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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하심 10 살아야 할 사람, 살려야 할 사람, 살 수 있는 사람(도피성의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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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4:41-43] 41 그 때에 모세가 요단 이쪽 해 돋는 쪽에서 세 성읍을 구별하였으니 42 이는 과거에 원한이 없이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 곳으로 도피하게 하기 위함이며 그 중 한 성읍으로 도피한 자가 그의 생명을 보전하게 하기 위함이라 43 하나는 광야 평원에 있는 베셀이라 르우벤 지파를 위한 것이요 하나는 길르앗 라못이라 갓 지파를 위한 것이요 하나는 바산 골란이라 므낫세 지파를 위한 것이었더라

1. 사람은?

‘사람이 누구입니까?’라는 시편 8편의 질문은 앞으로 미래 사회에 가장 중요한 질문이 될 것이다. 사람의 가치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가치는 역할을 통해 알 수 있다. 사람의 가치가 성경적으로 왜 중요한가?
[창세기 1:27-28]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말씀을 보면 사람을 지으신 이유가 역할에 나타나 있다. 사람은 복의 존재이다. 그 복은 이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게 되는 것이다. 오직 이 일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다.
그러나 미래는 사람의 역할이 불투명하다. (기술의 발전이 가져오는 미래)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 자신을 찾고자 하는 인간’
인간의 첫 번째 범죄는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 자신을 찾고자 하는 노력으로부터 출발한다. (바벨탑 등) 선악과의 범죄를 통해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선악과는 어떻게 보면 사람에게 주어진 첫 번째 ‘법’과도 같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 것에 대한 ‘금지법’을 주신 이유는 인간의 자유를 묶기 위함이 아니었다.
‘사람은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는 존재’
신명기 말씀을 통해 모세가 하나님의 법과 규례를 듣고 준행하라고 외치는 이유는 무엇인가?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스라엘은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려 주기를 원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의 법을 지키겠는가? 하나님의 법을 지키라는 모세의 외침은 하나님을 더 사랑하라는 외침이다.
‘예수님이 두 번째 아담으로 오신 이유’
예수님이 두 번째 아담으로 오신 이유도 명확하다.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 살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려 주신 것이다. 예수님의 구원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인간의 공로가 1%도 가미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전적으로 아담을 창조하셨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전적으로 인간을 구원하셨다. 인간의 가치는 하나님과 연결되었을 때 소중하다.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다.

