들과 다투지도 말라 암몬 족속의 땅은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롯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1. 방향을 돌려 광야로!

[신명기 2:1] 우리가 방향을 돌려 여호와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홍해 길로 광야에 들어가서 여러 날 동안 세일 산을 두루 다녔더니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진격을 향한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이스라엘에게 광야 생활이 시작되었다. 2장 1절의 ‘방향을 돌려’에 주목해야 한다. 약속의 땅을 향한 이스라엘의 방향을 광야로 돌리신 분은 하나님이다. (여러 날- 38년의 광야 생활을 의미한다)
내 인생에 광야가 시작되었다면 하나님이 ‘방향’을 돌리신 것이다. 인생은 ‘방향’에 대한 문제이다.
하나님은 광야로 방향을 돌리셨다. 방향을 돌리는 것이 이스라엘에게 좋기 때문이다. 인간의 눈에 광야는 어려운 바닥의 장소이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광야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장소이다. 그래서 광야는 연단의 장소이다. 연단은 힘들지만 연단의 결과는 강력하다.
방향을 광야로 돌리셨지만 결과는 ‘승리’이다.
‘하나님을 오해하지 마라. 더 깊이 하나님을 신뢰하라’ 광야를 인간의 관점에서만 보면 어렵다. 그런데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다. 광야로 방향을 돌리신 분은 하나님이다. 광야에 이스라엘만 있지 않다. 광야에 하나님도 함께하신다.
[신명기 2: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고 네가 이 큰 광야에 두루 다님을 알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을 너와 함께 하셨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하시기로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광야에서 그들과 함께하셨다. 고난 속에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진짜 리더이시며, 아버지이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온전하고 강건하기를 원하신다. 광야는 하나님의 중심을 볼 수 있는 특별한 장소이다. 나의 온전함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완전하다. 할렐루야!

2. 경계를 정하시는 하나님

신명기 2장에 보면 하나님은 에돔과 모압, 그리고 암몬과 다투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신명기 2:5] 그들과 다투지 말라 그들의 땅은 한 발자국도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세일 산을 에서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신명기 2:9]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압을 괴롭히지 말라 그와 싸우지도 말라 그 땅을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롯 자손에게 아르를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신명기 2:19] 암몬 족속에게 가까이 이르거든 그들을 괴롭히지 말고 그들과 다투지도 말라 암몬 족속의 땅은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롯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그것은 롯 자손들에게 기업으로 주신 땅이다. 이 족속들에게 주신 땅은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주신 땅이요, 또한 하나님이 그들의 적들을 물리치시고 기업으로 주신 땅이다. (신명기 2:1-24)
하나님이 에돔(붉은 - 에서의 별명, 붉은 자, 붉은 팥죽), 모압, 암몬과 다투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그들에게는 약속의 땅 가나안이 아닌 다른 지역을 분깃으로 주셨기 때문이다. 여기에 놀라운 섭리가 있다. 만약에 그들에게 동일한 분깃이 있었다면 다툼이 일어났을 것이다. 다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나님은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의 경계를 정하셨다.
‘경계를 정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경계를 정하신 것처럼 우리 인생의 경계를 정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 때 놀라운 믿음이 생긴다.
경계가 있다는 것은 내가 넘어가야 할 것과 넘지 말아야 할 것을 분명히 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선악과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경계로 두셨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경계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아름다운 경계이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이 정하신 경계 안에 있을 때 완전하다. 가장 아름답다. 인간의 패망은 하나님이 정하신 경계선을 넘어설 때였다. 경계선을 넘은 인간은 가장 불행한 존재가 되었다.
경계를 넘어선 인간은 욕망의 종이 되었다. 욕망은 채워도 끝이 없는 구멍 뚫린 항아리와 같다. 헛수고를 통한 허망함만 있을 뿐이다.
하나님이 정하신 경계 안에 있을 때 인간은 ‘자족’하는 기쁨을 누린다. 자족은 모든 환경을 감사로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다.
‘하나님 안에 있을 때 절로 열매를 맺는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철저하게 ‘경계선’을 지키는 훈련을 시키셨다. 광야에서 경계에 순종하는 훈련을 했기에 그들은 여리고를 무너뜨릴 수 있었고, 아이 성의 실패를 빨리 복구할 수 있었다.
[요한복음 15:5-7]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열매 맺는 삶,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한 삶은 경계선이 되시는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이다. 경계선을 아는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다. 성경은 언제나 정체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정체성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5절 - 예수님은 포도나무, 우리는 가지이다. 가지는 나무가 아니다. 가지가 자신을 나무처럼 여기는 것이 문제이다. 종이 자신을 주인처럼 여기는 것이 문제이다. 죄인이 자신을 의인으로 여기는 것이 문제이다.
자신을 아는 것이 경계선을 아는 것이다. 가지 스스로는 열매를 맺을 수 없다. 7절 –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라고 말씀하신다.
종은 주인과 함께 있을 때 주인의 권세로 능력이 있게 된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을 때 가지에 열매가 열린다.
하나님은 간단하지만 가장 중요한 ‘경계선’을 광야에서 가르치신다. 그 사람이 약속의 땅에서 순종으로 여리고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경계선을 넘는 인간의 죄성’
권위와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자유라는 명목 아래에 아버지도, 지도자도, 권위자도 없다. 남자와 여자의 경계선이 무너지고 있다. 불법과 정의의 경계선이 무너지고 있다.
‘헤스본 왕 시혼, 바산 왕 옥을 치다’
신명기 2장 26절에서 3장 11절까지는 반대로 하나님이 붙이신 헤스본 왕 시혼, 바산 왕 옥을 치게 하신다. 하나님이 정하신 경계선 안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족속의 모든 것을 취하는 것을 허락하신다.
하나님의 경계선을 알고 지키는 훈련을 받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돌파와 결과는 엄청나다. 하나님의 사역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의 경영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의 주권을 배워야 한다.

3. 말씀이 경계선이다

우리가 오늘 신명기 말씀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은 내 인생의 경계선을 설계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인생의 경계선은 무엇인가?
명확하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의 경계선이 되어야 한다.
말씀이 내 안에 온전한 경계선이 될 때 우리는 상상도 하지 못할 승리를 경험할 수 있다. 기적을 경험하며 돌파와 확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신명기는 중요하다. 가나안 정복 전쟁을 하게 될 약속의 세대에게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복이라고 강조한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것이 저주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오늘 신명기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하늘 문을 여는 비밀의 열쇠를 우리에게 주기를 원하신다. 모세는 그 열쇠의 비밀을 말씀이라고 강조한다.
‘쉐마, 어게인’
그래서 그는 ‘쉐마, 어게인’을 외친다. 다시 들어라. 다시 들어라. 다시 들어야 산다. 할렐루야! 다른 소리를 차단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 사람에게 약속의 땅은 현실이 된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