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4:6-8]
6 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7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8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1. ‘큰 나라’의 의미
모세는 신명기 4장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출애굽 2세대에게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는 백성이다. 이는 다른 이방 민족과 구별되는 가장 중요한 기준점이 된다.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한다는 것은 종교적 성찰로부터 오는 자아 성찰과 개발의 개념이 아니다.
하나님의 법을 지킨다는 것은 이 땅을 다스리고 영향력 있게 하는 땅의 축복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결과를 모세는 ‘큰 나라’의 개념으로 정리한다.
6~8절의 구절에서 반복되는 ‘큰 나라’에서 ‘큰’의 뜻을 알아야 한다.
‘큰’(가돌)
가돌은 단순히 사이즈가 크다는 양적인 개념이 아니다.
가돌은 ‘위대하다’, ‘존귀하다’, ‘강하다’, ‘중요하다’라는 의미이다. 질적 위대함을 말한다.
‘이 큰 나라’라는 뜻은 ‘이 위대한 나라’라는 뜻이다.
영토가 크고, 인구가 많은 양적 규모가 아니라 질적 위대함의 뜻을 지닌다.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준행하는 것이 타 종교에서 말하는 종교적 자아 성찰의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 깊고 큰 의미가 있다. 다른 차원의 삶, 세상과 다른 위대한 존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말하고 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불순종하는 본질적 이유 - 세계관 때문
세계관은 무엇인가? 어떤 일을 바라보는 ‘관점’을 말한다.
사람은 어떤 일을 바라볼 때 그냥 보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의 틀에서 분석하고 판단한다.
모세가 신명기에서 반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준행하라고 한 것은 다른 의미가 아니다.
가나안 일곱 족속을 통해 이미 형성되어 있는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민족의 세계관의 영향력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오늘 나의 생각이 세상의 세계관이 아닌지 점검해야 한다.
경제관, 교육관, 정치관, 문화관이 성경적 세계관인지 점검해야 한다.
‘성경적 세계관’이란?
간단하다. 성경이 바라보는 관점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어떤 일에 대해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바이다.
오늘 나의 삶 가운데 있는 일들의 답을 성경에서 찾고 있는가?
성경이 뭐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생각하실까?’에 대한 질문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잦은 접촉’
세계관의 형성은 ‘접촉’으로부터 온다.
나는 무엇과 접촉하고 있는가? 나는 어떤 사람과 접촉하고 있는가?
보고 듣고 만나는 모든 것이 다 접촉이다.
우리의 삶은 ‘접촉’으로 채워진다.
‘나는 자신 있다. 나는 나 자신을 지킬 수 있으며 통제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
아무리 자신이 있어도 접촉이 잦아지면 결국 영향을 받는다.
중독의 수위는 처음에는 약하다. 그런데 자주 접촉하다 보면 강한 영향력을 받게 되는 것이다.
중독의 처방전은 간단하다. ‘강한 영향력으로부터 격리’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세는 말씀을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묵상하라고 말한다.
날마다 말씀과 접촉하라고 말하고 있다.
자신 있는 사람은 없다. 반성경적 관계, 생각, 이념, 문화와의 접촉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
내가 잘못된 관계와 영향력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다면 과감히 단절해야 한다.
내가 선한 영향력을 주는 단계까지 성장하는 것이 우선순위이다.
3. ‘큰 나라’ - 질적 위대함의 요소
(1) 지혜와 지식
[신명기 4:6]
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6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준행할 때 세상을 향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은 ‘지혜와 지식’이다. 모세는 ‘큰 나라’의 사람은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라고 말한다.
‘지혜’(호크마)
[잠언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으로부터 온다.
호크마는 ‘삶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운영하는 능력’을 말한다.
사람들의 질문이 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가?’
성경은 분명히 말씀한다. ‘호크마-지혜’로 삶을 운영하는 것이라고 말씀한다.
성경에서 호크마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기술자의 숙련됨’, ‘재판장의 판단력’, ‘왕의 통치력’, ‘인생을 바르게 사는 영적 분별력’이 호크마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은 추상적으로, 관념적으로, 철학적으로 사는 삶이 아니다.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삶이다.
