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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약 16 정서적 불안의 원인과 해결(신뢰함에서 오는 안정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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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30:6]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1. 안정감 VS 불안함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감’이다. 안정감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대표적 사건이 풍랑 속의 제자들이다. 풍랑이라는 외적 어려움 앞에 제자들의 정서는 안정감을 잃는다. 안정감이 흔들리자 불안, 두려움, 걱정, 공포라는 정서가 그들을 사로잡는다.
반면 예수님은 풍랑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으셨다. 흔들리는 풍랑 속에서 주무시고 계실 정도로 평안하셨다.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제자들이 정서는 불안하다. 예수님의 정서는 평안으로 안정감이 있다.
여기에 중요한 영적 원리가 있다.
[마가복음 4: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불안과 안정감의 차이는 ‘믿음’에 있다. 제자들이 안정감이 없었던 이유는 절대자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예수님의 안정감은 풍랑을 잠잠하게 하실 수 있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절대적 신뢰에 있다.
정서적 불안이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이유가 있다. 평상시에는 알 수 없다. 외부적 압박이나 어려움이 있을 때 불안함은 드러난다.
현대인들의 정서는 ‘롤러코스터’ 같다. 좋은 것처럼 보이는데 갑자기 롤러코스터처럼 곤두박질치기 시작한다.
원인은 ‘정서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안정감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현대인들의 정서가 불안한 이유는 ‘신뢰’의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고독하다. 외롭다. 군중 속에 있지만 문제와 어려움 앞에서는 언제나 혼자이다.
고독한 현대인의 삶은 ‘신뢰’하는 법을 잃어버렸다. 신뢰하고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2.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정서적으로 불안한 이유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없다.
바로 이 모습이 오늘날 현대인들의 신앙이다. 이론으로는 아버지와 친밀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실제로 아버지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어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의 친밀한 교제가 없기 때문에 어려움을 말하지 못한다.
‘정서적 안정감’ 정서적으로 안정감이 있는 사람들을 보면 부모님과의 친밀한 교제로부터 오는 존재감이 분명하다.
‘권위의 문제’ 권위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내면의 질서와 권위가 정렬된 사람들의 특징은 좋은 권위자를 만났다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모든 일에 긍정적이다. 밝은 정서가 있다. 오해가 없다. 꼬아 듣지 않는다. 피해 의식이 없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이론’이 아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귐으로부터 오는 실제이다.

3. 다윗

정서적으로 안정감이 있는 사람이 다윗이다.
[시편 56:3]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다윗이 가드에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붙잡혔을 때 다윗은 두려워한다.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
주목할 것은 다윗은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겠다”라고 고백한다. 믿음은 감정적으로 아무런 두려움도 느끼지 않는 상태가 아니다. 두려움이 찾아왔을 때 누구를 신뢰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믿음이다.
정서적으로 안정감이 있다는 것은 감정적인 연약함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날카로워질 수 있다. 화가 나는 상황 속에서 분노할 수 있다. 어려움 앞에서 근심과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인간은 혼적으로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먼저 받아들이는 것이다.
혼적인 영역의 연약함을 인정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다.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두려울 때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겠다는 것이 얼마나 깊은 고백인지 알아야 한다.
‘시글락의 다윗’
[사무엘상 30:6]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다윗과 부하들이 시글락에 돌아왔을 때 성읍은 불타고 가족들은 사로잡혀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하들의 정서는 가족을 잃었다는 상실감으로 불안에 휩싸인다. 이후 부하들의 슬픔은 다윗을 향한 분노로 번졌다.
다윗도 똑같이 가족을 잃었고, 여기에 부하들의 위협까지 받았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힘입어 용기를 얻고, 하나님께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묻는다.
정서적 불안함은 결국 분노와 두려움과 날카로움이 된다. 제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윗의 정서는 안정감이 있다. 그는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이다.

4. 영으로 혼을 다스리라

[시편 56:10-11] 10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11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시편 기자는 “나는 두려움이 없다”라고 호언장담하지 않는다. 그는 “물론 나도 두려워할 때가 있다. 그러나 두려울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라고 고백한다. “나는 하나님을 신뢰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여기에 중요한 영적 원리가 있다. 인간의 혼적인 영역은 연약하다. 불안하다. 죄인인 인간의 혼은 ‘불안하다’, ‘두려워한다’, ‘걱정이 있다’, ‘거짓말을 한다’, ‘날카롭다’ 등.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들은 ‘혼’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영’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감정적으로는 두려움을 느끼고 때로는 극심한 공포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우리의 영은 공포에 굴복하지 않는다. 감정이 시키는 대로 따르지 않는다.
영은 이렇게 말한다. “불안하고 두려운 상황에 대해 내 감정이 내리는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는 하나님께로 향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라고 하는지 기억하겠다”라고 고백한다.
10절을 보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위 말씀을 풀어 보면 “내 필요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찾겠습니다. 감정적으로는 두려움을 느낄지라도 내 영으로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라는 말이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는 내 감정보다 훨씬 더 깊은 안정과 평안과 확신으로 나를 이끌어 준다. 감정은 수면 위에 이는 파도와 같다. 그러나 영의 깊은 곳, 우리 존재의 깊은 곳에는 흔들림 없는 평안과 확신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안정된 영으로 정서적으로 불안한 혼을 다스려야 한다. 불안한 혼의 영역을 통치하는 영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라. 내 영은 지금도 하나님을 갈망한다. 혼의 사람이 아닌 영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시편 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