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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약 11 왜곡된 생각과 감정을 치유하라(거절감의 원인과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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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4: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1. 성경적 사고

혼의 영역(생각과 감정)을 새롭게 경작하는 일이 왜 중요한지를 연속된 말씀을 통해 강조하고 있다. 영으로 혼의 생각과 감정을 새롭게 경작하여 정렬하지 않는다. 복잡하다. 혼돈스럽다.
‘거듭남의 증거 - 성경적 사고’
[로마서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Romans 12:2 NIV] Do not conform to the pattern of this world, but be transformed by the renewing of your mind. Then you will be able to test and approve what God's will is—his good, pleasing and perfect will.
내가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증거는 위 말씀처럼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지 않는 사람’(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Do not conform to the pattern of this world)이 되었다는 것이다. 세상의 것과 하나님의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기 위해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but be transformed by the renewing of your mind), 즉 새로운 사고방식이 장착되었다는 것이다. 이전과 완전히 다른, 새롭게 성경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정의와 개념 정리’
그 사람의 사고방식 형식은 어떤 일에 대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같은 일이나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해석이 다르다. 판단도 다르다. 어떤 일에 대한 개념은 그 일에 대해 어떻게 ‘정의’를 내리느냐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뜻으로 개념을 정리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그래서 성경을 주셨다. 성경은 모든 일의 기준이 된다. 성경적 사고방식을 가졌다는 것은 ‘성경이 그 일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느냐’에 대한 것이다. 내 생각이 아니다. 성경이 어떻게 정의하고 있느냐에 대한 것이다. 정의는 ‘A는 B이다’라는 명확성과 선명성을 동반한다. 성경으로 정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디모데후서 3:15-17]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영의 생각과 혼의 생각의 분별은 좌우에 양날이 선 검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가능하다.’
15절 -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게 해야 한다. 이것이 성경적 교육관이다. 성경은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지혜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한다. 구원의 완성에 이르도록 한다는 것이다. 성경은 인간이 어떻게 해야 하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안내자가 된다.
16절 -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를 분명하게 한다. 성경적인 사고방식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어렸을 적부터 교육하라고 강조한다. (내 생각이 아닌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17절 - 이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모든 선한 일을 온전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된다. 그래서 이 사람은 항상 성경적으로 개념 정리를 하고 ‘정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2. 자기 내면을 성경적으로 경작하라

세상에서 승리하는 사람이 되려면 ‘혼의 영역’(생각과 감정)을 성경적으로 기경하고 경작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질 때 온전히 받아들이는 옥토 밭이 되어야 한다.
교회에 오래 다녀도 왜 열매가 없는가? 그 이유는 분명하다. 씨앗인 하나님의 말씀에 문제가 있는가? 성경을 보라. 씨앗에는 문제가 없다.
결국 열매의 원리는 씨앗이 심겨진 밭에 있다.
생각과 감정을 성경적으로 경작하지 않으면 결국 자기 생각과 감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왜곡한다. 신앙 성장에 가장 큰 방해는 환경과 상황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는 ‘받아들임’에 대한 문제이다. ‘받아들임’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가장 중요한 원리인 ‘순종’과 연결되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3. 상처 입은 생각과 감정, ‘거절감’

‘받아들임’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그 반대 개념인 ‘거절감’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한다.
현대인들 가운데 가장 큰 왜곡된 감정은 ‘거절감’이다.
[잠언 18:14] 사람의 심령은 그의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 [잠언 18:14 새번역] 사람이 정신으로 병을 이길 수 있다지만, 그 정신이 꺾인다면, 누가 그를 일으킬 수 있겠느냐? [Proverbs 18:14 NIV] The human spirit can endure in sickness, but a crushed spirit who can bear?
주목할 말씀이다. 사람의 심령(정신)은 병중에도 참고 견디며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런데 심령이 상하면(정신이 꺾인다면)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영어로 보면 ‘짓눌린 영’(a crushed spirit)이라고 표현한다. 짓눌린 영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상처 입은 내면의 감정의 파괴력이 크다는 것이다.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의식과 상처’
짓눌린 상처처럼 깊은 상처는 치유가 좀처럼 쉽지 않다. 짓눌릴 만큼 깊고 아프기 때문이다. 이런 상처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기억보다 더 깊은 곳에 있다.
어떤 일을 자각하는 ‘의식’은 중요하다. 그러나 짓눌린 깊은 상처는 그 경험을 감당하지 못해 ‘의식’이 기억에서 지워 버린다. 의식을 통해 자각되지 않았을 뿐이지 내면 깊은 곳에 짓눌린 상처 입은 감정은 여전히 존재한다.
오늘 말씀을 보라. ‘상처 입은 영을 누가 감당할 수 있겠는가?’ 이 말은 그 상처가 결국 나를 ‘지치게 하고, 의욕을 잃게 하고, 기쁨을 빼앗아 간다’라는 것이다.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서 생명력을 소진시키는 일을 한다.
‘거절감’
목회를 하며 현대인들 안에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짓눌린 감정의 상처가 ‘거절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대면하며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요한 영적 문제이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고, 그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온전하고 충만하고 풍성한 사랑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절감은 짓눌린 상처이다. 거절감은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아주 강력한 왜곡된 감정이다. 거절감은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감정’의 상태이다. 아무도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는 느낌, 소외되었다는 느낌, 자신이 가치 없다는 느낌, 어디에도 진정으로 속하지 못한다는 느낌, 혹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밖에서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다.
거절감은 아무도 자신을 원하지 않고, 자신이 사랑받지 못한다는 느낌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마치 자신은 늘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다른 사람들은 안으로 들어가는데 어찌 된 일인지 자신은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이 주는 풍성함은 나와 상관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방관자, 구경꾼’과 같은 마음이다.