숙련된 기술자에게 있는 운용 능력을 생각해 보라. 재판장의 판단을 통한 사건에 대한 운용 능력, 왕이 나라와 백성을 통치하는 운용 능력을 생각해 보라. 지혜의 왕 아래에 있는 백성의 윤택함을 생각해 보라.
인생을 바르게 살게 하는 영적 분별을 통한 삶의 운용을 생각해 보라.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는 호크마는 세상 사람들에게 감탄을 가져오며 영향력이 된다.
‘지식’(비나)
한국어로는 지식으로 번역되어 있지만 사실 본뜻은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지식은 ‘통찰력’, ‘분별력’, ‘이해력’에 가깝다.
통찰력과 분별력(명철로 이해하기도 한다)의 뜻은 ‘사이’를 이해하는 능력이다.
하나의 사물을 단순하게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다각적인 관점에서 깊이 바라보는 능력이다.
사물 자체만 보는 것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사물이 있는 ‘공간’에 대한 깊은 이해이다.
지식을 뜻하는 ‘비나’라는 단어의 어근은 ‘빈’이다. ‘빈’은 ‘깊이 생각하다’라는 뜻이다. (비나-명철, 지식으로 번역)
이 단어는 단순히 어떤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과 진리에 대한 깊은 숙고를 통해 분별해 새로운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을 가리킨다.
‘두 종류의 깨달음’
야다 - 경험을 통해 아는 깨달음을 말한다. (하나님, 환경, 사건을 경험할 때 오는 지식을 명철이라고 한다. - 사리를 분별)
비나 - 경험적인 방법이 아니라 주의 깊은 관찰이나 숙고를 통해 서로의 차이를 발견하고, 참과 거짓을 분별해 새로운 사실을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너무나 놀라운 말씀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준행하는 백성을 향해 ‘큰 나라’라고 말한다. 위대한 나라의 백성은 지혜와 지식으로 가득하다.
신명기 말씀을 통해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력이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고대 근동에서의 큰 나라의 조건’
당시 고대 근동 세계에서 ‘큰 나라’는 군사력, 경제력, 성벽, 왕의 권세로 평가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신명기 4장에서 완전히 다른 기준을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의 위대함은 강한 병거 때문도 아니고, 많은 인구 때문도 아니며, 화려한 문명 때문도 아니다.
진짜 위대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고, 그 말씀대로 살며, 삶 속에서 하나님의 질서를 드러내는 것이다.
(2)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들
[신명기 4:7]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왜 이스라엘이 ‘큰 나라’인가? 7절에 보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가까이하신다’. 창조주 하나님과 가까운 나라가 ‘큰 나라’이다. ‘큰 사람’이다. 놀라운 말씀이다.
세상의 관점과 완전히 다르다. 하나님께 가까이하고 있다는 증거는 ‘기도’이다.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은 하나님께 응답받는 민족이라는 것이다.
‘기도’가 힘든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없기 때문에 나의 열심에 근거한 종교적 기도가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기도의 자리를 사모할 수 있는가? 기쁨이 없는 기도가 어떻게 지속적인 기도가 될 수 있는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음은 가장 큰 특권이다.
기도의 자리는 하나님께 응답받는 자리이고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자리이다.
(3) 공의로운 법
[신명기 4:8]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고대 국가들의 법은 대개 왕의 권력 유지, 계급 보호, 강자의 이익을 위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하나님 율법은 달랐다.
하나님의 율법은 고아, 과부, 나그네, 가난한 자를 위한 법이다. 억울한 자들이 없게 하는 것이 공의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큰 나라’의 의미를 강조한다.
다른 차원의 나라이다. 다른 차원의 사람들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를 듣고 준행한다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4. 적용
(1) 하나님께 붙어 있으라
[신명기 4:4]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느니라
다른 것에 기웃거리지 마라.
마음을 정했으면 하나님께 붙어 있으라. 결단하면 자유로워진다.
(2) 가르치라. 배우라
[신명기 4:10]
네가 호렙 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섰던 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나에게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주어 그들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를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리라 하시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배우라고 말씀한다.
놀라운 말씀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 아니다.
배워야 한다. 그리고 자녀에게 가르치라고 말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