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5:11-12]
11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내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는 줄로 인정하지 아니하리라
12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1. 십계명을 주신 이유
십계명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신앙의 근간을 이룬다.
하나님의 계명이 있다는 것은 신앙에 있어서 분명한 구조물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계명이 있다.
[신명기 5:10]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계명을 지킨다.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이며, 특권이다.
2. 세상의 영향을 받지 않는 믿음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을 강조한 이유는 분명하다.
그들이 정착해 살아갈 가나안 땅에는 세상 왕이 다스리는 이방 문화의 강력한 영향력이 있기 때문이다.
구조가 약한 집은 외부의 영향에 의해 흔들린다.
모세는 십계명을 강조해 그들의 삶의 우선순위가 흔들리지 않게 했다.
계명은 우선순위의 문제이다. 우선순위는 신앙 구조의 견고함을 측량하는 중요한 척도이다.
우선순위가 흔들리면 결국 다 흔들린다. 우선순위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문제와 직결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의 우선순위(비교 불가의 유일하신 분이 하나님)라는 것은 삶에 있어서 추상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모세는 십계명을 강조한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문화를 이기는 실제적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3. 3계명
[신명기 5:11]
11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내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는 줄로 인정하지 아니하리라
11 너희는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아라. 나 여호와는 내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는 자를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현대인의 성경)
3계명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이다. 이를 현대인의 성경 번역으로 보면 ‘여호와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아라’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망령되이 (함부로) = ‘헛되게’, ‘가치 없게’, ‘거짓되게’라는 뜻이다.
3계명은 속뜻은 ‘하나님의 이름을 지닌 백성답게 살아라’이다.
‘가벼운 문화’
3계명은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에 대한 권고이다. ‘망령되이’의 원뜻은 ‘헛되게’, ‘가치 없게’이다.
가볍게 살지 말라는 것이다. 없어질 휘발성 있는 삶을 살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은 고귀하다. 이름은 정체성을 말한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소중한 것이다.
고귀한 하나님의 이름을 가볍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늘 현대인의 신앙 가운데 있는 가장 큰 문제는 ‘가벼움’이다.
바람 불면 날아갈 깃털과 같다. 가치 없게 여길 때,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때 가볍게 여긴다.
진중함을 싫어하는 문화이다. 모든 것이 너무나 가볍다. 약속이 가벼워지는 시대이다.
상황과 환경에 너무나 쉽게 흔들린다. 왜? 가볍기 때문이다.
‘메시지의 가벼움’
모든 메시지가 자신의 문제에만 집중되어 있다.
시대가 빠진 메시지는 가볍다. 사명과 소명이 빠진 메시지는 가볍다.
제자들의 삶이 진중하고 비중이 있었던 이유는 그들에게 예수님의 다시 오심에 대한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목숨 걸고 복음을 전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인내함으로 돌파했다.
‘가볍기 때문에 고난을 돌파할 힘이 없다’
예수님의 삶은 가볍지 않았다. 예수님은 언제나 문제 있고, 어렵고, 삶의 무게에 눌려 있고, 병든 자들과 함께하셨다.
그들의 문제를 짊어지시고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셨다. 우리의 문제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진중함은 십자가이다.
죄인 된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삶은 무게가 있다. 그 무게감이 우리를 예수님께로 가게 한다.
고난 속에 만난 예수님은 무게감이 있는 분이시다.
무게감의 신앙이 필요한 때이다. 하나님의 귀한 이름에 대한 무게감이 있는 신앙이 필요하다.
사명과 소명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일어나야 한다.
4. 4계명
[신명기 5:12]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이다. 안식은 ‘쉼’이다. 진정한 쉼은 ‘멈춤’에서 온다.
창조주 하나님의 루틴의 핵심은 ‘안식’이다. 안식은 선택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안식하셨다. 그러므로 안식은 명령이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반드시 안식해야 한다.
[창세기 2:2-3]
2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3절을 보라. 안식은 단순한 쉼이 아니다. 안식은 ‘복된 날’이다. 이 말은 안식해야 하늘의 복을 누릴 수 있다는 의미이다.
안식이 없는 삶은 ‘하늘의 복’이 무엇인지를 알지도 못하고 받지도 못한다.
‘세상의 시간을 이길 수 있는 비밀 - 안식’
[신명기 5:14-15]
14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십계명에서 안식에 대한 요구는 실제적이며 강력하다.
14절 - 너나 네 아들, 딸, 남종, 여종, 소, 나귀, 모든 가축, 손님 누구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라. 여기서 주목할 것은 ‘너 같이’ 안식하게 하라는 것이다. 놀라운 말씀이다.
나의 영향력이 있는 모든 영역에 진정한 안식이 있으려면 ‘내가 먼저 안식해야 한다’.
‘안식이 없는 삶은 소모의 삶’이다
오늘 현대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시간’에 대한 문제이다. 바쁘다. 너무 바쁘다. 안식이 없는 바쁜 삶은 결국 소모된다.
소모된 삶은 쫓김의 삶이다. 피곤한 삶이다. 지치는 삶이다. 세상의 시간은 결국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간을 소모한다.
죽음의 문턱까지 인간을 압박하고 몰아간다.
15절에 보니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십계명으로 주신 이유가 분명하다.
[신명기 5: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기억하라”라고 말씀하신다.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삶을 하나님의 강한 손과 편 팔로 인도하신 출애굽의 사건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신다.
애굽의 종 = 쉼이 없는 노예의 삶이다. 종과 주인의 가장 큰 차이는 ‘안식’에 있다. 주인은 주도권을 가진 자들이다. 결정의 주도권이 있기 때문에 이들은 안식의 시간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종은 다르다. 주도권이 없기 때문에 쉼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기억하라고 말씀하신다. 안식은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종이 아니다. 노예가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삶은 주도권이 회복된 삶이다. 세상이 요구하는 규격에 맞춘 삶이 아니다.
세상의 시간과 다른 하나님의 시간을 사는 자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쫓기지 않는다. 이들이 시간을 주도한다.
카이로스의 시간을 살아가기 때문에 세상의 시간이 이들을 따라온다. 놀라운 순간이다.
안식이 있는 삶은 이익을 따라 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을 좇아 살지 않는다. 안목의 정욕을 따라 살지 않는다.
가치를 따라 산다. 보이지 않는 것을 따라 산다.
안식의 삶은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삶이다. 인간이 주도하는 삶은 소모되고 쫓기는 삶이다.
15절을 기억하라. ‘애굽의 종 되었던 그들을 하나님이 인도하셨다’. 안식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는 삶이다.
안식일을 우선으로 확보하라.
하나님께서 시간을 확보하신다. 하나님께서 시간을 채우신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능력의 삶이다.
그 비밀이 안식이다.
무너진 안식일을 세우라.
바로 그때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는 때이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