4. 거절감의 형성

‘거절감’은 결국 왜곡된 감정의 상처로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이기 때문에 존재적인 영역의 문제이다.
(1) 태중에서의 거절감
거절감은 태어나기 전부터 형성될 수 있다. 아기가 어머니의 태중에 있지만 어머니가 그 아기를 원하지 않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아기의 어머니는 임신 중에 아기를 향해 부정적이고 적대적인 태도를 품는다. 그때 아기는 자신이 환영 받지 못한다는 거절감의 왜곡된 정서를 안고 태어난다.
(2) 사랑을 받지 못하고 성장
모든 성장에는 때가 있다. 일방적으로 사랑하고 보호해 주어야 할 때가 있다. (성장의 때에 필요하다) 충분히 물을 공급받지 못하고 자라난 식물은 건강할 수 없다.
사랑은 표현해 주어야 한다. 아이는 표현되지 않는 사랑을 이해할 수 없다. 사랑과 애정이 자신에게 표현되는 것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은 부모에게 거절당했다고 느낀다.
(3) 거절감의 결과
거절감의 결과로 부정적인 감정과 태도가 연이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거절감에서 외로움이 생긴다’ - ‘외로움에서 비참함이 생긴다’ - ‘비참함에서 자기 연민이 생긴다’ - ‘자기 연민에서 우울감이 생긴다’ ‘우울감에서 절망, 소망 없음’ - ‘절망이나 소망 없음이 계속 이어지면 결국 죽음을 바라거나 자살을 생각하는 상태’에 이른다.
결국 거절감이 주는 마지막 해결은 죽음이다. 그래서 거절감은 영적인 문제이다. 거절감이 있는 사람은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생각으로 결론을 지으려고 한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어, 더는 살고 싶지 않아.’ ‘이제 소망은 없어. 내가 모든 것을 끝내 버리겠어.’
거절감은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왜곡된 정서이다. 그래서 영적이다. 배후에 강력한 사탄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치유되어야 할 짓눌린 상처이다.

5. 사랑

(1) 거절당하신 예수님.
성경은 거절감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가? 당연한 질문이다. 성경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원론적인 이야기이지만 예수님이 거절감의 해결이 되신다.
‘죄인의 정서’
인간의 범죄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은 단절되었다. 죄는 인간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차단되었고, 거절당했다고 느끼게 한다. 죄인인 인간은 죄의 해결 없이 하나님께 갈 수 없다.
하나님께 가지 못하는 인간 - 율법이 주는 거절감. 하나님께 가려면 인간은 죄가 없어야 한다. 죄가 없으려면 율법의 모든 요구에 완전히 응당해야 한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 그래서 율법은 인간을 거절한다. 율법 앞에서의 인간은 죄책감, 수치심, 거절감을 느낀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셨다. 예수님이 십자가 형벌로 율법의 모든 요구에 응답하셨다. 그 방법은 예수님이 거절당하시는 것이다.
[이사야 53:3-5]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으셨다. 질고를 지셨다. 채찍에 맞으셨다. 사람에게 거절당하시고, 그리고 하나님께 거절당하셨다. 가장 아픈 상처이다. 사랑하는 존재로부터 거절당하신 예수님의 아픔을 생각해 보라.
십자가는 예수님이 사람과 하나님으로부터 철저하게 거절당하신 장소이다. 예수님이 거절당하심으로 우리는 받아들여질 수 있게 되었다. 그 상징이 바로 휘장이 찢어진 사건이다. 예수님의 거절은 우리가 하나님께 다시 받아들여진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거절감의 치유는 예수님이다. 복음이다. 십자가의 능력이다. 복음은 나를 받아들여진 존재로 회복했다. 명심해야 한다.
(2) 사랑받은 존재
[요한일서 4: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거절감은 결국 ‘사랑받지 못함’으로부터 온다. 사랑의 놀라운 영적 원리가 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다시 말하면 사랑받은 경험이 없는 사람은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사랑할 수 없다.
내 안에 사랑이 깨어난 것은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통해) 놀라운 말씀이다.
그 사랑이 내 안에 있는 사랑을 활성화시켰다. 그리고 나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랑은 ‘받아들임’이다. 예수님이 나를 받아들이셨기 때문이다. 나도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 순간 거절감은 없어진다.
그래서 사랑이 중요하다. 사랑은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다. 사랑은 기다리지 않고 내가 먼저 가는 것이다. 사랑은 먼저 표현하는 것이다.
그 순간 거절감은 치유된다. 예수님을 통해 보이신 하나님의 사랑은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다 기록할 수 없는 사랑이다. 그 놀라운 사랑이 ‘거절감’을 치유한다.
이웃을 끝까지 사랑해야 한다. 포기하지 말고 사랑해야 한다. 예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 예수님이 사랑으로 우리의 짓눌린 마음의 감정을 치유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