2. 도피성

오늘 본문을 보면 ‘도피성’이 나온다. 하나님이 요단 강 동편과 서편에 각각 세 개씩 여섯 개의 도피성을 만드신 이유가 있다.
[여호수아 20:2-9 표준새번역] 2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일러라. ‘내가 모세를 시켜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을 지정하여, 3 고의가 아니라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사람을 그 곳으로 피하게 하여라. 그 곳은 죽은 사람에 대한 복수를 하려는 사람을 피하는 곳이 될 것이다. 4 살인자는 이 성읍들 가운데 한 곳으로 가서, 그 성문 어귀에 서서, 그 성의 장로들에게 자신이 저지른 사고를 설명하여야 한다. 그러면 그들은 그를 성 안으로 받아들이고, 그가 있을 곳을 마련해 주어, 함께 살도록 해야 한다. 5 죽은 사람에 대한 복수를 하려는 사람이 뒤쫓아온다 할지라도, 그 사람의 손에 살인자를 넘겨 주어서는 안 된다. 그가 전부터 그의 이웃을 미워한 것이 아니고, 실수로 그를 죽였기 때문이다. 6 그 살인자는 그 성읍에 머물러 살다가, 회중 앞에 서서 재판을 받은 다음, 그 당시의 대제사장이 죽은 뒤에야 자기의 성읍, 곧 자기가 도망 나왔던 성읍에 있는 자기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7 그래서 그들은 요단 강 서쪽 지역에서는 납달리 산간지방에 있는 갈릴리의 게데스와 에브라임 산간지방의 세겜과 유다 산간지방의 기럇아르바, 곧 헤브론을 도피성으로 구별하여 지정하였다. 8 또 여리고 동쪽, 요단 강 동쪽 지역에서는 르우벤 지파의 평지 광야에 있는 베셀과 갓 지파의 길르앗 라못과 므낫세 지파의 바산 골란을 도피성으로 구별하여 지정하였다. 9 이 성읍들이,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이나 그들 가운데 살고 있는 외국인 가운데서, 누구든지 실수로 사람을 죽였을 때에, 그 곳으로 피하여 회중 앞에 설 때까지, 죽은 사람에 대한 복수를 하려는 사람의 손에 죽지 않도록 하려고, 구별하여 지정한 도피성이다.
신명기 4장 41-43절의 도피성 제도가 여호수아 20장에서 구체적으로 설명된다.
도피성의 개념은 매우 놀랍다.
하나님이 도피성을 만드신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율법의 내용 - 율법을 지키는 자는 살고, 지키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는다. / 율법의 정신 -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정신은 사람을 살리는 데 있다.
예수님이 오셔서 율법을 사랑으로 완성하신다. 이는 율법의 형식이 아니라 율법의 정신을 알려 주신 것이다.
(2)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없는 인간은 연약하다
하나님은 율법을 실수로 범한 (살인한) 사람들에 대해 도피성에서 보호하시고 회복할 기회를 주신다. 도피성은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 준다. 인간이 연약하기에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다는 역설을 알아야 한다.
‘실수할 수 있는 인간’
[민수기 35:22-25 표준새번역] 22 그러나 아무런 원한도 없이 사람을 밀치거나, 몰래 숨어 있다가 무엇을 던지거나 한 것이 아니고, 23 잘못 보고 굴린 돌이 사람에게 맞아 그를 죽게 하였으면, 그 가해자가 피해자의 원수가 아니고, 더욱이 그를 해칠 의사가 전혀 없었던 것이므로, 24 회중은 이러한 규례에 따라서, 그 가해자와 피를 보복할 친족 사이를 판단해야 한다. 25 회중은 그 살인 혐의를 받은 사람이 피를 보복할 피해자의 친족에게서 보복을 당하지 않도록, 그 살인 혐의자를 그가 도피한 도피성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신명기 19:5 표준새번역] 어떤 사람이 이웃과 함께 나무하러 숲 속으로 들어가서 나무를 찍다가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나가 친구를 쳐서, 그가 죽었을 경우에, 죽인 그 사람이 그 구별된 세 성읍 가운데 한 곳으로 피신하면, 살 수가 있다.
(3) 도피성은 하나님이 생명의 주관자시라는 사실을 알게 한다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사람을 죽일 수 없게 하셨다. 이를 통해 하나님이 한 사람의 생명을 얼마나 소중히 보호하시는지를 알아야 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사람의 발을 씻으신 이유 - 하나님은 사람을 소중히 여기신다.
(4) 피의 보복을 금지
3절 - 도피성은 ‘~복수를 하려는 사람을 피하는 곳이 될 것이다’. 5절 - 죽은 사람에 대한 복수를 하려는 사람이 뒤쫓아온다 할지라도, 그 사람의 손에 살인자를 넘겨 주어서는 안 된다. 그가 전부터 그의 이웃을 미워한 것이 아니고, 실수로 그를 죽였기 때문이다. 9절 -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이나 그들 가운데 살고 있는 외국인 가운데서, 누구든지 실수로 사람을 죽였을 때에, 그 곳으로 피하여 회중 앞에 설 때까지, 죽은 사람에 대한 복수를 하려는 사람의 손에 죽지 않도록 하려고, 구별하여 지정한 도피성
보복은 또 다른 보복을 낳는다. 결국 모두가 불행해진다. 하나님의 법은 보복을 위한 법이 아니다. 모두를 살게 하는 법이다. 하나님의 법은 ‘정의를 부정하지 않는다’. 공평하게 재판을 받게 한다. 그러나 분노가 정의를 삼키지 못하게 하신다. 하나님만이 정의로우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사는 것이 현실적으로 중요하다.

3. 하나님이 도피성이시다

성경 전체에 하나님은 산성, 피난처, 요새로 묘사된다. 왜냐하면 죄인 된 인간은 본질적으로 불안, 죄책감, 두려움이 가득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연약하고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셨다. 복음의 본질이다. 우리가 강하고 완전하다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지 않으셨다.
인간이 부족하고 연약하기에 예수님이 오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족하고 연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친구가 되셨다.
오늘 교회는 도피성이 되어야 한다. 부족하고 연약하기 때문에 올 수 있어야 한다. 그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는 곳, 보호받는 곳, 치유받는 곳, 용사로 다시 일어서는 곳이 교회이다.
‘질문’
나는 정말 은혜 안에 사는가? 아니면 정죄 속에 사는가? 나는 남에게 은혜를 주는 사람인가? 나는 어디에서 안정감을 느끼는가? 우리 공동체에는 회복 시스템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